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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 10점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뿔(웅진)

 

숱한 사람들, 만나고, 엮이고, 스쳐지나가고, 사랑하고 헌신하고 애도하고, 훌륭하거나 고귀하거나 비참하거나, 한 마디로 사는 이야기들. 전쟁과 범죄와 매매춘, 재판, 줄타기, 피부색, 컴퓨터, 우정, 사랑, 인연, 우연, 죽음. 내 삶만 해도 벅찬데 이 많은 이야기들이 왜 필요할까. 책에 대한 내 갈증과 다른 사람에 대한 궁금함과 염려, 연민 같은 건 도대체 왜.


문학은 우리에게 모든 삶이 이미 다 쓰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아직도 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592, 작가의 말 중)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읽고 또 읽는다. 나와 닮은 사람과 다른 사람, 누군가와 닮은 사람과 다른 사람을 발견하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동정하고 추억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마침내 그리워하고, 감동한다. 현기증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지구가 돌고 있으므로. 칼럼 매캔이 제목으로 알프레드 테니슨 경의 시구를 가져왔을 때는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의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좀 격이 안 맞는 번역 아닌가.


책 소개란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줄타기 이벤트는 짐 자무시, <미스터리 트레인>의 에피소드들을 엮어주는 총소리 같은 역할로 아름다운 제 구실을 해낸다. 뉴욕의 하층과 상층,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과 젊은 해커들, 창녀들, 그 아이들, 수도사, 간호사, 판사, 바텐더... 넘쳐흐르는 이야기들을 묶어주는, 지금은 없어져 더욱 비장한 그 건물과 물론 시간.


정치적이냐고? 아주 많이 그렇다. 뉴욕 하층 매춘여성들이 생생히 주체로 드러나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고 검은 피부색 여성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피부색과 성별을 넘어 끈끈한 우정을 형성해간다는 점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들을 내 품에 맞아들인다는 점에서, 편견으로 인한 결례를 기꺼이 사과하고 악수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는 배우자와 헤어지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또 많은 점에서. 그리고 이런 멋진 욕까지도.


나는 루미며 그런 것에 대해 목사에게 말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영적인 게 아니군, 그건 시예요.” 니미 하느님. 니미 하느님. 니미 하느님, 엿이나 먹으쇼, 옆으로, 뒤로, 온갖 방향으로 엿이나 드쇼. 하느님은 나를 위해 오지 않는다. 불타는 풀숲도, 빛의 기둥도 없다. 내게 빛에 대해 말하지 마라. 내게 빛이란 가로등 끝의 붉은 불빛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안, 코리, 하지만 하느님은 엉덩이를 좀 걷어 차여야 해. (401)


최근에 만난 가장 아름다운 600쪽의 이야기다. 술 취해 독후감이랍시고 뭔가를 끼적였다가 다 날려먹은 게 어제다. 어떤 글이었을지 무척 궁금하다. 내가 나를 궁금해 하는 취한 배. 어제 포도주를 들고 와 ‘좋은 건지 모르겠다’는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이런 멋진 말을 하고 말았다. “포도주와 책은 열어봐야 알게 되더군.” 내용을 배반하는 이 책의 번역제목과 표지 탓이다. 칼럼 매캔과 옮긴이의 인연, 그리고 나와의 먼 인연.


또 다른 인연이 있다. 칼럼 매캔은 책머리에 이 책을 바치고 싶은 몇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중에 프랭크라는 이름이 있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역시 뉴욕에서 활동했던 작가 프랭크 매코트를 가리킨다. 『Angela's Ashes(안젤라의 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프랭크 매코트는 2009년, 칼럼 매캔이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로 전미도서상을 받던 그해 세상을 떴다. 역자가 번역대학원 졸업 프로젝트로 번역한 작품이 프랭크 매코트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Tis(그렇군요)』였기에 여기서 또 한 번의 인연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칼럼 매캔의 책을 시작했었다. (597-598, 옮긴이의 말 중)



전화기로 사진 진짜 못 찍는다. 수전증.

포도주는 오늘 열기로 했다. 그를 기다리는 중이다.



 

시트가 당겨진다. 재슬린은 클레어가 왼손을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손가락들이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세월이라는 노란 주름. 그녀는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에 알던 사람은 우리가 마지막에 아는 사람이 아니다.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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