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감정 솔직함 Smoking

모피를 입은 비너스 - 8점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티치아노, <거울을 보는 비너스>



사랑얘긴가? 사랑얘기다. 욕망얘긴가?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게 솔직하게 토로하는 욕망과 감정얘기다. 이른바 골치 아픈 ‘밀당’이나 위선 없이 진행되는 박력 넘치는 사랑과 질투. 저 유명한 마조히즘이라는 용어를 들먹이지 않고도 사랑의 감정으로 인한 소유와 집착의 절절함이 읽히는 소설이다. 사랑에 고통 받고 격한 감정에 휘둘리는 장면들이 혼잣말이나 머릿속에서보다는 주로 대화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도 서로에게 솔직한 감정이 거침없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진짜 나한테 홀딱 빠졌군요?”

“그래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을 겪고 있어요.” (48)


 

물론 혼자 고뇌하거나 번뇌하는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자기감정이 오해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욕망을 설명하고 그것을 상대로부터 존중받는 과정. 그런 것이 사랑 아니던가. 서로 합의한 성인들 사이 사랑의 감정과 형식에 변태는 없다. 제베린의 ‘노예근성’과 반다가 자신 안에서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주인근성’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욕망이다.
 

아! 그녀의 손에 한 번만 맞아보았으면. (155)


 

마조히즘이라는 단어에 뿌리를 준 작가(자허-마조흐)의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명명만으로 폄하되어야 할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액자 속에서 자신의 노예 경험을 다 들려준 액자 밖의 제베린이 내리는 계몽적인 결론(“내가 멍청이였다는 거죠.”)은 완전히 뜻밖이어서 자칫 소설 전체를 바래게 할 뻔했는데 작품해설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른바 소설적 장치라는 것. 마르키 드 사드의 맥 빠지는 마지막 두 쪽 급종결교훈에 당황했던『미덕의 불운』과도 같은 느낌.


작가의 신분이 한때 교수를 지냈던 지식인이었고 시대가 19세기 후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치 계몽주의적 소설의 말미 같은 결말은 하나의 소설적 장치로 보아야 한다. 당시의 사회적 금기를 넘어설 수 있는 이른바 외적 구실이다. (241 작품해설, 김재혁)


 

그렇지 않고서야 액자 속 반다가 아래처럼 선언하도록 하지는 않았을 터. 그들의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제베린을 진정으로 사랑했었다며 그들이 함께 했던 절정의 순간을 그린 초상화를 보내온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 의리의 반다.


“(…)기독교의 결혼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거기에 덧붙여서 불멸의 개념까지 생각해 낸 것은 정말 그럴듯해요. 하지만 나는 영원히 살 생각은 없어요. (…) 한 번 사랑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제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계속 매여 있어야 하나요? 아니에요, 나는 아무것도 단념하지 않아요. 내 마음에 드는 남자라면 나는 그게 누구든 사랑하고 싶고 또 나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누구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 (38)


 

영원이라는 말은 무섭다. 특히 그것이 사랑과 함께 나올 때는. 어릴 때 본 <전설의 고향> 에피소드가 연상될 정도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커플인데 여잔지 남잔지가 젊은 나이에 덜컥 먼저 죽어 그 시신이 매일 밤 방으로 찾아온다는 오싹한 이야기. 내게는 그게 ‘영원한 사랑’의 이미지다. 반다의 입장은 일견 쾌락주의와도 닿아 있다. ‘성스러운 의식이나 맹세 그리고 계약 등을 통해서 우리의 덧없는 인생 중에서도 가장 변하기 쉬운 사랑에 영원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37)갔음을 모르는 이 없건만 모두 그렇지 않은 척 살고 있지 않나. 무엇을 위해서? 쾌락주의자인 나는 알지 못한다.


마무리는 루 리드의 멋진 목소리로. <Venus in furs>  R.I.P. L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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