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 않겠지 Smoking

폐허 - 6점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비채

 

이런 젠장, 538쪽이나 되는 주제에 ‘악’의 원인이나 계기를 알 수 없다니. 읽고도 원통해지는 작품. <심플 플랜>에서 심리를 잘 드러내는 문장력이 좋아 은근히 기대를 많이 했었던 게 사실. <폐허>의 미성숙한 인간들, 건질 것 없는 문장들, 이유를 끝내 알 수 없는 적대감. 언어 간 소통 불가능을 빌미로 한 서구의 은근한 배척심과 ‘이국적’이라는 간판 뒤에 숨기는 공포와 타자화가 내겐 별로였다.


자기가 잘 모르거나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악’으로 규정하기는 참 쉽다.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이.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언어 간 소통 불가능성은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음을 고발하고 있다기보다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또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문명을 타자화하는 면을 그럴 듯하게 이야기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마야인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언어를 미리 알아볼 생각을 아예 안 했다는 것부터, 또는 그래야만 가능한 이야기 자체가, 적대적인 덩굴보다 더 잔인하다. ‘서구인’이라는 거만한 존재가, 알고 싶지 않았고 알 수도 없는 ‘야만’에서 겪는 모험, 아무리 잘 포장되어 이야기된다 해도 여전히 내게는 좀 불편하다. 그 와중에 눈에 번쩍 띄는 대목.


발치의 자갈들이 눈에 들어왔다. 완벽한 구형에 블루베리만 한 크기였는데, 제프는 주저앉아 그걸 주워 입 안에 넣었다. 전에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다. 사막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갈증을 저지하기 위해 조그만 돌멩이를 빨아 먹는다고 했다. 돌멩이에서는 얼얼한 맛이 났는데, 예상보다 독했다. 하마터면 뱉어낼 뻔했지만 꾹 참고, 혀로 조그만 돌멩이를 아랫입술로 밀어내 마치 담배 파이프를 문 것처럼 되었다. (218)


‘자갈을 빠는 장면’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마련해야 할까. 이상하게 심쿵-하는 건 당연히 베케트의 영향이지만 아무리, 과학서적에서 생물학에 근거한 자갈 빨기 항목을 본다 하더라도 <몰로이>의 아우라를 침범할 수는 없으리라. <폐허>에서 자갈 빨기를 보게 된 건 정말 의외이지만 스콧 스미스가 베케트를 염두에 두고 쓴 대목이라 생각하긴 어렵고, 그랬으리라  여기고 싶지도 않다. 독자는 이미 아는 사실을, 특정 등장인물에게 전해주기 위해 반복하는 등 매끄럽지 못한 방식으로 쓸데없이 길어진 소설이다. 2별은 너무 했나, 3별로 수정. 오싹함으로 더위를 가셔주는 여름밤의 친구 역할은 어느 정도 해 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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