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피에트로 Smoking

비트 더 리퍼 - 8점
조시 베이젤 지음, 장용준 옮김/황금가지


 

우선 실용적인 팁 한 가지. 어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날 때.


마모셋 교수에 따르면, 뭔가를 놓아둔 장소를 굳이 기억해 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지금 어딘가에 그걸 두어야하는데, 그렇다면 어디다 둘까 선택하고 그곳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굳이 이전에 골랐던 곳하고 다른 곳을 고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사람들의 성격이란 생각보다는 고정적이다. 우리가 날마다 다른 사람으로 깨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그저 우리는 우리를 믿지 못할 뿐이다. (332)


농담과 살인, 측근들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발휘할 때도 시종일관 감정의 드러남 없이 덤덤하다. 고민이나 선택은 고작 몇 분의 1초로 충분하고 망설임 혹은 번뇌 같은 것 없다. 갈고 닦은 무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건 문제도 아니며 의학 지식까지 동원되니 완벽한 인간 병기 같다. 그저 신나게 읽으면 될 재미난 소설. 후기나 옮긴이의 말이 없는 대신 <경고>가 마지막 페이지다.


경고: 

이 단락과 감사의 말과 헌정사를 빼고 이 책의 모든 부분은 픽션이다. 제사(題詞)조차도 픽션이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특히 의학정보에 관하여 그런 의문을 품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생각이다.


그럼 ‘픽션’이라고 하는 제사는 뭐였나.


한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니체의 말이 옳다면, 자서전을 쓰려는 그 어떤 진솔한 시도도 자기파멸의 행위가 될 것이다. -까뮈


픽션이든 아니든 그럴 듯하다. 게다가 이런 ‘가짜 인용’은 내가 퍽 좋아하는 장난이다. 전하고 싶은 내용을 인용네모 안에 넣어 제시하면 갑자기 문장이 신뢰와 무게를 얻게 된다는 사실, 통쾌하고 신나는 일이다. 조시 베이젤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이고 <비트 더 리퍼>는 독자를 무장 해제시켜 심각해지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액션ㆍ스릴러의 제 역할을 (잔인하게) 톡톡히 한다는 뜻, 여름밤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얘기. 4별은 조금 과한 평가일지도 모르지만 '황금가지'는 일단 좋게 보는 내 편견.


제사의 ‘모욕’에 대해 덧붙이자면 당신이 ‘죽인’ 사람, 살릴 수도 있다. 진정한 사과라면. 짝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수는 있어도 모멸감을 느끼게 한 사람과는 그럴 수 없다. 당신의 ‘모욕할 의도가 없었음’보다 상대의 ‘모욕감을 느꼈음’이 우선한다. 그건, 프랑스 버스 창유리에 ‘열어도 됩니다만 혹시 닫기를 원하는 승객이 있다면 닫는 게 우선입니다.’와 비슷한 우선순위다. 부당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고 양보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게 소위 ‘pc(정치적 올바름)’이며 내가 유일하게 믿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이다. 이 말은, 상대방 또한 당신의 사과에 응하여 용서할 준비가 한껏 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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