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된 인간과 말 없는 삶 NoSmoking

 

소진된 인간 - 10점
질 들뢰즈 지음, 이정하 옮김/문학과지성사



철학자의 책을 읽음은 말을 벼리는 일 같기도 하다. 이정하가 옮긴 들뢰즈가 그렇다. 가령 ‘소진된 인간’이라는 말.


소진된 인간l'épuisé은 피로한 인간le fatigué을 훨씬 넘어선다. (…) 피로한 인간은 단지 실현을 소진했을 뿐이다. 반면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하는 자이다. 피로한 인간은 더 이상 실현할réaliser 수 없다. 그러나 소진된 인간은 더 이상 가능하게possibiliser 할 수 없다. (23-24)



가능성이 0퍼센트인 신체들, 베케트의 인물들을 이름하기위해 소환된 말, 소진된 인간l'épuisé. 무(無)에 가까운, 어쩌면 죽음에 가장 가까운 말이 아닐까. 그러나 죽음 쪽에서 보자면 (-)가 되기 직전의 순간, 경계선을 넘기 전의 0이라는 놀라운 생기. 보색을 이루는 두 가지 색의 경계선에서 각자의 색깔이 가장 선명해 보이는 그런 현상을 생각해보게 된다. 다름 아니라 비로소 베케트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순간.

 





일찍이 말의 불가능성, 더 정확히는 말이 가진 너무나 많은 함축과 배경을 경계하였던 베케트가 만든 텔레비전 단편극들에 관해 들뢰즈가 말년에 쓴 해제와 그것을 또 풀어 설명하는 이정하의 글이 묶였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 침묵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전전긍긍’(『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하기까지 한 베케트를 어떻게 말로 풀어내나. 아니면 철학자의 진정한 과업이 그런 데에 있는 걸까. 내게는 베케트의 이미지보다 들뢰즈의 해제가 더 어렵고 들뢰즈를 설명하는 이정하의 탁월한 글이 더 까다롭게 읽힌다. 언어 간 번역의 간극보다 장르 간 번역의 덜컹거림이다.


등장인물: 1, 2, 3, 4

-각 배우들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얼굴은 전혀 볼 수 없지만 되도록 서로 닮아야 하고 작고 마른 체형이 요구된다. 일정 정도의 춤 경력이 있어야 한다. 성별은 무관하다.

(155, 「쿼드」시나리오 중)


 

의미 없는 동작들이 공간을 점령하면서 이루는 운동성, 규칙성, 반복성, 정확성, 충만함, 리듬감, 그와 함께 흐르는 시간, 이상한 아름다움과 감동. 몰로이가 세 쪽에 걸쳐 정확한 순서로 번갈아가며 빠는 조약돌. 다섯 개의 작은 과자들의 조합(『머피』). 이만 가자, 기다려야지, 오지 않는 고도. 순전한 베케트 적 언어. 그가 ‘더 이상 아무 것도 끌어낼 수 없는’(『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말들로부터 해방되어 이룬 무언가. 쿼드, 사각형 혹은 사인무(四人舞)다. 그에 대한 같은 장르로서의 (반)해제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소진된 ‘인간.’ 적어도 웃기고 슬픈, 몰락 아닌 몰락, 정확함이 없이 와해되는 이런 느낌은 아니라는 것. ‘비천하고 위대한’ 인간의 살, ‘최상의 정확함과 극단적 와해’를 이루는 신체가 베케트의 관심이자 내게는 어떤 감동이다. 그 결을 더 잘 어루만져주는, 또 다시 장르의 문제인데, 역할을 하는 건 아마도 문학. 나탈리 레제의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이 있다.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 10점
나탈리 레제 지음, 김예령 옮김/워크룸프레스(Workroom)

 

가까스로 하나의 ‘삶’이라 부를 수 있을 듯 말 듯한, 아무튼 분명코 ‘전기’는 아닌 것을 생각하자. 전기의 의미론적 연관은 하나의 고정관념 주변을 무미건조하게 맴돌며 삶을 의혹 어린 태도로 잘게 분쇄할 뿐 (…) 결코 그것 자체를 다루지는 않기 때문에. (15-16)


 

베케트에 관한 아름다운 산문. 직업적으로 자료를 만져온 사람이 호들갑 떨지 않고 그 사람에 대해, 파편들을 근거로 적어 내려간 밀도 있는 글이다. ‘아주 많은 경우 우리는 사소한 사물들을 통해, 그 사물들 사이의 빈 공간을 통해 타자와의 내연 관계에 들어간다. 그것들은 남는 것의 흔적, 결여된 것의 양감이다.’ (18) 사진 한 장이나 기록물 하나, 남겨진 원고나 편지들 조각, 소위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 같은 것으로 구축되는 한 사람, 한 삶, 또는 삶들.


기록물을 다루는 나탈리 레제와 희귀 초판본 거래업자 릭 게코스키의 직업에는 짐작건대 대체로 닮은 점이 있다. 게코스키의『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에 소개된 베케트의 절친 브라이언 코피 에피소드를 여기에 옮겨놓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로즈버드인 셈인데 어쩌면 친구인 코피 영감 자체가 베케트를 설명하는 큰 한 조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코스키와 코피 영감의 대화다.


“그러면 그 편지들은 어디다 두셨는데요?”

“샘한테 받은 편지? 아, 그야 모두 없애버렸지.”

없애버렸다니!

“왜 그렇게 하셨어요?”

“처음에는 일단 답장을 쓰고 나서, 편지를 그냥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지. 흔히들 그러듯이 말이야.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까 샘이 점점 유명해지더군. 그래서 그때부터는 각별히 신경 써서 없애버렸지. 왜냐하면…….”

“왜냐하면요?”

“왜냐하면 그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이야기였으니까.”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178)



희귀본 거래업자로서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상상이 가는 한편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금세 고개 끄덕여진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보호받아야 할 ‘사적인’ 생활이 있었을 것이고 코피 영감이야말로 베케트의 친구다운 면모를 보여준 게 아닐까하는 정도로. 게코스키도 에피소드를 이렇게 맺음하고 있다. ‘나로선 문학사의 일부분이 상실된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태도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단서는 결정적일 수 있지만 단서로부터의 해석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예컨대 나탈리 레제가 수집한 베케트의 ‘목소리’에 관한 숱한 사람들의 (때로는 상반되는) 증언을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의 마지막 세 쪽에서 읽을 수 있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베케트의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선명한 채널을 찾는 과정 같다. 많은 목소리들이 들쭉날쭉 들려오는 가운데 베케트의 것은 희미해지다가 결국 잡히지 않는 주파수가 되어 여러 목소리 가운데 사라진다.
 

“베케트 목소리요. 따로 외국어 투가 있었다는 기억은 없어요. 하지만 아마도 제가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잘 떠오르지 않아요. 이젠 아득히 오래된 일이니까요.”

“전 잊어버렸어요. 심지어 그의 얼굴마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126)



적어도 내게는, 내가 느꼈던 베케트와 가장 닮은 책이다. 조용하고 자기를 많이 보여주지 않고 간소하고 날씬하고 지적이며 ‘감지할 수 있으나 설명 불가능한 것.’ 본문에 맞춤한 듯한 ‘옮긴이의 글’에 반한 경우도 참 오랜만이다. 2006년 김예령이 프랑스의 한 서점에서 나탈리 레제를 발견한 순간과 2014년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 시리즈를 축복한다. 90년대 말 사전을 찾아가며 프랑스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은 나를, 작년 크리스마스 『몰로이』의 기억과 비오는 밤의 「쿼드」, 그리고 언젠가 읽기를 희망하는 『이미지』까지. 소진하고 소진하여 마침내 이르는 이미지의 지점, 즉 예술. 무용(無用)의 극한에서 삶을 무용(舞踊)하게 하는 위대한 위무를 건네주는 창백한 푸른 눈의 이상한 감동, 베케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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