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있다 Smoking

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 - 8점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아르테(arte)


 

수다쟁이 바티스트 보리유Beaulieu (‘볼리외’라고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의 진료에는 환자에게 끊임없이 읊어대는 ‘이야기’가 있다. 시시한 농담부터 병원 곳곳에서 있었던 일화와 동료, 선배들에 관한 이야기들. 혈기왕성한 20대여서 그럴까, 에너지가 넘치는 인턴이다. 주로 응급실과 호스피스 병동의 일화들이라서 언급되는 환자들의 면면은 단편적이지만,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살아 있는 덕에 책의 전체적인 줄기가 이어진다. 물론 특별한 환자 불새 여인이 그 중심에 있다. 가슴 속에 아픔을 간직한 채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


도처에 죽음. 병원 시트가 갈리듯 침대 주인이 바뀌는 환경. 어떻게 견딜까. 마음을 열거나 그렇지 않거나. 바티스트는 전자를, 동료 블랑슈는 후자를 방어기제로 택한 것 같다. 보통은 마음을 열어 함께 환자와 희로애락을 나누는 게 더 힘들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블랑슈는 감탄의 대상을 스스로 차단한다. 숨을 거두기 직전의 골드그래스 씨나 선돌로 변해가는 갤럭투스 여사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은 블랑슈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블랑슈는 이 아름다운 만남에 침묵한다. 만남은 곧 이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감정을 차단하는데, 그 대가는 무시 못 할 만큼 크다. 마음과 정신의 입을 틀어막는 건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 운동과도 같다.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232-233)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진단과 치료는 일방적일지 모르지만 되돌아오는 격려와 희망과 뿌듯함과 기대와 뜻하지 않은 위로 같은 것도 분명히 있을 터.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줄 때 자신의 마음이 가장 먼저 따뜻해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상사로부터 험한 말과 욕설로 고통 받아 결국 피부 질환을 앓게 된 환자에게 또 다른 동료 아멜리는 상사에게 ‘지랄하네!’라고 되받아 치라고 한다. ‘죽음보다 심각한 건 없’다고.


명절이면 종종 접하게 되는 뉴스 중에 떡 먹다 사망하는 노인들의 사연이 있다. 이런 기사에 웃음부터 터뜨리는 사람을 보고 경악하곤 하는데 정말 저 말을 돌려주고 싶다. 죽음보다 심각한 건 없다. 자신이 꼭 경험해보지 않아도 남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이고 인간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공감 능력이 그 어디보다 필요한 영역이 정치와 의료라고 생각한다. 상상력 풍부한 바티스트의 익살스럽고 때로 진지한 수다가 좋은 이유다. 조금 가벼운 올리버 색스 정도의 느낌으로.


이 책에서 가장 뭉클했던 부분,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겨놓는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워 지내는 전신부종 환자에 대해 바티스트가 웃음기 싹 걷어내고 적어 내려간 한 페이지다. 바티스트의 병원 기록은 http://www.alorsvoila.com/에서 계속 읽을 수 있다. 물론 프랑스어로. 원제가 왜 『Alors voilà』인지도 알 수 있는데, 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어떤 인물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자, 여기 ~가 있다, 정도이지 싶다.


2호실 환자를 보고 있으면 그분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마 그분도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면 아버지가 일으켜 세워주고 다시 안장에 앉혀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알파벳을 배웠을 거고, 체리도 몰래 훔쳐 먹었을 테고, 나비가 되기 전에 애벌레가 고치로 변하는 모습도 관찰했을 뿐만 아니라, 첫 성경험도 했을 것이다……. 포도주도 맛보고, 불장난도 해보고, 커피도 마시고, 가장무도회도 가보고, 대학 입학시험도 치르고, 비밀번호라는 것도 갖게 되고, 면허증도 취득했을 것이다. 기름진 음식과 짠 음식과 단 음식을 먹어봤을 거고, 춤을 추고 뛰어다니고 울기도 했을 것이며, 버스도 놓쳐봤을 것이다. 미치도록 싫어한 적도, 고통스러웠던 적도, 고통을 주었던 적도, 사과 꼭지를 따서 점을 쳐본 적도, 여행한 적도, 피라미드를 본 적도, 모나리자를 본 적도,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도, 터너의 작품도, 폴록의 작품도 감상했을 것이다. 수영도 하고, 기도도 하고, 식지도 않은 파이를 꾸역꾸역 먹다가 배탈 났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나간 적도, 일을 한 적도, 노크를 한 적도 있었을 거고, 수천 번이 넘도록 문을 여닫았을 것이고, 티브이도 장만하고 빨래도 널었을 것이다. 사랑도……. 운이 있었으면 분명 사랑도 했을 것이다.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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