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적인 사랑의 역사 Smoking

사랑의 역사 - 6점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민음사


 

희한하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은 후의 기분과 비슷하다. 부부의 작품이 똑같이 내게 감흥이 없는 것이. 이런 경우도 잘 만난 부부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겠지. 취향이 서로 맞는다는 얘기일 테니. 5별 천지에 3별 리뷰를 쓰는 삐딱한 기백이다.

‘문학 신동’을 믿지 않는다. 작문 신동이나 짜깁기 신동, 단어 신동이면 몰라도 문학 신동이라니. 그렇게 단편적이거나 단면적인 것으로 문학이라는 말을 덜컥 써버리면 넓이와 깊이, 장구한 역사를 가진 문학이 좀 섭섭해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나이 많은 작가나 죽은 작가, 그리고 젊어 죽은 작가들을 신뢰하는 사람인가 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마찬가지 기분이라는 것의 정체는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억지, 장식성, 자연스럽지 못함 같은 것. 시냇물의 흐름 같지가 않고 콘크리트 청계천의 틀어놓은 수돗물 같은 흐름 말이다. 부분 부분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들의 배치, 인물을 내가 사랑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이 인물은 원래 사랑스러운 인물이고 또 이 사람은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다, 식으로 미리 만들어 꼭꼭 틀어박아 놓은 장치.

그 결과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되지 않으며 누구도 사랑스럽지가 않다.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심정만 읽히고 내 마음에 애틋함과 그리움이 생겨나지 않는다. 크라우스나 포어가 ‘소격효과’를 노렸던 게 아니라면 이 부부가 내 취향이 아닌 것일 게다.


아이가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의 경우, 귀엽고 기특한 면이 있기 십상인데 알마가 이상하게 내게는 조금 징그럽고 끔찍한 화자로 남게 되었다. 예컨대, 엄마인 샬럿의 ‘열다섯 개의 지루한 단어’로 된 편지에 자기가 개입하여 ‘로맨스’를 첨가하는 대목. 왜 이 아이 머리에는 로맨스 밖에 없는 건가.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빠를 엄마에게서 지움으로써 혼자 기억을 독차지하려는 생각일까. 엄마에게 왜 꼭 새 남자가 필요하리라 여길까. 무엇보다 나는 샬럿의 건조한 편지가 좋았단 말이다.


마커스 씨 귀하

이 원고들이 당신이 바라던 것이길 바라며, 만약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샬럿 싱어 (87)


당돌한 알마가 어떻게 수정하여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마커스의 아래 답장이 온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편지를 읽을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결국 자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 않나. 그렇다면 과정이야 어떻든 둘이 짝만 지어주면 된다는 이 이상한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나로선 힘들다. 차라리 서신교환으로 인해 알마 자신이 마커스와 사랑에 빠지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당신은 내가 뭘 하냐고도 물었죠. 나는 읽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악어의 거리』(폴란드 소설가 브루노 슐츠의 작품)를 세 번째로 읽었습니다.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책이죠. (…) 이걸로 충분합니다. 당신의 글이 너무 좋습니다. 좀 더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JM (147)


발췌한 부분만 보아도 알겠다, 나를.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무덤덤한 문장을 좋아하는구나. <사랑의 역사>에는 첨가제와 조미료가 너무 많다. ‘신동’이라니, 지금의 작가 경력보다 더 긴 세월을 작가로 살아갈 사람 아니겠나. 언젠가는 나이 많은 작가가 될 것이고 죽은 작가가 될 것이니, 내가 신뢰하게 될 미래 작가라는 얘기다. 앞에서 청계천 얘기를 했으므로 같은 맥락으로 계속하자면, 4대강 보에 갇힌 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꾸밈없는 또 하나의 문장. 그 누구도 밑줄 치지 않았을 거라 장담한다. 


1947년 봄. 나는 형의 작은 가게 뒤에 앉아 그가 상자 안에 인화 용지를 고정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116)



The History of Love, L'histoire d'amour. 제목에서 연상된 노래,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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