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평과 밑줄: 몬스터, 광기, 티투바, 불 속에서, 마스 룸 Smoking




한낮엔 그림자 한밤엔 목소리. 기획 좋네요. 여는 작품 ‘괴물들’(손원평)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루카스와 클라우스가 왔나 했습니다. 서늘해서 좋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간신히 남편을 달래는 데 성공했고 둘은 난임 전문병원에 주기적으로 발을 들였다. 여자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막연히 무언가를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평화와 안온함의 상징, 단란하고 완결된 가족을. 때로는 뭔가를 더 완성시키기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모든 것을 어그러지게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20, 「괴물들」, 손원평)


+라고 올린 후 한글 파일에서 쓰다 만 독후감 발견.


몬스터를 테마로 한 작품집이다. 두 권으로 나왔고 부제가 각각 <한낮의 그림자>와 <한밤의 목소리>다. 부제 멋지다. 한낮에는 그림자이고 한밤에는 목소리인 거다. 한낮 먼저 사 봤다. 그림자가 더 무서울 것 같아서. ‘<몬스터 : 한낮의 그림자>는 평범한 일상 속, 어딘가 낯익은 주인공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내 안의 혹은 우리 안의 괴물을 발견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는 설명이다. 다섯 작가, 다섯 개의 그림자다.


할아버지 어깨를 짓누른 건 신의 손이 아니라 공포 아니었을까? 할아버지는 무서워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포가 할아버지를 살렸다. 이후에도 할아버지는 공포의 힘으로 살아간 것 같다. 독재자를 존경했던 것, 또 다른 독재자를 자랑스러워했던 것, 독재자가 자기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 젊은 사람들이 인생을 즐기게 되자 세상이 망했다고 화를 내던 것도 실은 두려워서 그랬던 거다. 모르는 젊은 여자를 때린 것도, 할머니와 엄마를 때린 것도, 나를 때린 것도 두려웠기 때문이지. 뭐가 두렵냐면, 때렸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까. 복종하지 않고 자기를 노려보니까. 지지 않고 대드니까. 숨고 엎드리고 움츠리던 자기 같지 않으니까. 달려드니까. 빨갱이 같으니까. (96-97, 「고백록」, 최진영)


한낮 본서 + 한밤 노트


「괴물들」과 「고백록」이 좋았던 모양이다..





길고도 힘든 여정이 무색할 정도로 시시한 결말에 깜놀.


그러다가 시뇨르 발다초는 한번 심한 열병을 앓고 나더니, 그 후로는 경망스러운 언행을 일절 삼가게 되었다. 혼자 앓아누웠을 때 자신의 영향력이 마치 베네치아처럼 환영에 불과하며, 질병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레 말라티에치 디코노 퀠 케 시아모(질병은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127)





세일럼 마녀 재판 사건에서 잊히고 지워졌던 ‘마녀’ 티투바를 살려낸다. 환상 요소가 아니었다면 써내려가기도, 읽기도 힘들었을 소설. 아서 밀러의 <시련>이 링크되겠다.


내게 놀라움과 반감을 불러일으킨 건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 아니라 그 태도였다. 문턱에 가만히 서 있는 내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나에 대해 말을 하는 동시에 나를 무시했다. 인간 지도에서 나를 말소해버렸다. 나는 비존재였다. 보이지 않는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들보다도 더 보이지 않는 존재. 적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능력이라도 갖추고 있지 않은가. 티투바, 티투바는 그 여자들이 허용하는 꼭 그만큼의 실재감밖에 없었다. (45-46)





현대에 쓰는 고딕이라면 아마 이런 식으로밖에 되지 않을 걸? 하는 듯한 모범. 공포가 무섭다기보다 무겁다. 아주.


우리들의 공포. 그것은 거의 대부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다. 가령 국가 폭력, 1976년에서 1983년 사이-내가 어렸을 적이다-3만 명의 고귀한 목숨을 앗아간 군사 독재, 폭력 사건,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 그리고 일상생활의 위험성과 불확실성. 그뿐 아니라, 광기, 중독, 불안한 공간으로서의 가정과 같이 내적인 공포도 있다. 어떤 경우든 나는 공포의 전통적인 장소, 즉 흉가/폐가, 유령들, 러브크래프트와 스티븐 킹에 대한 헌사, 그리고 마녀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혹은 다루고 있다). (347, 한국어판 저자 후기)





수감자 각각의 개인사가 파란만장하다. 주인공이 여러 명인 느낌. 캐릭터마다 개성 넘친다. 교도소 일지 같기도 한 게, 이 시대의 ‘유형지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우리가 만드는 주정부 제품에 해당하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가, 언젠가, 아동용 책상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경첩을 달아 상판이 열리고, 안에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책상이었다. 거기에 맞는 조그마한 의자도 있었다. 책상과 의자는 목공장 입구에 두었다. “저 작은 책상을 보면 슬퍼져.” 코넌이 말했다. 나는 그걸 쳐다보지 않는 훈련을 했다. (268)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20/09/29 11:28 # 답글

    <광기와 치유의 책>은 일단 위시리스트에 넣긴 했는데.... 왠지 안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의 백자평이네요^^
  • 에르고숨 2020/09/30 11:55 #

    화끈하게 말씀드리자면... 보관함에서 삭제하셔도 인생에 지장 없을 책입니다! (오. 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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