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칭의 세계 Smoking

잠자는 남자 - 10점
조르주 페렉 지음, 조재룡 옮김/문학동네

 

생경한 이인칭. 편지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거 아닌 줄 뻔히 알면서, 작가가 ‘너’라고 얘기하면 독자가 ‘나?’하게 된다. 첫 놀라움.
이름이 없다, 그 누구도, 주인공조차. 사건이라 할 만한 사건 없다. 이야기 없이 보는 눈만 있다. 그런데 소설이다. 두 번째 놀라움.
이상하게 아름답다. 번역이 좋고 옳다. 이재룡이 아닌 조재룡이다. 세 번째 기쁨.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의 자세를 작가가 작품 안에서 이미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가 『르 몽드』를 읽는 태도 같은 것.


그러니까, 『르 몽드』지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허비하거나, 번다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만사가 어떻게 되든 네게는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을, 한 번 더, 음미해보는 것이리라. 만고의 서열과 편애는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극히 단순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고작 서른 개가량의 인쇄활자의 조합으로, 매일같이, 이토록 무수한 말의 창조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너는 또 놀랍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왜 이런 말들을 네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며, 너는 왜 이런 말들을 해독해야 하는 것인가? 너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시간이 흐른다는 것, 어느 것 하나 너를 붙잡지 않는다는 사실일 뿐이다: 네 두 눈은, 한 줄 그리고 다음 한 줄을, 침착하게, 그저 따라가면서, 읽어야 할 뿐인 것이다. (55)


사건이 궁금하지도 않고(궁금할 수 없고) 완전히 꿈의 세계로 초대하지도 않으며(제목과 달리 잠자지 않고 줄곧 걷고 본다) ‘너’가 어떻게 변모하게 되는지 알게 됨이 기꺼운 목적이 아닌데도, 읽게 한다. 그저 보게 한다. ‘너’를 따라. 『구토』보다 훨씬 간결한 ‘실존’이 내게는 느껴지는데. 글쎄, 평가절상된 <구토>와 평가절하된 <잠자는 남자>일는지. 로캉탱보다 나는 ‘너’가 훨씬 좋다. 더 도발적인 ‘실존’을 보았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용병대장>(1475)
입술 위의 흉터를 동지애로 느껴 루브르에서 페렉이 가장 좋아한다는 그림임.




덧글

  • 다락방 2014/09/26 09:30 # 삭제 답글

    우와- 에르고숨님은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 겁니까?
  • 취한배 2014/09/27 00:05 #

    다락방 님 데자뷰 덧글ㅋㅋㅋ. 아닙니다, 매번 하루에 한 권씩 못 읽습니다- 에고, 그리운 그 이름이네요. 언젠가 다락방 님이 ㅇㄺㅅ이라고 언급했을 때 알게 됐는데 '오르가슴'이랑 초성이 같은 거 알아요? ㅋㅋ
  • 포겟 2014/09/27 03:43 # 삭제

    깔깔깔 웃고 가는 취한 ㅍ입니다 ㅋㅋㅋ
    아 콜라 마시고 싶엉

    이틀에 한 권 읽는걸로 알고있습니다만
  • 취한배 2014/09/27 15:54 #

    술쟁이 ㅍ님의 깔깔깔이 치료제군요. 어제 취해서 읽은 부분을 고스란히 다시 읽고 있는(기억이 참말 하나도 안 나요-_-) 오후입니다. 이런 과정만 없어도 하루에 한 권이 훨씬 많아질... 쿨럭. 해장 잘 하세요-
댓글 입력 영역


moon

CURRENT MOON

뉴스타파

알라딘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