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정치 Smoking

사고 - 8점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양영란 옮김/문학동네

 

어렴풋하다. 오늘 읽었는데도. 밑줄을 긋거나 리뷰를 쓰려면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안/못 그럴 거다. 술에 발동이 걸려서. 이건 숙제도 아니고 정답을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리뷰를 가장하여 지금의 나를 얘기하는 글 나부랭이니까. 어쩌면 첫 밑줄에서 벌써 이 불완전한 감상을 책 자체가 드러내고 있었을지도.


이상한 건 대화나 메시지를 구성하는 문장만이 아니었다. 발언의 내용뿐만 아니라 사건 전체를 관통하는 동기와 내적인 논리마저도 일종의 반신분수, 즉 갑작스러운 충격이나 독극물 중독의 후유증인 듯한 마비 상태를 보였다. 텍스트를 고쳐 쓴 다음, 그러니까 일상적인 언어로 바꿔 적은 다음에도 글에선 여전히 비정상적인 징후가 감지되었다. 이는 어떤 면에서 사건의 핵심이 손상되었음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었다. (56)


‘사고’가 있었고 해석, 또는 재구성이 있다. 증거들과 증언과 증인과 조사원. 각자의 관점과 상상들이 전혀 친절하지 않다. 장르 상 추리소설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고, ‘추리소설’이라는 문자 그대로에 충실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독자로 하여금 상상해보라는 빈틈, 미심쩍음, 사실임직하지 않음.

정치가 있고 사랑이 있다. 발칸반도의 분쟁과 알력으로 인한 정치적 암살의 가능성이 먼저 제시된다. 그리고 두 사람 또는 세 사람 사이 사랑 안의 정치. ‘독재’라는 말은 분명 정치적 용어이지만 사랑에서 그처럼 정확한 다른 말도 없음을 보면 사랑도 정치 맞다. 아니, 정치적인 권력 놀이가 그 안에 있다고 해야 할까.


그가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된 건 지극히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볼 수 있어요. 독재자는 극단적인 해결책을 좋아하니까요. 언제라도 배신당할 수 있다는 잠재적인 가능성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그는 모든 걸 시도해봤어요. 그래도 상실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자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방식, 다시 말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아예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거죠. (302)


‘사랑 권력’에서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을 늘 한다. 여기서도 벌써 정치다. 신경전, 권력 다툼. 이제 좀 싫은 무엇. 강자보다는 약자 지향인 나, 투표에서도 뒷 번호, 사랑에서도... 그만. 사랑에서 독재자의 위엄은 그럼 어떻게 나타나나. 질투를 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보다 땀이 나지 않는 손, 나보다 날뛰지 않는 심장, 나보다 떨리지 않는 목소리 같은 것 아닐까.


베스포르 Y는 그녀에 대해 질투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반면 룰루는 그랬다. 그것이 바로 두 라이벌의 차이였다. 어쩌면 그 차이 때문에 그녀가 아니라 페스포르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294)


삼투압. 카다레는 발칸반도 내 세계 정치가 개인 간 사랑관계에 스며든 어떤 모양을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녀가 가 있는 우즈베키스탄 뿐 아니라 뻗대는 국무총리 후보자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그만둔 사건 뿐 아니라 내 책상에 올라와 있는 술병에까지도. 내가 ‘건배’라는 단순한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기어이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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