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들로부터 왔어. Smoking

팅커스 - 8점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아버지는 이상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어. (157)


점점 ‘희미해져가는’ 중에 회상하는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1인칭, 2인칭, 3인칭 시점과 발췌문, 지루할 만치 많은 자연 묘사와 짧은 에피소드들로 완성되는 4대의 가족 이야기. 잔잔하고 아름답고 아프다. 얇고 작은 크기가 놀라울 정도로 아주 긴 이야기를 읽은 느낌이 남는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아버지가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깃든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야.
아버지는 그냥 희미해져버리는 것 같았어. (164)


‘행성들과 나무, 다이아몬드와 오렌지 껍질로, 지금과 그때로, 여기와 저기로’(167) 만들어진 나, 가장 가까이는 당신으로부터 왔어. 지금 희미해지면서 다시 ‘별이나 허리띠 버클, 달의 먼지나 철로의 대못’(167)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당신(들) 말이야. 기억하기로, 이 책에 사랑이라는 말은 단 한 번 나오는데, 그건 슬픔에 연결되어 있었어. 나를 있게 하고 하루하루 힘겹게 산, 말하지 못한 슬픔과 사랑을 가슴에 품은 내 아버지, 그 아버지 또 그 아버지를 생각해보게 돼. 오늘은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말할 거야.


방금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 제가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것이 아니라, 저에게 백 년이라는 폭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에게도 흔히 말하는 나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백 년의 세월이라는 반경을 가진 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로 이루어진 이 세월,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이 세월은 할아버지가 준 선물 같아요. 고맙습니다. 자, 다시 잠이 드시도록 뭘 좀 읽어드리죠. (196)


드러머 출신답게 문장의 박자만을 생각하며 썼다는데, 번역문으로는 그 진미를 맛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폴 하딩의 독특한 서술방식이 다음 작품도 기대하게 한다. 하딩이 드럼을 치는(쳤던?) 밴드 ‘Cold Water Flat’은 온수가 나오지 않는 아파트를 의미한다고.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4/09/22 18:06 # 답글

    드러머였군요... 문장이 많이 시적이라는 생각은 했었어요, 읽으면서^^
  • 취한배 2014/09/22 22:44 #

    드러머의 리듬감을 온전히 느끼려면 원서로 보아야 한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맞아요. 문장이 많이 시적이었어요. 사다리 님 리뷰 보고 산 거 알아요? 땡스투ㅎㅎ.
  • 달을향한사다리 2014/09/25 15:55 #

    아, 저한테 적립금을 주셨군요! 감사합니당 ^^
  • 취한배 2014/09/26 00:35 #

    책값이 아주 쌀 때 주문해서 죄송할 따름이지요;; 마음보답으로는 땡스투의 백만 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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