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ng person NoSmoking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8점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평소라면 아내와 함께 참석했을 친목 모임에 나갔을 때, 지인 한 사람이 다가와 내게 군더더기 없이 한마디 했다.

“빠진 분이 계시네요.”

두 가지 의미에서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117)


missing person, 빠진 분. 언젠가 어딘가에서 프랑스어 단어 manquer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바로 이 의미였다. 민중사전을 그대로 옮겨보면 ‘없다, 결핍(부족)하다, 모자라다’ / ‘(사람이)없다, 결석하다, 없어지다’ / ‘없어서 몹시 그립다(보고 싶다)’이다.

Tu me manques. (네가 그리워.)

이렇게 쓸 수 있는데 많은 단어의 운명이 그렇듯, 가볍게 관용적으로 쓰는 의미의 깊숙한 곳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아주 강력하다. <향연>에서 본 적 있는, 반으로 나뉜 사람의 이야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의미심장함과 ‘결핍’의 적확함. 자기가 빼앗겼던 어떤 것을 되찾으려는(욕구하는) ‘본성상 가까운 것’의 상실이라는 의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고 있는 말.


있던 사람이 없는 상황.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신화 또는 꿈속에서만 다시 그려볼 수 있는 조우. 무슨 말로도 부족한 상실감. 어떤 위로로도 달래줄 수 없는 공허감.

아내가 죽고 나서 아마 줄리언 반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 아내가 죽은 날 이후 영원히 의미를 달리하게 될 모든 사물들과 마찬가지였을 터. 하늘. 거기를 향한 꿈, 추락, 그리하여 지상. 그리고 아내가 물리적으로 묻힌 지하 1.8미터. 인생의 층위.


하늘, 신, 영적인 삶, 종교적인 작가라면 이렇게 넘어가지 않았을까. 대신 반스는 (은유적 의미 없이 물리적인) 하늘에서 땅으로, 지하세계로 파고든다. 기도보다는 (자는 동안 꾸는) 꿈을, 초월보다는 분노와 비탄을. 직업작가가 가장 존경스러울 때는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절절히 써낼 때보다, 일상을 냉혹하게 그려낼 때보다 내겐, 가까웠던 누군가를 애도할 때이다. 무신론자 반스의 애도과정이 바로 이 책이고, 반스가 과연 그답게 글로 써내는 비탄과 애도는 다음과 같다.


비탄과 대비되는 애도의 문제가 있다. 비탄은 하나의 상태인 반면, 애도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둘을 차별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사이엔 불가피하게 겹치는 면이 있다. 상태라는 것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일까? 과정이란 것은 갈수록 나아지는 것일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아마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비탄은 수직적이고 또 빙글빙글 도는 반면, 애도는 수평적이다. 비탄은 배 속을 뒤집어놓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하고, 뇌의 혈액 공급을 차단한다. 애도는 새로운 방향으로 당신을 몰고 간다. 그러나 이제 구름에 에워싸여 있기 때문에 당신은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건지, 아니면 남몰래 움직이고 있는 건지를 분간할 방법이 없다. (144-145)


5년이다. 아내가 죽고 반스가 이 글을 쓰기까지.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니, 어떻게 말인가. 제목을 왜 이렇게 바꿨는지 알 수 없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운율을 맞추려는 출판사의 의도인가. 글쎄, 나는 원제가 더 좋다. 하늘을 나는 사랑부터 지상에서의 어긋나는 사랑과 땅 밑으로 내려가는 사랑까지 반스가 애도하는 방식이. 나는 반스가 아내에 대해 아무것도 잊지 않았음을, 완전히 떠나보내지 않았음을 안다. 위로할 수 없음도. 그냥,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렇게 멀리서 소용없이.


결국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우주가 그렇게 끝낸 일의 부산물이다. 어쩌면, 비탄 또한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그 아픔과 싸웠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슬픔을 극복했고, 우리의 영혼에서 녹을 긁어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일이 일어난 때는 비탄이 다른 곳으로 떠났을 때, 자신의 관심사를 다른 데로 돌린 때이다. 우리 쪽에서 먼저 구름을 불러들인 것이 아니며, 우리에겐 구름을 흩어지게 할 힘도 없다. 그 모든 건 어디선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예기치 못한 산들바람이 갑자기 불면서 일어난 일일 뿐이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는가? 에식스로? 북해로? 만약 이 바람이 북풍이라면, 그래서 운이 좋으면, 우리는 프랑스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2012년 10월 20일 런던에서 줄리언 반스) (194-195)


Che farò senza Euridice 에우리디케 없이 어이할까. 반스는 글을 써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마지막 순간에 고개를 돌려 에우리디케의 얼굴을 쳐다보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오르페우스들을 목격자로 두고. 반스는 ‘우주가 제 할 일을’ 할 때까지 지상에서 머물기를. 부디 그러기를.








핑백

  •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 : 시대의 소음 2017-06-07 03:59:45 #

    ... 지던지. 작은 책에 탄탄하게 담긴 반스 식 쇼스타코비치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지는 않지만, 아프다. ‘팻에게’라는 짧은 헌사. 부인의 죽음 이후, &lt;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gt; 이후, 더 탄탄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아픔을 주는 것 같다. 더 ‘반스 답다’라고 하면 이상할까. 양심대로 살 수 없었던 시대 예술가의 내 ... more



moon

CURRENT MOON

뉴스타파

알라딘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