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소 Smoking

복덕방 - 10점
이태준 지음/범우사

 

이태준. 단편의 대가. 편안하고 차진 문장으로 술술 읽히는 서민의, 그러니까 좀 못난 사람들의 이야기. 박태원이 아름답고 고고한 느낌이었다면 이태준은 생활에 더 착 달라붙은 아픔과 슬픔을 포착한다고 할까. 작품들을 섞어놓고 두 작가를 구분해보라 한다면 (지금 감각으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허풍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떨고 싶을 정도로 참 좋은 글들이다.


단편의 매력은 늘 마지막 마침표의 강렬한 여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복덕방』에 실린 열 개의 단편 모두 그런 마침표들이다. 짧게는 10여 쪽, 길게는 20여 쪽에 불과한 글에 어떻게 이런 에너지를 넣을 수 있는지 놀랍다. 페이퍼의 제목은 여섯 번째 작품, 「아무 일도 없소」에서 가져왔다.


K는 그만 자기 동기간의 일처럼 울음이 터져 나오려 하였다. 그를 끌어안고 같이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방바닥은 얼음같이 차올라왔다. 그러나 K는 얼굴이 화끈하였다. “저들을 위해서 나의 붓은 칼이 되리라 한 그 붓을 들고 자기는 무엇을 쓰러 나섰던 길인가? 고약한 놈이다!” 하고 K는 얼마 안 되는 시재를 털어놓고 사람 살리라고 소리나 지를 것처럼 주먹을 쥐고 서두르며 그 집을 뛰어나왔다.

그러나 세상은 얼마나 고요하랴. 얼마나 평화스러우랴. 어디선지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만이 “불도 나지 않았소, 도둑도 나지 않았소, 아무 일도 없소” 하는 듯이 느릿느릿하게 울려왔을 뿐이다.
(100, 「아무 일도 없소」)


 

무심한 (그리고 때로는 무식한) 관광객이 흔히 하듯, 외부 멀리서 보면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운 풍경과 인간과 마을일 것이다. ‘관광’이라는 말에 조소의 뉘앙스가 스미는 이유이기도 할 텐데, 한국을 보려면 새로 지은 시청 건물이나 복작대는 명동 거리를 구경하는 것만큼 이런 작품도 읽어야 하리라.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1930년대 이태준이 숨 쉬었던 공기가 바로 『복덕방』, 우리의 모습이(었)다.


하룻밤에 다 읽어버린 범우사의 작은 책. 꿈에 잠깐 내 할아버지를 만나고 온 것 같은 아쉽고 따뜻하고 슬프고 아련한 감정이 떠돈다. 조금 울고 싶기도 했다. 방 서방처럼.


우선 단골집으로 가서 얼근한 술국에 곱배기로 두어 잔 들이켰다. 그리고 늙스구레한 주모와 몇 마디 농담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다 나서니, 세상은 슬프다면 온통 슬픈 것도 같고 즐겁다면 온통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술만 깨면 역시 세상은 견딜 수 없이 슬픈 세상이었다.

“경칠 놈의 세상 같으니!”

하고 아무데나 주저앉아 다리를 뻗고 울고 싶었다.
(69-70, 「꽃나무는 심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