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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심리학책을 읽다가, 그냥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해버리기로 했다. 사실 제목에서부터 그럴 줄 알았지만. 민감하다는 게 둔감한 것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잘난 특성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하나의 특성일 뿐. 그런데 어째서 내게는 많은 심리학책들 대부분이 이렇게 읽기에 지겨울까. (그러면서 또 사는 이유는 뭔데?) 시집으로 도피했고, 멋진 사람, 이문재다.

 

존경하는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世界觀)이 아니고 세계감(世界感)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시인의 말’에서)


세계감.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성으로 보는 세계가 아니라 그 안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세계. 관점이 아니라 감점. 이러고 보니 내가 앞서 물려놓았던 책과 또 맞물린다. 감정 또는 감성이 비이성적이거나, 이성보다 열등한 것이 아님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만들고, 다시 또 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뭔가를 배울 때 감정적으로 관여하면 더 효과적으로 배운다. 이처럼, 정보를 보다 세심하게 처리하는 사람일수록 감정이 풍부하다. (일레인 N. 아론,『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010)


이문재 시인의 말을 가져오면 민감하다함은 저 감점이 무척이나 많거나 예민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의 3부는 ‘손’으로 가득하다.


사랑은 손으로 왔다. / 손으로 손을 찾았던 사람 / 손으로 손을 기다렸던 사람 / 손은 손부터 부여잡았다. // 사랑은 눈이 아니다. / 가슴이 아니다. / 사랑은 손이다. / 손을 잃으면 / 모든 것을 잃는다. (090-091,「사랑이 나가다」부분)


손, 손, 손. 무척 예쁜 단어. 누군가를 볼 때 내가 얼굴보다 더 유심히 보는 그것. 가장 좋아했던 손은 손바닥이 꼭 로봇 태권브이의 손을 연상케 했는데, 늘 촉촉했고, 척척 재주도 좋았다... 음? 존 버거의 『A가 X에게』가 떠올랐다. 88쪽을 필두로. 당연하다. 이 그림들을 어떻게 잊겠는가.


 

내가 보낸 손 그림들을 창문 바로 아래 붙여 놓았다고 했죠.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들이 제멋대로 흔들린다고요.
그 손들은 당신을 만지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먼 곳을 보고 싶을 때 당신의 고개를 돌려주고,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은 거라고요. (존 버거,『A가 X에게』167)




    


이 책을 읽을 당시에도 손 그림 종잇장들이 위쪽 두 모서리에 압핀으로 줄줄이 창틀에 꽂혀 바람에 팔랑팔랑 흔들리는 장면을 연상했었던 것 같다. 다시 모아 보아도 좋구나. 더 최근에 만난 ‘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에서였다.


그가 떠난 뒤, 가후쿠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그와 악수한 손바닥을 펴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카쓰키의 손의 감촉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 손이, 그 손가락이 아내의 벗은 몸을 쓰다듬었다, 고 가후쿠는 생각했다. 시간을 들여, 구석구석. (『여자 없는 남자들』41,「드라이브 마이 카」)


슬픔과 배신감과 상실감, 그 상실감을 공유한 어떤 동료애 같은 것까지 모조리 가진 장면. 이 책이야 워낙 베스트셀러라 그냥 몰래 읽고 치울 생각.  

만지고 싶고, 손잡고 싶다. 오른손이 왼손을 왼손이 오른손을 의식적으로 잡아보았다가 손바닥을 모아 기도하는 척도 해보았다가 뺨도 쓸어보다가 뒷목도 잡아보다가 역시- 술잔이나 잡는 밤이다. 오른손이 왼손에 술을 따르고 왼손은 다시 오른손에 찬 잔을 건넨다. 건배, 라고 말할 뻔했다, 는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손이 세상을 바꿔왔듯이 / 손이 다시 세상을 바꿀 것이다. // 나는 손이다. / 너도 손이다. (101,「손의 백서(白書)」부분)



 

초바쁠 때면 빌리곤 하는, 너도 손이다.



 


서울에서 서울에 정착하지 못한 나는
종이 위에 쓴다.
한 사람을 바꿀 수 없어서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아니,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어서
한 사람을 바꾸지 못했다고,
그래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하얀 종이 위에 또박또박 쓴다.

또박또박 쓴 종이를 구기며 다시 말한다.
나는 한국에 서울에 정착하고 싶었다라고,
아니, 나는 오직 나에게 정착하고 싶었다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174-175,「다시 디아스포라」부분)



 


덧글

  • 다락방 2014/09/18 10:13 # 삭제 답글

    감정 또는 감성이 비이성적이거나, 이성보다 열등한 것이 아님을 얘기한다,
    는 글귀에서 위로받는 저는 뭐죠?
    제가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감정적 혹은 감성적 인간이란 사실이 저는 그다지 내키질 않거든요. 냉정하고 이성적이고 싶다는 갈망을 하다보니 감정적인 내가 열등하다, 는 생각을 은근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열등한 게 아닌거에요. 그쵸?
  • 취한배 2014/09/18 11:48 #

    '감정적으로 관여하면 더 효과적으로 배운다'는 말이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마음의 움직임 없이 어떤 지식을 흡수하거나 누군가를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흉내 내는 건 영혼 없는 앎 같은 거랄까요. 분노나 사랑, 연민 같은 감정이 이성의 굳건한 바탕이라고, 그런 감정도 능력!이라고 저는 믿고 있어요. 냉정하고 이성적이거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척하는 자들이 주로 이기적이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하고 따라서 상상력도 모자라고요. (역겨워요.) 이런 '감정의 능력' 때문에 (덕분에?) 제가 다락방 님을 좋아하는 건데 말입니다. 그런 면을 내켜하지 않는다는 솔직하고 겸손한 점까지도요. 아- 저는 다락방 님의 덧글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술 또는 잠이 덜 깼...?) ㅎㅎ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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