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 1: 전쟁은 어떻게, 오펜하이머가 들려주는, 트리니티, 카운트다운 1945 NoSmoking


전쟁은 어떻게 과학을 이용했는가 | 김유항, 황진명 | 사과나무


고대부터 현대까지 과학과 더불어 변모하는 전쟁상을 들려줍니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변할지 기대, 아니 걱정하게 됩니다(라고 백자평을 썼습니다). 저자들 블로그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중구난방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드 비어스의 다이아몬드 편은 갑툭튀, 프로파간다 편은 뭥미스러웠다고 할까요. 또한 사람 이름 표기가 생소합니다. 비그너(위그너), 질라드(실라르드) 등. 일관적인 흐름이 없으니까 각자 관심 가는 꼭지만 찾아봐도 괜찮겠죠. 다 읽고 나서 하는 말입니다. 원자폭탄에 꽂혀 있는 저는 오펜하이머와 텔러 편을 가장 재미있게 봤습니다.


미소냉전을 첨예하게 한 사태가 원자폭탄이니 그 당사자들 고초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1950년대 매카시즘 말입니다. 젊은 시절 공산주의에 미혹됐던 오펜하이머의 과거 행적이 문제시됩니다. 핵분열이라는 자연법칙의 힘을 이용하여 ‘세상을 바꿔버린’ 원자폭탄 이후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 등은 반전주의로 각성한 반면 에드워드 텔러는 오히려 더더더, 핵융합폭탄(수소폭탄, 수퍼)까지 만들자는 입장을 취합니다. 그 뿐 아니라 오펜하이머를 은근히 디스합니다. 텔러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모델이라지요. 리처드 로즈 <원자폭탄 만들기>를 아껴두고 있는 제 입장에서 이러구러 다 ‘스포’당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이런 스포는 환영합니다.


후에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의 과거가 아무리 핑크색일지라도 한 번도 충성심을 의심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을 갖지 못한 FBI는 거의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오펜하이머를 도청하고 엄중히 감시했다.

1943년 오펜하이머가 뉴멕시코주에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비밀스런 로스앨러모스 과학연구소를 설립했을 때, 맨 처음 채용된 사람들 중 하나가 텔러였다. (230)



오펜하이머가 들려주는 원자폭탄 이야기 | 송은영 | 자음과모음


맨해튼 프로젝트를 간략하게 잘 담고 있습니다. 주로 역사적 사실과 과정을 담고 있어, 과학적 해설에서 아쉬운 부분은 페르미, 퀴리, 러더퍼드 편을 참조하라는 설명까지 친절합니다(라고 백자평을 썼습니다). 퀴리 편은 이미 읽었습니다. <카운트다운 1945>와 <트리니티>도 보고 온 지금 오펜하이머가 들려주는 원자폭탄 이야기는 중언부언이겠지요. 하지만 이 시리즈 제가 좋아하거등요. 쉽고 친절해요. 시간 없는 독자라면, 그리고 시간 있으며 친절함이 필요한 외로운 영혼이라면, 강력 추천합니다. (반어법 아니고 진심)


미국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콤프턴은 이런 미소한 질량 차이를 이용해서 우라늄을 분리해 내는 방법을 개발해 내었는데, 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열을 가해 우라늄을 기체 상태로 만듭니다.

그 기체 안에는 우라늄-238과 우라늄-235가 섞여 있습니다.

이들을 미세한 구멍이 세밀하게 나 있는 판 속으로 통과시킵니다.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가듯이, 우라늄-235가 무거운 238보다 한두 개라도 더 많이 판을 지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연이어서 계속 하면, 구멍을 통해 걸러진 우라늄 가스 속에는 우라늄-235의 비율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 과정을 농축이라고 부릅니다. (167-168)



트리니티 | 조너선 페터봄 | 이상국 옮김 | 서해문집


짧은 분량에 실속 내용이 담겼네요. 맨해튼 프로젝트를 잘 개괄합니다. <원자폭탄 만들기>가 너무 길어서 막간에 봤는데 좋습니다(라고 예의 백자평에 썼습니다). ‘트리니티’라는 별명은 오펜하이머가 붙였다고 하지요. 문학 소양이 깊었던 오펜하이머가 존 던의 시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 시 궁금합니다. 아시는 분 전문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여기저기서 잠깐잠깐 봐도 멋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제 보관함에 있습니다. 여기서도 멋지면…… 인정하지요, 뭐. 어쨌든 앞의 말을 다시 하겠습니다. 시간 없는 독자에게 맨해튼 프로젝트 한 권 추천하자면 이 책(만화입니다)입니다.


뉴멕시코 주 북서부. 로스앨러모스 서쪽 약 160km. 지금의 모습인지 천 년 후의 모습인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다. (…) 땅 위로는 어떤 냄새도, 어떤 소리도 올라오지 않는다. 특별히 볼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 감각만 믿을 수는 없다. 만약에 어떻게든 방사선을 볼 수 있다면 사방팔방에 존재하는 이 힘을 볼 수 있으리라. 바위 속에서, 우리 뼛속에서, 공기 중에서, 수중에서. 그리하여 우리는 원자력의 힘이 신에게서가 아니라 그저 대지에서 훔쳐 온 것임을 깨달으리라. 그리고 우리는 이 원자력이 자연의 힘 중 하나임을 기억하리라. 지진과 마찬가지로 무심한 것. 태양과 마찬가지로 무심한 것. 이 힘은 우리의 꿈보다 오래 살아남으리라. (154-157, 후기)



카운트다운 1945 | 크리스 월리스, 미치 와이스 |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너무 재미있어서 중간에 끊기가 아쉬울 정도였습니다(끊어서 읽었다는 얘기죠). 과학자, 군인, 정치가, 노동자, 피해자의 관점이 골고루 등장하면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충실하게, 카운트다운 말 그대로, 시시각각 들려줍니다. 태백산 끌려가기 직전까지 반을 읽고 있다가 다녀와서 나머지 반을 읽었습니다. 이런 글쓰기도 있습니다. 자료를 쫙 모아놓고 시간 순으로 정리하기. 좌르르 펼쳐진 연대기 속에 한 장면을 배치하기. 물론, 뺄 것과 넣을 것을 생각합니다. 뺄 것과 넣을 것을 잘 선택하는 게 좋은 글쓰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선택은 좋았습니다. 영리하게(?) 감동적입니다.


(리뷰가 심히 게을러 보여 이어 씁니다) 루스벨트 사망일부터 카운트다운이 됩니다. 얼떨결에 대통령이 되는 트루먼 비롯, 군 수뇌부와 정치인들이 한켠에 등장합니다. 로스앨러모스에서는 오펜하이머와 그로브스 대령 중심으로 과학진이 구성되어 연구 중입니다. 여기에 반가운 이름이 줄줄줄 나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물론이고 당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총출동한 격입니다. 우라늄 농축을 위한 공장은 오크리지에, 플루토늄 생산 공장은 핸포드에 지어졌습니다. 꼬마(리틀보이)는 우라늄, 뚱보(팻맨)은 플루토늄 폭탄인 까닭입니다. 자기가 큰 그림 속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기계적인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상상됩니다.


지리적으로 이렇게 워싱턴, 로스앨러모스, 앨라모고도, 오크리지, 시카고 등 미국 전역과, 포츠담 선언 때문에 트루먼이 며칠을 보내게 되는 독일, 그리고 일본 본토 공격 교두보인 티니안 섬이 배경이 됩니다. 티니안 섬에서도 반가운 이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속 벅 터지슨 장군 모델이 됐다는 커티스 르메이 같은 인물 말이죠. 주요 인사들은 출신과 성격이 잘 부여돼 생생하게 읽힙니다. 카운트다운 0는 언제일까요. ‘그때 한낮의 태양보다 밝은 섬광이 하얀빛으로 비행기를 비추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315) 네, 리틀보이 히로시마 투하 순간입니다. 아흑. 움직임 없는 역사임에도 어쩜 이렇게 무섭고 슬프고 흥미진진한지요. 추천사에 보니 ‘논픽션 스릴러’라는 말이 있네요. 과연 그렇습니다. 간략하나마 몇몇 인물별 후일담도 들려주니 더욱 좋습니다. 크게는 죄책감 혹은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둘 중 하나이겠습니다.


<전쟁은 어떻게 과학을 이용했는가>라고 했지요. 과학 또한 전쟁을 이용한 면이 있지 않겠습니까. 대표적인 사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것도 알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천재들이 폭탄광, 전쟁광은 아니어서 죄책감과 반성과 반전의식이 함께 자라나기도 합니다. 이 멋진 책, 만듦새가 허술한지 제가 막 봐서 그런지, 면지 부분이 해체되는 약점이 있습니다. 풀로 잘 붙여 간직하렵니다. 시간이 없는 독자에게도, 시간이 있는 독자에게라면 더욱, 추천합니다. 사진에 벌써 등장했네요, <원자폭탄 만들기>는 제가 아껴두고 있다고 얘기했던가요?


일본의 도시에 폭탄이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분명했다. 그렇다. 그것은 전쟁을 빨리 끝낼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오펜하이머가 베인브리지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군인이었던 그는 손을 잡지 않았다. 그는 오펜하이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 모두 개새끼들이오.” (188-189)





덧글

  • 최세희 2021/07/28 10:25 # 삭제 답글

    Batter My Heart, Three Personed God
    -John Donne

    Batter my heart, three-personed God; for You
    As yet but knock, breathe, shine, and seek to mend;
    That I may rise and stand, o'erthrow me, and bend
    Your force to break, blow, burn, and make me new.
    I, like an usurped town, to another due,
    Labor to admit You, but O, to no end;
    Reason, Your viceroy in me, me should defend,
    But is captived, and proves weak or untrue.
    Yet dearly I love You, and would be loved fain,
    But am betrothed unto Your enemy.
    Divorce me, untie or break that knot again;
    Take me to You, imprison me, for I,
    Except You enthrall me, never shall be free,
    Nor ever chaste, except You ravish me.

    "Batter My Heart, Three Personed God" '삼위일체의 신이시여'에서 영감을 얻어 '트리니티(Trinity)-삼위일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해요. 강원도 다녀오셨군요. 태백산에서 재미나게 노셨나요? ㅎㅎㅎ
  • 에르고숨 2021/07/28 10:59 #

    어머머. (번역해주세욧!ㅋㅋㅋ) 고맙습니다. 이렇게 냉큼 찾아주시다니, 감동했습니다. 소중히 간직+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태백산 정말 좋았어요. 시원하고, 사람이 거의 없었답니다. (TMI. 내일은 또 사람 없는 어딘가로 갑니다;)
    그나저나 이 독후감 너무 게으르네요. 뭔가 좀 덧붙여 써봐야겠어요. 쓩-
  • 최세희 2021/07/28 11:33 # 삭제

    여름 산이 생각보다 시원하죠. 게다가 한적한 곳이었다니, 정말 좋았겠어요. 내일 또 떠나신다니 매인 몸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에요. 독후감 언제나처럼 재밌게 읽었어요. 덧붙여 쓰신다니 기대기대^^
  • 에르고숨 2021/07/28 11:57 #

    부상투혼등산은.. 흑. 아예 말을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저도 제가 부럽습니다.ㅋㅋㅋㅋㅋㅋ 최세희 님 더위 조심+건강하게 여름 나세요!
  • 함부르거 2021/07/29 14:04 # 답글

    원자폭탄 만들기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책이 이렇게 많았군요. ㅋ 리처드 로즈의 후속작인 수소폭탄 만들기도 재밌었습니다. 둘 다 분량은 만만하지 않지만 읽는 재미 하나는 끝내주죠.
  • 에르고숨 2021/08/03 17:42 #

    로즈의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다 읽으셨어... 존경합니다!ㅋㅋ 재미 하나는 끝내준다 하시니, (안 본 눈) 제가 부러우시겠어요. 헤헤. 아껴 읽어볼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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