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소리가 절로 나고 말입지. Smoking

죽음의 한 연구 - 상 - 10점
박상륭 지음/문학과지성사

 

박상륭. 이 괴물 같은 이름을 나는 어찌 이제야 만나, 그것도 <죽음의 한 연구> 상/하 권 중 상권으로만 만나 이다지도 벅찬 마음을, 그 무슨 세속적 욕망이라도 다 까짓것,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떤 숭고함을 겪은 것 같은지. 어쩌면 내가 그리도 놀랐던 <몰로이>와 또 어떤 한 정영문과 이승우도 이 안에 있는 것만 같고 무슨 노랫가락마냥 술술 풀어헤쳐지는 문장은 착착 감기면서도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물론 한국어사전을 열어놓고 읽었다는 사실을 (부끄럽지 않게) 고백한다.


밤이 되도록 나는 헤맸다. 발은 터지고 물집이 생겨선, 너덜너덜 벗겨졌다간, 연한 살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아픈 줄은 몰랐다. 나는, 사막을, 그냥 남녘 끝을 한하고 질주해나간 것이 아니라, 날 속에 짜여드는 씨 북처럼 헤맨 것이다. 헤맬수록 왠지 나는 더욱더 쓸쓸하던 것이다. 계집 하나 잘못 잡아먹고, 목에 비녀가 걸린 채 고독히 배회하는 그런 어떤 야윈 들개처럼, 왠지 내 목구멍에도 그런 비녀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울음은 아니었을까도 모른다. 그래 끝내, 엎으러져, 저 황무한 고장의 몰인정 앞에 굴복하고 나를 내팽개쳐버렸더니, 그 울음이 북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섶을 지고 내가 불 속으로 다니고 있다고 하지 않았더라고 하더라도, 산다는 일이 그렇게도 서럽기만 서럽던 것이다. 천 년 전에 죽어 촉루로나 구르고 있는 듯한, 그런 해골 속을 산다는 일은 아프던 것이다. 외롭던 것이다. 무섭고 슬프던 것이다. (81-82)


사전에서 찾을 수 있는 단어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생소한 전라도 말이라는 것. 잘 모르겠으면 눈으로 찬찬히 다시 그 말을 짚어보곤 하니 많은 경우 희한하게 감이 온다. 뜻이 오고 감정이, 뉘앙스가 온다. 차지고 참한 리듬감. 슬쩍 한눈 판 애인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속이 얼마나 시원할까.


“히었으면, 워짠다고 가(그 애)들하고는 시시닥거리제라우? 가들 말이, 시님이 물도 질어줌선, 궁뎅이를 때맀다고 히어요. 그람선 조슬 세우드란디, 고것이 참말이끄라우? 들어보구로, 어디 말 좀 히어보씨요, 히어보랑개. 말 못하겄어라우? 제 지집 두고시나, 워짠다고 무신 육갑헌다고, 넘우 지집들헌티 생 조슬 세우고, 고 지랄이란디요 지랄이?” (224)


‘생 조슬 세우고,’ 크-  상권을 주문하면서 하권을 빠뜨렸던 나는 도대체, 제대로 술꾼인 것인데, 이 책에 관해서는 더 자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20개에 가까운 주석이 아마도 하권에 딸려 있는 모양. 고로 나는 <죽음의 한 연구>의 반을 읽은 게 아니라 삼분의 일 정도 읽은 셈이다. 슬프지 않다. 이 정도의 작품이라면 두고두고 아껴 읽을 만도 하므로. 자, 이제 돌중이 읍에 들어갔다. 돌중은 읍에 들어갔고, 나는 아직 박상륭이라는 거대하고 찬란한 문장들을 다 훑지 않았다. 세상이 아무리 ‘지랄’ 같아도 살아야하는, 살아야겠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헉-하고 휴- 한단 말입지, 끼욱.


그가 떠나고 난 뒤, 그러나 난 자다가 놀래고 깬 듯해, 어리떨떨하며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차차로 외로움으로 바뀌었다. 나는 모른다, 그러나 뭔지 모르는 곳에서 뭔지가 형성되어왔었는데,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달콤하게 내려다보며, 나는 모른다, 나는 그 위에 내 흰 그림자를 아름답게 드리우고 선회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그것이 나의 비상과 나의 휴식을 싸안아줄 그런 바다 같은 것이었는지 어쨌는지, 그러나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비상과 휴식의 바다는 아니었고, 그만큼 넓고, 그만큼 깊은 불구덩이어서, 내 날개가 지치기를 바라고, 음험히 입 벌리고 있는 그런 어떤 것이었던지도, 글쎄 나는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촛불중은, 나로 하여금, 내일의 집회에 참석하여, 뭔가를 지껄이도록 충동질하고 있음엔 틀림없었다. 나도 그러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 그리하여 나는 가부좌를 꾸미고 앉아, 다탁자 위에 놓여진 그네들의 경전(經傳) 위에서 명상하고, 필요한 구절을 적어가며, 밤을 새워나가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는, 나로서는 아직은 모른다. 그렇더라도 내가 이만큼 살아오며, 뭔가를 생각해왔고, 또 무엇보다도 ‘살아 왔다는 것’을, 한 울음에 담아, 끼욱거리기라도 해보기는 해보아야 되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날개가 지쳐, 내려앉은 곳이 불구덩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한 번은 산 목청으로 울었다는 것을, 자신의 귀에라도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끼욱. 다만 한 번 끼욱. 끼욱. (332-333)




 

1996년 양윤호 감독의 영화로 개봉했었다. 박신양 주연. 나는 못 보았다. 여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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