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종말의 한 모습 Smoking



유년기의 끝 - 8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시공사

 

인류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 생각으로는 어떤 대량 살상 무기에 의한 어리석은 자멸, 순식간의 동시 사망, 그리하여 인류의 종말과 폐허를 우울하게 살펴보는 ‘최후의 인간’ 따위 있으리라 여기기 힘들지만, 문학적인 장치로서 그런 상황만큼 비장한 장면도 없으리라.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로서 아서 클라크는 아시모프와 마찬가지로 핵폭탄에 대한 경계는 철저하다. 그들이 상상하는 인류나 지구의 종말은 적어도 핵폭발에 의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게 첫 번째 안도.


스톰그렌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캐렐런이 스톰그렌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마지막 증거였다는 사실을. 설사 그것이, 인간이 헌신적이고 영리한 개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해도 그러나 그런 애정치고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었으며, 스톰그렌은 살아가는 동안 그보다 큰 기쁨을 맛본 적이 없었다. (97)


 아서 클라크가 그리는 인류와 초지성 외계인 오버로드(감독관이 캐렐런)와의 조우는 비교적 우호적이라는 게 두 번째 안도이다. 저런 배려와 우정에 살짝 감동까지 할 정도로. 그러나 호의와 함께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친구일 수는 없는 법.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인류에게 접근한 오버로드는 분명한 제국권력으로서 미개한 종족, 즉 인류를 보살피는 입장을 취한다.


‘우주의 거대한 고독’이라는 말은 창조론, 진화론 얘기를 할 때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방식인데, 신의 계획이나 시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름 아니라 클라크는 우주의 거대한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듯 하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클라크가 직접적으로 어떤 창조주를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그에게 신은 과학 또는 정신과학의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절대자에 대한 기대감이 어리석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우리가 여러분 위에 있듯이, 우리 위에도 뭔가가 있으며, 그것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우리를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의 도구였고 또 감히 복종하지 않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만, 우리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 여러분은 그 말이 가진 아이러니도 모른 채 우리를 오버로드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위에 있는 존재는, 도예가가 물레를 사용하듯 우리를 사용하고 있는 존재는 오버마인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종족은 그 물레에서 빚어지고 있는 진흙입니다. (281-282)


오버마인드와 인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한 오버로드는 그렇지만 의리는 있어서 최후의 인간, 잰을 기다려준다. 80년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소.”

캐렐런이 말했다. (309)


 바보 같은 저 말이 왜 이렇게 멋진지 모르겠다. 처참한 종말의 목격자가 필요했을까. 오버로드도 외로웠을까 과연. 잰의 고독은 <그래비티>의 조지 클루니를 생각나게 하기도 했는데, 잰은 그에 비하면 중재자로부터 임무를 받아 쓸모를 끝까지 행하는 인간종족의 최후 존재였다. 권태를 느낄 틈도 없이 충실하게. 나는 늘 고독과 권태가 사람을 더욱 깊거나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오버로드의 ‘선한’ 통치로 유토피아를 맞이한 중에서도 아래처럼 자문하는 인간들, 권태에서 비롯될 수 있는 심오한 질문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인류는 ‘절대자’에게 호락호락 순응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그러나 행성 전체를 거대한 놀이터로 만들고 있는 듯한 이 모든 오락과 기분전환거리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오래되고 해답 없는 질문에 매달릴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어디로 가는 걸까?’ (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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