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는 어디에. Smoking

럼 다이어리 - 6점
헌터 S. 톰슨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이 작은 책을 읽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곤조 저널리스트’의 유일한 소설이라는데, 도무지 내가 아는 세상의 비참함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인 듯 느껴져서 그랬을까. 지구 반대편의 어느 지역에서는 거의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에 갇힌 사람들을 학살해대고 이곳에서는 공감능력 없고 무능하기까지 한 정치인들의 쇼에 좌절하게 되는 요즘, 어쩌면 이 책이야말로 현실과 가장 먼 글이 아닐까 할 정도로. 어떤 로맨스 소설이나 sf, 환상소설보다도 더. 좋은 시절에 만났으면 또 어떻게 읽혔을지 모르겠다. 거친 남자, 폭력, 출세욕, 푸에르토리코의 대단할 것 없는 신문사, 삼류기사, 더위, 술집, 럼, 럼, 럼. ‘곤조’가 어디 있다는 건지 이 책으로는 글쎄, 알 수 없었다. 픽션이기도 하고 톰슨의 꽤 초기작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행복이라!” 나는 중얼거리며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기려 했다. 하지만 사랑처럼 행복도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대개 말에 대한 믿음이 많지 않은데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행복이니 사랑이니 정직이니 강인함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은 더더욱 그렇다. 시시하다느니 싸구려라느니 엉터리라느니 하는 신랄하고 야비한 말들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모호하고 상대적이다. 나는 신랄하고 야비한 말이 편하다. 가리키는 대상이 보잘것없어서 마음에 와 닿는다. 그에 비하면 거창한 말들은 다루기가 힘들어서 이를 자신감 있게 사용하려면 성직자나 바보가 되는 수밖에 없다. (84)


헌터 S. 톰슨-테리 길리엄-조니 뎁 트리오의 명정, 환각, 섬망의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그리고 아내와 통화중 행한 권총 자살, 그에 이어 유해가 ‘별로 쏘아’ 올려진 장례식까지 이목을 끄는 인생, 헌터 S. 톰슨이다. 최근 개봉한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에 맞춤하여 이 책을 손에 들었던 것. 1970년에 기자와 삽화가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와 랄프 스테드먼의 ‘곤조 삽화’들을 많이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내 좌석 양 옆의 관객들은 무척 잘 주무시기까지 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나는 팬암에 전화를 걸어 아침 비행기 좌석을 예약했다. 이어 짐을 꾸렸다. 옷가지와 책들과 『데일리뉴스』에 실렸던 내 기사를 스크랩해 둔 것을 더플백 두 개에 쑤셔 넣었다. 차곡차곡 밑에서부터 쌓은 다음 타자기와 면도용품을 맨 위에 넣었다. 그러고 나자 나의 세속적인 물품들이, 지난 10년간 내 방랑세월이 건져 올린 빈약한 열매가 헛된 몸부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가는 길에 체널트한테 줄 슈페리어 럼주 한 병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27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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