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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여행 - 8점
크리스토퍼 듀드니 지음, 연진희 외 옮김/예원미디어


 에드워드 호퍼, nighthawks


3시는 밤의 정수이다. 밤 중의 밤이며 가장 깊은 어둠의 무대이다. 비록 자정이 관념적인 밤의 수리적인 중심일지는 모르나, 3시는 더 늦고 그래서 아무래도 더 어두우며 더 깊숙한 밤이라는 느낌이 든다. (…) 3시, 일하거나 춤추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을 테고, 만일 잠들지 못했다면 잠들 수 있기를 고대하며 침대 위에 뜬눈으로 누워 있을 것이다. (401)


‘일하거나 춤추지’ 않아도 종종 깨어 있는 새벽 3시의 나다. 밤을 좋아하여 손에 든 <밤으로의 여행>은 (전혀 의외가 아니게) ‘나는 밤을 사랑한다.’(11)로 시작한다. 밤을 사랑하는 저자가 (아마도 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쓴 책. 일몰에서 일출까지, 즉 오후 6시에서 아침 6시까지를 한 시간씩 나누어 장을 분리했다. 소재는 자유로워, 야행성 동물부터 어린이용 베드타임 스토리, 나이트클럽, 불꽃놀이, 밤에 작용하는 인체의 호르몬, 잠과 꿈, 심지어 UFO, 달, 동굴, 불면증, 필름 누아르와 밤을 그린 그림까지를 아우른다.


각 장이 다루고 있는 시간 순서에 맞춤하여 실시간 독서를 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6시에 시작하여 새벽과 함께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기분도 좋으리라. 생물이나 천문학, 신화, 문학 등을 두루 건드리고 (두루 건드리는 책들이 보통 그렇듯) 그렇게 깊이가 있진 않다. 전체적인 흐름이 없고 뚝뚝 끊어가며 늘어놓은 단편적인 사실들이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저자의 목소리라기보다는 백과사전 식 진열. 아주 가끔 밑줄 그은 곳은 역시나 시인이기도 한 저자 자신의 문장이었다.


이러한 시간의 느려짐 혹은 변화는 우리의 감수성을 고조시켜 감정의 너울을 일으킨다. 우리가 외롭다면 밤은 우리가 가장 적적함을 느끼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놀랐거나 걱정하고 있다면 밤은 우리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밤이 우리의 우울함을 심각한 우울증으로, 그리고 허탈감을 절망감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특히 우리가 슬플 때이다. (422)


어느 시인의 말인지 (혹은 그냥 내 말인지) 모르겠는데,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의 역할은 밤을 ‘있게 하는’ 것이다. 잠으로부터 훔쳐오는 밤. 보너스 같은 시간. 활발하게 분비되어 내 몸을 채우는 멜라토닌 따위 영향도 못 미치는, 진짜  나를 만나는 때. 밤을 좋아하는 이, 밤이 무엇인지 크리스토퍼 듀드니의 책을 읽되, 자기만이 얘기할 수 있는 밤은 오롯이 자기 몫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이 책이 말하고 있는지도. 


밤은 나의 고향, 나의 연인이다. 그래서 해가 지면 내 마음은 일종의 달뜬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황혼의 힘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흘러든다. 나는 더 홀가분해지고, 더 강인해지고, 더 날카로워지고, 더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496)


내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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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4/10/23 07:35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취한배 2014/10/24 00:15 #

    호퍼 그림들 정말 좋죠? 조용-하고 허전-한 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다시 잠으로부터 밤을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요? 성정이 갑자기 바뀌진 않을 것 같은데요? ㅎㅎ
    전체적으로 흐르는 어떤 우울한 분위기나 정조는 없는 책이었어요. 저는 우울한 책 읽기를 좋아하고, 맞아요, 주로 밤에 정신이 좀 드는 편입니다.
    오, 혹시 이연식 씨 책 말씀인가요? 저도 <괴물...>을 읽었는데 점수를 많이 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호퍼 그림책으로는 <빈방의 빛>을 괜찮게 읽었던 기억도 나고.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모두 꿈만 같은 이름들입니다. 제 느낌으로는 ㅇㅇ님 도시를 좋아하실 것 같았는데;; 그렇군요. 지치게 만드는 게 유럽이 아니기를, 그리고 그라나다 좋아하게 되기를 저도 함께 바랍니다! 기차로 이동하시지요? 낭만낭만...ㅜㅜ
  • 다락방 2014/10/23 10:32 # 삭제 답글

    아, 저도 밤을 사랑해요. 물론 저는 낮도 사랑합니다만.
    이 글 참 좋으네요. 어서 빨리 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취한배님.
    저는 밤이 좋아서, 새벽이 좋아서,
    자다가 중간에 깨도 전혀 화가 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깨는 새벽이면 저는 이곳에 들르기도 한답니다.
    :)
  • 취한배 2014/10/24 00:21 #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사랑하시는 다락방 님.
    이 책을 좋아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텐데, 내 취향이 아니라고, 좀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는 게... 맞는 거지요? 드디어 밤이 됐네요!
    아, 그래서 모기 때문에 잠이 깼을 때도 짜증이 났다거나 하는 말이 없었던 거군요. 모기 잡아주는 동생님 너무 좋아요.^^
    헤헤 그런 새벽이면 기침하여 주세요. 비록 재깍재깍 답은 못하지만요;
    고맙습니다, 측근 님. 또 어떤 책들 사셨어요? 저는 창비 북커버를 받으려고 장바구니 채우고 있답니다;;
  • 다락방 2014/10/24 20:52 # 삭제 답글

    측근님. 저 리스본 밤.. 읽고 있는데요, 아직 얼마 안읽긴 했지만 이 책, 별 다섯은 못주겠어요. 이 얘기 하러 술마시다 잠깐 들렀어요.

    아, 그리고 위 댓글에 대한 답아닌 답 이라면,
    저 피케티의 자본을 샀거든요?
    근데 아직 (당연히!) 한 장도 안읽었는데 그냥 팔아치우고 싶어요. 어쩌죠? ㅠㅠ

    왜샀지 ㅠㅠ
  • 취한배 2014/10/24 21:43 #

    아, 그렇군요. 이런이런. 리스본은 그럼 그냥 페소아에서 만나는 걸로. 리스본은 '세계도시지도' 시리즈에도 없더라고요. 쫙 펼쳐 벽에 붙여놓고 싶은데 말이에요. 술 마시다 급히! 알려주셔서 고마워요.ㅎㅎ
    헛- 피케티!! 왜... 사셨어요.ㅠㅠ 하기야;;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도(유시민 씨였나?) 있긴 하더군요. 다락방 님, 그래도 한 장은 읽어보고 파시기를 조심스레 권해봅니다. 엉엉-
    술 즐겁게 마시세요, 저도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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