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아름다움 NoSmoking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 10점
로버트 P. 크리즈 지음, 김명남 옮김/지호



 

시인이자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뉴턴(1795)이다. 낭만주의 시인 블레이크는 뉴턴과 과학을 비판한 예술가다. 과학과 예술, 아니 정확히는 과학실험과 아름다움이 만날 수 있나. 철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사람이 정통으로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일 텐데, 로버트 P. 크리즈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라 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열 가지 실험들은 설문으로 얻어진 목록이며 배치는 연대순으로 되어 있다. 각 장에서 열 가지 실험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서 장마다 붙어 있는 간주에는 부연설명과 자신의 생각, 과학실험이 어째서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철학적이고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첫 장,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재기’만 읽어보아도, 철학자 글쟁이가 설명해주니 과학이 금세 아름다움을 획득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빛에 따라오는 현상인 그림자에 대해 아무 관심도 쏟지 않으며, 그냥 “멋진걸!” 하면서 지나친다. 그런데 에라토스테네스의 실험을 통해 우리는 태양 빛을 받는 지구에 생기는 모든 그림자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한 덩어리로서의 우주에 긴밀하게 엮인 현상임을 깨닫는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실험에 대해 숙고할 때, 우리의 상상력은 구속받기는커녕 활발한 자극을 받는다. 우리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서 인류가 우주에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대해 문득 깊게 이해하게 된다. 이 실험은 세상에 대한 경외감을 일깨운다. (47)


근본적인 뭔가를 드러낼 것, 그것을 효율적으로 보여줄 것, 우리를 만족시키면서 실험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해서 추가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 이 세 가지가 ‘아름다운 실험’의 조건이다. 땅에 생기는 작은 막대 그림자로 거대한 지구의 둘레를 계산해내는 경이, ‘그림자처럼 덧없고 불안정한 존재들에게서 영원히 변치 않는 우주의 속성을 이끌어낸’ 에라토스테네스 실험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기가 오히려 어려울 것 같다.


정확성, 냉혹함, 무미건조함 같은 말만 어울릴 것 같은 과학 실험에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붙여 화두로 삼고 있는 저자의 의도에 맞춤한 듯한 서술 방식이 참 멋진데, 사실만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아주 가끔씩 이지만 저자 본인의 경험도 무척 감동적으로 스며들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 박물관에서 처음 본 푸코의 진자에 대한 추억이 이렇다.


가끔 나는 추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안내판의 설명대로 추가 아니라 나 자신과 내 발 밑의 단단한 바닥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느껴보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진자를 볼 때마다 늘 신비와 경외의 감정을 느꼈다.

진자의 운동은 전적으로 내 통제력 밖의 일이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가차 없는 현상인 것 같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느낀다. 진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아침 10시에 박물관을 열기 전에 남북 방향으로 진자 운동을 시작시키는 직원뿐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박물관에 도착해서 문을 열기를 기다린 적도 있다. 얼른 계단으로 달려가 진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늦었다. 한번은 박물관의 한 후원자가 자기 아들의 생일 선물로 그날 하루는 소년이 진자 운동을 시작하게 해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아이를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다른 아이들이 야구 시합에 선발 투수로 나가 첫 공을 던지는 꿈을 꿀 때, 나는 푸코의 진자를 움직이는 꿈을 꾸었다. (183)


지구가 도는 모습을 그토록 단순하게 보여줄 수 있는 놀라운 장치를 설명하고 있는 이 7장 ‘푸코의 숭고한 진자’ 편은 정말 아름다운데(다른 어떤 말보다 이게 가장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므로 마음 놓고 쓴다), 푸코 본인이 실험 후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이 현상은 침착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필연적이고, 불가항력적인 현상이다…… 이 현상이 생겨나 펼쳐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실험자라 할지라도 그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 앞에 선 사람은 누구나 상념에 빠져 몇 초간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우주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라는, 강렬하면서도 압도적인 깨달음을 서서히 얻게 되는 것이다. (188)


저자가 각각 경외심과 숭고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에라토스테네스와 푸코의 실험 외에도 갈릴레오의 낙하 실험과 경사면 실험, 뉴턴의 프리즘 빛분해, 캐번디시의 지구 무게 재기, 빛을 파동으로 인식하게 한 영의 실험 등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사실 그런 미덕이야말로 저자가 말한 아름다운 실험 조건에도 맞을 터이다. 매우 단순한 방식을 써서 효율적으로 깊은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 말이다.


‘실험의 아름다움을 깨달으면 우리는 보다 전통적인 의미의 미학을 되살릴 수 있다.’(297)는 것을 열 개의 장과 간주에서 아주 잘 보여주는 저자. 전통적인 의미의 미학, 당연히 고대 그리스 시대의 그것을 말함이다. ‘토 칼론to kalon,’ 즉 아름다운 것은 꼭 예술작품에만 주어지는 속성이 아니라 ‘모범적인 것들에 부여했다. 가령 법, 조직, 영혼, 행동 등 어느 것이나 아름다울 수 있었’던 미학.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던 전통.


고차원적인 자연의 이치는 아름다움을 매개로 우리 지식의 향유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렇기 때문에 지식을 사랑하는 자는 미를 느끼는 감각을 경시할 게 아니라 섬세하게 북돋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감각을 돋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완벽하게 투명한 상태로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역사적, 문화적으로 물려받은 어떤 가정들을 매개 삼아 세상을 본다. 덕분에 사상을 쉽게 이해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것을 놓칠 때도 있다. 그런데 간혹 우리를 혼란과 무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특별한 것들과 마주칠 때,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부른다. (298)


윌리엄 블레이크 대(對) 뉴턴의 상황, 즉 아름다움과 과학이 별개이며 적대적인 관계라고 은근히 여겨지는 풍토에 단비 같은 책이다. 이건 마치 법학이나 정치에 문학적 감수성이 무척 요구되고 있는 형편과 비슷한 느낌으로, 어쩌면 과학도들이 읽었으면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단지 과학을 좋아하거나 또는 미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훌륭한 양식이 되어 줄 것이다. 열 가지 실험만큼이나 아름다운 글과 지식이다.


18세기와 19세기 초 낭만파 시인들 사이에 벌어졌던 분열은 지금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한쪽에는 탐구와 조사가 아름다움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히려 아름다움을 깊게 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 그런 사실들을 안다고 해서 꽃에 대한 감상이 손상되는 건 아니다. 음향학을 배운다고 해서 비발디의 <사계>를 감상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듯이 말이다. 세상에 대한 경이감을 잃지 않으려면 과학으로부터 도망칠 게 아니라 과학에 참여해야 한다. (125)


공중에서 서로 반대되는 전기를 띤 입자들이 부딪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큰 방전은 보지 못했으나 번개의 방전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가 공기를 매질로 하여 내게까지 전해져오고, 결국 대기에서 응축되어 지름이 0.5㎜ 정도가 된 물방울들이 중력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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