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설화? Smoking

만조의 바다 위에서 - 8점
이창래 지음, 나동하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우리’라는 화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미래보다도 훨씬 더 미래의 목소리가 자신들의 ‘구전설화’를 들려주는 설정. 그들에게 벽화로, 이야기로 남아 있는 판과 레그의 설화. 미래소설 혹은 과학소설의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의 설정으로는 무척 낯설다. SF의 숱한 미덕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높이 사는 특징은, 그 어떤 ‘리얼리즘소설’보다 현재를, 우화라는 빌미로 더 적나라하게 비판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 소설 또한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톡톡히? 아니, 어쩌면 은연한 우화라고 보기엔 이야기 속 모습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현실적이어서 사실은 조금 낯 뜨거울 정도라고까지 할 수 있다. 특정한 나이에 이른 학생들 중 아주 극소수만이 통과할 수 있는 시험, 그러고 나면 탄탄한 직업과 돈이 보장되는 것이라든지, 확연한 계층 사회,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지 않는 의료서비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모습 같은 것들. 이창래는 연도나 장소가 확실하지 않은 시공간을 선택하여 지금-여기(어디든)의 자본주의와 삭막한 인간성, 이기주의 등을 아마 마음 푹 놓고 폭로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읊듯, 미래 어떤 시점 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라는 화자가 사는, 더 먼 미래의 모습은 그래서 어떻게 바뀌었을까. 잔인한 복수의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 그래도 친절한 호의와 베풂, 물에 탄 포도주와, 어긋날지언정 사랑이 존재했던 그리스 신화와는 너무도 다르게, 환경오염과 몰살된 동물들, 전염병, 이기심만이 만연한 ‘우리’의 디스토피아. 이대로 사는 게 맞나? 꼭 오래오래 살아 직접 보아야만 알 수 있겠니? 라고 물어보는 듯한 저자의 구구절절하고 조금은 장황한 필체가 경고한다. 너희 인간성 없는 발전이라는 것, 다시 생각해 봐.


“네 가방도 챙겨. 여기는 네가 있을 만한 곳이 아냐. 내가 너무 미안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너무 미안해.”
“저한테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판이 말했다.
“아냐, 사과를 해야 해!”
말라는 판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너한테 제일 미안해! 나는 네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 하지만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지?” (362-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