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Smoking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 10점
올리비아 로젠탈 지음, 한국화 옮김/알마


처음 보는 작가이나 범상치 않은 제목에 홀렸다. 범상치 않음은 제목만이 아니었다. 눈에 번쩍 띄게 독특하다. 중심 이야기 중간 중간에 인터뷰 혹은 자료조사 내용이 다른 활자로 끼어들며 다채로움을 더한다. 다채로움? 아니 그러니까, 한 가지에 천착하는데, 꿈같은 이야기와 건조한 과학적 사실을 병치했다. 한 가지란 죽음에 대한 연구다. 말해놓고 보니 작품 안에 박상륭도 조금 있는가 싶다. 단어들의 향연이 화려하고 숨차다. 베케트의 『몰로이』를 읽을 때 그랬지 싶고, 정영문 조금에, 배수아 약간이라고 할까. 다른 말로, 무지 멋지다. 짧은 이야기 다섯 개가 연작을 이룬다.


ㆍ「도주」: ‘나’는 길에 그녀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다. 종말 소설 분위기의 폐허다. 도착한 마을에는 모두가 떠나버린 빈집들만이 황량하다. 감시자들이 있고 ‘나’는 숨어 지낸다. 종국에는... + 임사체험의 신경학적 설명이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

ㆍ「집에서」: ‘나’는 부모가 외출하고 없는 집에 혼자 있다. 아마도 언니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지만 ‘나’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함께 가지 못했다. ‘집을 지킨다’ 혹은 ‘집 본다’라고 할 때 단어 뜻 그대로 화자는 집을 감시하고 보호한다. + 코마에 빠진 이의 이야기가 중간 중간에 끼어든다.

ㆍ「추격」: 숨바꼭질 놀이의 공포 + 범죄 현장을 묘사하는 수사관의 건조한 설명

ㆍ「내 친구들」: ‘나’는 고향을 떠나 파리 생활을 시작한다. 친구들을 사귀고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며 길을 걷는다. + 죽음에 가까이 갔다가 돌아온 사람 이야기가 따로 또 같이 놓였다.

ㆍ「귀환」: ‘나’는 성인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언니의 환영(幻影)을 보는 듯하다. + 응급처치 전문의의 일화가 병치된다.


모두 읽고 나니 「도주」에서 내가 버린 그녀가 언니일 수도 있겠다 싶다. 40여 일 간의 은신과 도주와 허기와 목마름과 육신의 소진에서 『몰로이』나 『죽음의 한 연구』 를 떠올렸다. 지쳐 더 이상 추적자로부터 피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한다? 맞닥뜨린다. 이런 반응은 변주되어 「추격」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된다. 숨는 대신 술래의 그림자가 되는 방식이다. 숨바꼭질은 어린아이들 놀이이지만 사냥과도 비슷한 폭력성을 내포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117)고 작가도 썼다. 보이지 않아야 이기는데, ‘하지만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자유롭고, 닿을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게임의 승자가 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102-103,「추격」)


(…) 나는 혼자고 나는 평온하고 도망쳤고 나는 사라졌고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고 내가 이겼고 내가 무찔렀고 내가 사라졌고 이는 나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고 함께 살고 싶고 그들과 함께 웃고 빙글빙글 돌고 춤추고 노래하고 싶고 눈물이 화와 고통이 눈에 차오르고 나는 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고 나는 기다리고 나는 그들이 와서 나의 승리에 종점을 찍을 수 있도록 나를 찾고 나를 알아보고 나를 데려가고 나에게 내 이름을 혹은 아무런 이름이나 주기를 거의 아무런 희망 없이 기다린다. (115-116,「추격」)


가뭇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대충 숨었던 것 같다. 무서워서. 술래였을 때는... 기억나지 않는다. 깔깔거렸겠지, 무서워할까봐. 보이지 않음은 죽음이다. 숨바꼭질을 하기 전 연령대 아기들이 까꿍놀이에 그렇게 열중하는 이유도 그것이지 싶다. 어른이 내 눈앞에서 죽었다가(공포) 살아나고(환희) 죽었다가(또 다시 공포) 살아나고(다시 환희) 죽었다가(잊어버렸다가 또 공포) 살아...나야 하는데. ‘모두 안녕’이 뭐냐. 조금 울었고 많이 분노했다. 아래 발췌문을 옮겨놓기 위해 쓴 독후감이다. 얼마나 멋진 제목인가,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사람은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에너지를 항상 동원할 수 없기에 잠이 들고, 쓰러지고, 목숨을 끊는데, 이는 가끔씩만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편협한 비겁함이다. 알리스의 오빠의 경우에 죽음은 매우 유용한 전략이었다. (134,「내 친구들」)


서랍은 급작스러운 죽음이 가족에게 미칠 무질서 가운데 하나의 예시나 신호 혹은 징후에 불과하다. 나는 그에 대해 생각할 때면 자살한 모든 사람들과, 자기 삶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가까운 이들을 영원토록 혼란스럽게 만드는 그들의 방식이 원망스럽다. 그들이 심지어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엄청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상상하면서 간악한 즐거움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나 스스로에게 묻기까지 한다. 결국 그들의 모든 권력은 바로 거기서 나오며 그들은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한 수단에 인색하지 않다. (165-166,「귀환」)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20/08/07 10:50 # 답글

    독특하고 멋진 책인가봐요. 신간 체크 안 한지 벌써 몇 달인지... 이웃님 덕분에 또 한 권 알아갑니당^^
  • 에르고숨 2020/08/07 13:35 #

    앍. 신간 체크를 안/못하신다늬.ㅜㅜㅜㅜ 너무나 슬픈 것입니다. 흙흙. 맞아요, 이 책 독특하고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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