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그린을 찾아서 NoSmoking

책 사냥꾼 - 6점
존 백스터 지음, 서민아 옮김/동녘

 

책 제목이 잘 말해주듯 책중독자의 고백록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존 백스터의 어릴 때 책 섭렵 기억부터 직업으로 희귀본 거래를 하게 된 우여곡절과 여러 에피소드들이 묶였다. 책사냥꾼으로 접어드는 데는 으레 추종하는 한 작가로부터 시작하기 마련일 것인데, 백스터의 작가는 그레이엄 그린이었다. 숱한 글쟁이들이 흠모하는 작가로 종종 거론되는 그린, 정작 우리 번역본으로는 작품의 반 이상이 절판 상태라 늘 아쉬웠다. 그나마 문예출판사의 『제3의 사나이』를 읽었고 시사영어사 편집부의 『사건의 핵심』을 구해놓은 게 다다. 언젠가 다시 좋은 번역으로 차차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희귀본 거래업자이자 글쟁이로 릭 게코스키를 나는 좋아하는데, 반면 존 백스터는 이상하게 잘 읽히지 않았다. 낯선 이름들이 워낙 많이 등장하고 책의 가치를 잘 모르는 판매자를 속여 싼값에 구매하는 장삿속이 좀 불편했기도 했다. 로알드 달의 「목사의 기쁨」에서 주인공이, 귀한 중고 가구를 능청스럽게 헐값에 사면서 결국 장작으로 ‘친절하게’ 변한 목재무더기를 싣고 가게 되는 이야기가 떠올라, 백스터도 어떤 보복을 좀 당했으면 싶기도 했고. 뭔가 꺼끌꺼끌하게 넘어가지 않는 음식을 씹고 있다는 느낌에 솔직히 말해 반 정도 읽고 리뷰를 시작하고 만다. 아니나 다를까 백스터가 게코스키를 언급하는 반가움을 먼저 옮겨야하겠다.


 

이런 전집류에 입맛을 다시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릭 게코스키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1960년대에 옥스퍼드대학을 다닌 게코스키는 친구가 가지고 있던 디킨스 전집이 탐나 10파운드에 사더니, 한 달 있다 아내에게 양가죽 외투를 사주고 싶다며 블랙웰 서점에 20파운드를 받고 팔았다. 그로부터 15년 뒤, 워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지프 콘래드며 기타 좋아하는 작가들에 관한 책을 쓰는 한편 책사냥꾼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마침내는 런던에 자기 서점을 열었다. (33)


 

릭 게코스키의 두 번째 책이 『게코스키의 독서편력』(2011, 뮤진트리)인데 책의 원제가 『Outside of a Dog』(2009)이다. 이에 관해 알라딘 에르고숨 님(릭 게코스키 전작독자이다)의 별 것 아니지만 도움 되는 페이퍼의 일부를 보자.


재치 넘치는 원제, Outside of a Dog.

이 책이 독서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요 어구가 어떤 문장을 이끌고 올지 상상 가능하다. 그루초 막스의 독서명언으로 알려진 Outside of a dog, a book is man's best friend. Inside of a dog it's too dark to read. (개를 제외하고 책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다. 개에 푹 빠져 있으면 독서를 할 수 없다. Groucho Marx, 네이버 어학사전) 직역해서 제목을 붙였으면 ‘개를 제외하고,’ ‘개 말고는’ 정도 되었을까. (에르고숨)


 

『책사냥꾼』원서가 2002년에 나왔으니 『게코스키의 독서편력』보다 7년 앞선 셈인데, 그루초 막스의 경구가 나란히 두 책에 쓰인 경우다. 『게코스키의 독서편력』에서는 제목으로, 『책사냥꾼』에서는 제사(題詞)로. 번역되어 실린 문구가 이렇다.


 

개보다 나을 때, 책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개보다 못할 땐, 책을 읽어도 도통 무슨 소린지…….

-그루초 막스(Groucho Marx, 미국 코미디언)


 

두 해석이 너무 달라 혹시나 해서 『책사냥꾼』의 원서『A Pound of Paper』를 찾아봤다. 캡처.


 

같은 문장인데. ‘개보다 나을 때’? 좀 거북했다. 개와 비교되는 대상이 책인지 인간인지도 애매하고 이상하다. 네이버 어학사전의 해석 쪽에 한 표를.


책쟁이들이 책을 소중히 다룬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헌책방을 운영하며 글을 쓰는 우리나라의 어떤 저자는 심지어 책을 활짝 펼치지도 않고 책끈도 절대 사용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는다고까지 한 걸 들은 적이 있다. 책을 사랑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일 테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책에 낙서라 하면, 펄쩍 뛸 일일 것이다. 백스터가 면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책 앞쪽 면지(책 맨 앞부분에 붙은 비어 있는 종이)를 뭐든 끼적이라고 있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신사숙녀 여러분,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면지는 낙서하라고 끼워놓은 종이가 아니라, ‘나눔 절단, 접기, 실매기, 다듬 절단’ 같은 제책 과정과 마찬가지로 책의 속장과 표지를 연결하는 나름의 역할이 있음을 알아주시길. 해럴드 핀터의 연극에 나타나는 침묵처럼, 베토벤 사중주의 악장 사이 쉼처럼, 베이컨이 <절규하는 교황들> 가운데 한 작품에 색을 칠하지 않은 것처럼, 한 권의 책에서 면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 면지는 표지의 다채로움과 본문의 진중함을 조화롭게 이어준다고 할 수 있다. (94-95)


 

그렇지만 이런 건 아름답지 않은가.



 

김연수 작가는 정말 가장 예쁜 서명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저 책은 『청춘의 문장들+』이고 왼쪽 정영문 작가의 것은 『어떤 작위의 세계』, 오른쪽은 이현우 저자의 『아주 사적인 독서』이다. 물론 백스터도 이렇게 덧붙이기는 한다. ‘면지 위에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최소한 표지의 아름다움이나 본문의 내용과 버금가는 것이어야 한다.’ (95)

‘표지의 아름다움이나 본문의 내용과 버금가는 것’으로 저자의 사인만한 것도 없겠지만, 알지 못하는 어떤 이들의 메모도 때로는 내게 한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던데. 마치 내가 무슨 고백을 받은 듯한 설렘 같은 것. 책에 남겨진 그런 글씨들의 책이 윤성근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2013, 큐리어스)였지 아마.


책쟁이들의 책을 읽는 것은 나의 경우, 좋아하는 작가를 간혹 만나기 때문인데 반쯤 읽은 이 책에도 어김없이 그런 사례는 있었다. 베케트.


작가가 눈앞에 있는데도 서명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그 애석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BBC의 프로듀서 데이비드 페리는 사뮈엘 베케트를 인터뷰하러 비평가인 크리스토퍼 릭스와 동행하여 파리로 갔다. 사뮈엘 베케트는 평소처럼 방송 녹음을 사절하고 대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들은 베케트의 아파트에서 가까운 생자크 가의 평범한 현대식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면서 베케트가 그 어느 때보다 친근하게 이야기에 응하자, 페리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한 권도 안 갖고 온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페리가 속상해하는 것을 눈치 챈 릭스는 탁자 밑으로 작은 서류가방 하나를 페리에게 건넸다. 가방은 베케트의 책은 한 권도 없고 다른 작가의 초판들로만 꽉 차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베케트가 그 책에 몽땅 서명을 해줬다니까!” 페리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일을 원통해해며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197-198)


 

베케트가 몽땅 서명을 해준 저 책들도 어떤 책사냥꾼에게는 사냥감이 되어 수색당하고 있을 터. 그 책이 무엇이든 나 또한 갖고 싶은 마음은 든다. 그러니 책사냥꾼들의 책을 이렇게 읽고 앉았지 않겠나. 『책사냥꾼』나머지 반을 마저 볼지 말지 아직도 모르겠다. 저자의 아래 문장에 일단 정을 좀 떼였기에. 글 값을 지불하고 잡지에 꼭지를 주겠다는 어떤 편집자의 제안을 처음 받고 저자 본인이 작가 자질이 있을지 자문하는 대목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더구나 오스트레일리아 공상과학소설작가라고 하면 다들 어처구니없어 할 것 같았다. 그건 아마, 여자가 공상과학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를 상상하면 대충 비슷할 것이다. (126)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라면 책의 반만 읽혀도 될 성 싶기도 하다. 혼자만 어처구니없을 일이지 왜 애꿎은 인류의 반은 물고 늘어지는지. 메리 도리아 러셀, 어슐러 르귄, 마거릿 애트우드, 옥타비아 버틀러, 마지 피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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