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와 바닷새 Smoking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 - 10점
존 카첸바크 지음, 이원경 옮김/비채

 

피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이 정신병원 담장에 꽂혔다. “사람들은 저게 우리를 가둔다고 생각하죠.” 그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게 아닙니다. 저 담장이 바깥세상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거죠.” (533)


정신병원, 환자에 대한 억압과 부당한 처벌, 어딘지 음침하고 비리와 부패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 관료들. 피터의 모습에서 자꾸 잭 니콜슨을 연상하게도 되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비교될 만한 작품이다. 존 카첸바크 또한 켄 키지 불후의 명작이 신경 쓰이지 않았을까. 아, 그런데 내게는 그 큰 작품에 비해 하나도 꿇리지 않았다. 비슷하게 답답하고 암울한 분위기에다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에는 피칠갑까지 더해진다. 회고록 형식으로, 범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미 중반 이전에 지목이 되어 있음에도 이야기는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다. ‘이따금 광기는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는 집착을 의미’(253)하므로, 바닷새뿐 아니라 오로지 살인자의 얼굴만 보고자하는 마음들에는 다른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장면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가장 미쳐 있던 시절에 배운 게 하나 있다. 즉, 사람은 벽과 창살과 잠긴 문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다른 정신병자들에 둘러싸여 살거나 심지어 독방에 홀로 갇혀 지내기도 하지만, 사람을 가둔 진짜 방은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 사람이 사는 진짜 방은 기억, 관계, 사건, 온갖 종류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끔은 망상으로. 가끔은 환각으로. 가끔은 욕망으로. 가끔은 꿈과 희망, 혹은 야망으로. 가끔은 분노로. 그게 중요했다. 항상 진짜 벽을 인식하는 것이. (156)


주요 등장인물 각각의 개연성 있는 사연들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개되고, 문장에서는 품격이 느껴진다. 현재와 과거의 장면 전환도 아주 적절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서술에 역동성까지 준다고 할까. 존 카첸바크라는 어려운 발음은 기억해야 할 이름이 되었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 여럿 있지만 나는 중력에 관한 이 부분을 발췌해 둔다. 감각이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은 어쩌면 지구의 중력을 더 민감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


“(…) 미국 항공우주국이 정신병자를 우주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말 들어봤어? 미친 우주비행사가 군바리 타입보다 훨씬 더 민첩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될 거란 소리야, 안 그래? 온갖 부류의 인간을 우주로 보낸다는데, 우리라고 왜 안 되겠어? 정치인이나 과학자, 언젠가는 관광객도 보낼지 몰라. 혹시 알아? 미친 사람을 올려 보내면 우주를 유영하느라 중력 때문에 지상에 얽매이지 않아서 정신병에 이롭다는 걸 알게 될지. 과학실험처럼 말이야. 어쩌면……” (448-449)



 

맞아요, ‘너무 빤한’ 영화 장면 같았던 것도, 그럼에도 울컥-했던 것도. 의도치 않게 ㄷㄹㅂ 님 좇아 읽게 되는 가을 독서가 아주 썸띵썸띵합니다.






덧글

  • 포겟 2014/10/07 01:05 # 삭제 답글

    아! 저 이 책 읽었습니당 (드디어 ㅠㅠ)
    너무 후루룩 읽어버리느라고 깊은 문장을 음미하지 못하고 팔아버린 것이 참 아쉽네요. 떠나기 전 책팔이 하려고 하는데 또 이럴까봐 못팔겠단 ㅜㅜ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에요.
    읽은지 꽤 된 소설인데도 저 중력부분은 저도 낯이 익어요. 독특해요.
  • 취한배 2014/10/07 01:50 #

    비로소! (우왕- 반가워요 ㅠㅠ)
    저도 '후루룩' 읽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문장이 아주 고상하고 멋져서 찬찬히 읽었던 것 같아요. 중력 부분을 기억하시다니, 희희 좋군요. 버리지 못하는 습성은 저도 비슷해서 그 심정 알 듯. 모쪼록 선별 잘 하셔야 할 텐데요... 혹시 <모리스>는 팔 목록에 오르지 않았지요...;;?
  • 2014/10/07 02:1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취한배 2014/10/07 22:54 #

    '모으면 더 모았지'ㅋㅋㅋ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저번에 ㅇㅇ님 블로그 구경하다가 위풍도 당당한! 그것을 보고 깜놀하고는 무지 반갑기도 해서 말해보았답니다.ㅎㅎㅎ 근데 정말 좋으시겠어요, 희귀본을 떡하니 갖고 계시니 말이에요.
    '노느라 바쁘심'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해결이 된다면 목록 구경할게요.^^ 말만으로도 벌써 고맙슴미다-
  • 다락방 2014/10/07 09:14 # 삭제 답글

    꺅꺅 >.<
    일단 감동의 눈물 먼저 흘리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책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취한배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 이 책이 정말 좋았거든요. 저는 결국은 인간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얘기하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그런 작품인 것 같아요. 저 아폴로 부분이요. 저때 눈물이 그냥 .. ㅠㅠ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했는데(이 감동 너에게 그대로!!) 친구는 이 책에 별 셋을 주며 안좋아하더군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고개 끄덕이면서도 어쩐지 좀 서운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흑흑 ㅠㅠ 취한배님은 정말 최고입니다!!ㅠㅠ
  • 취한배 2014/10/07 22:58 #

    '일단 감동의 눈물'ㅋㅋㅋ (실례지만 저는 웃음부터)
    같은 책을 좋아하는 건 정말 감동이에요, 그렇지요? '미친 사람'이나 취한 사람이 주절주절 떠드는 책을 좋아해서 이것도 그런 맥락에서 마침 반값에 구했는데, 와- 무척 좋더라고요. 단정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우정과 배려가 호들갑 없이 차분하게 그려지고요.
    에이, 다락방 님. 책 선물은 그래서 위험하다니까요.ㅜㅜ 나만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충분히 있음을 생각은 하면서도 정말 그렇다면 알게 모르게 섭섭해져요. 그 친구도 별 셋을 주며 미안해했을 걸요?ㅠㅠ 아무튼 우리에게 이 책은 감동, 그러니까- 건배!
  • 술마시고귀가한다락방 2014/10/07 23:09 # 삭제 답글

    맞아요. 그래서 책 선물은 조심스럽고 또 위험하죠.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더 반가운 것 같아요. 전 음주후 귀가해 한창 멜랑콜리해 있어요. 홍홍홍-
  • 취한배 2014/10/07 23:43 #

    '한창(훈) 멜랑콜리'... 쌀쌀한 공기에 저는 내복을 생각한 밤이었는데, 술마시고귀가한다락방 님께는 곧 기모스타킹!의 철이로군요. 오, 이 책의 다락방 표 페이퍼 제목도 그것이었.ㅎ 가을 타서 저도 완전 멜랑멜랑이랍니다.ㅜㅜ (취했군, 취했어)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