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 AK 47 NoSmoking


1947 현재의 탄생 - 10점
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 지음, 김수민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세계인권선언 초안이 작성되고 있다. 나치 전범자들은 비밀리에 남미 탈주를 모의한다.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 이주가 증가한다. UN 위원회에서는 유대 국가 수립 회의가 진통을 거듭한다. 반대급부로 무슬림형제단이 극단화한다. 유대인 학살은 없었다는 모리스 바르데슈의 수정주의 역사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라파엘 렘킨은 UN이 제노사이드조약을 채택하도록 애쓴다. 헨리 포드가 사망한다. 빌리 홀리데이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독일에서는 작가들이 반나치주의와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47그룹을 결성한다. 영국은 인도와 파키스탄을 분리한다. 망명 중인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가 출간된다. 어린 아들과 스코틀랜드 주라섬에서 지내고 있는 조지 오웰은 병상에서 《1984》를 쓰고 있다. 28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출판이 성사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올그런과 대서양을 넘나드는 사랑을 하고 있다. 《제2의 성》을 쓰기 시작한다. 디오르의 사치스럽고 비실용적인 디자인이 성행하는 한편 비난 세례도 받는다. 계전기에 끼인 나방 한 마리가 컴퓨터 고장을 일으킨다. 최초의 컴퓨터 ‘버그’다. 소련에서는 싸고 튼튼하고 다루기 쉽고 고장 나지 않고, 이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소형화기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이 공식 병기로 채택된다.


이게 다 언제? 1947년 일이다. 오스브링크의 《1947 현재의 탄생》은 《1913년 세기의 여름》과 비슷한 형식으로, 서구 세계 곳곳 조각조각 장면들을 제시한다. 《1913년》이 1차 세계대전 전야의 신경쇠약 분위기를 보여준다면, 《1947》에서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두 강대국 간 냉전과 식민지들의 독립이 이어지던 부산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현재의 탄생’을 이룬 일들이다.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와 반성, 제노사이드의 참혹함, 페미니즘 사상 등, 그 시절 쓰인 대표적인 저작들만 보아도 기조가 선다.



파울 첼란의 첫 시집은 한 해 뒤에 나온다만 1947년 ‘안첼Ancel’이었던 파울이 빈에서 난민 신분으로 지내며 첼란Celan으로 이름을 바꾸고 시를 쓰고 있을 터였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인 넬리 작스 에피소드도 눈에 띈다. 스웨덴으로 탈출하여 쉰여섯 살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저자에 의하면 ‘시의 세계에서 넬리의 형제’로 꼽을 만한 사람이 파울 첼란이라고 한다. 데뷔작이 《죽음의 집에서》인 점도 공교롭다. ‘번개, 숨, 소금, 상처, 눈, 손, 목, 연기, 잿더미’(294) 등이 두 시인 작품에 공히 등장하는 단어들이라고. 보고 싶다.


누군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목소리를 주어야 한다. 누군가는 침묵을 말로 나타내야 하며, 형태 없는 것에 형태를 부여해야 한다. 파이프에서 끽끽 소리가 나고 잠금장치에서 쉭쉭 공기가 새어 나오는, 건물의 제일 아래층에 자리한 조그만 집에서 넬리와 어머니는 생활한다. 나이 든 여성이 더 나이 든 여성을 돌보아가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신호를 받아 이를 시의 형태로 전송한다. 슬픈 추도의 시를 짓는 시인일까? 지각의 기억. 몰살의 기억. (292-293)


시적으로, 지적으로 그려 보여주는 1947년이다. 우리나라 또한 강대국 틈에 끼어 고초를 겪는 시기일 터이나 저자의 ‘선택’(334)에는 들지 않았다. 살아남은 유대인 후손으로서 ‘나’와 이전 세대, 역사, 연유를 톺아보는 작업이기도 했을 테니까. 말 그대로 세계사 속의 ‘나’가 되는 게, 독일의 안스바흐 스트뤼트에 있는 아동보호소에서는 저자의 (여덟 살 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니 상상하게 된다. 1947년을 모아 맞춰보니 자기 자신이 돼버렸다는 저자의 말이다. 뭉클한 역사다. ‘절대로, 다시는’이라고 다짐하는 반성적 1947년에도 불구하고 이후 핵폭탄 시험이 이어졌고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로 인한 대리전에 쓰인 의외의 병기, 1947년도가 이름에 붙은 희대의 소형화기가 핵폭탄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살상을 지금까지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어 본다.




AK47 - 10점
래리 캐해너 지음, 유강은 옮김/이데아

특정 국가의 번영 정도를 측정하는 것으로 빅맥지수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AK47지수’라는 것도 있어서 인권 상태를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이 소총의 가격이 쌀수록 민권이 열악하고 사회구조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을 《고모라》에서 보았다). 장난감보다 더 먼저 자연스럽게 AK47을 손에 들게 되는 아프리카 분쟁 지역 어린아이들 실상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몇몇 나라에서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거나 번듯한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 AK47 한 자루를 사는 게 더 쉽고 저렴하다.” “역사상 가장 널리 보급된 살인 도구”(338), 아브토마트 칼라시니코바Avtomat Kalashnikova, 즉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이다.


소총 하나 따라 왔더니 현대 분쟁 지역이 줄줄 꿰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AK47은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핵폭탄 뿐 아니라 HIV나 선(腺)페스트, 말라리아는 물론이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심지어 지구를 뒤흔든 수많은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는 내용을 《고모라》에서 보았다). AK47과 M16이 처음으로 맞붙은 베트남전쟁부터, 이후 AK의 저력이 차차 드러나 CIA가 AK를 대량 구매해 무자헤딘에 지급했던 아프가니스탄전쟁, 사막에서 특히 우수함을 발휘해 반군, 민간, 미군까지 AK47을 선택한 이라크전쟁, 다이아몬드와 무기를 거래했던 독재자 테일러의 라이베리아 내전, <블랙호크 다운>으로 유명한 소말리아 내전, 르완다의 종족 학살 등등 아프리카 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까지 두루두루 볼 수 있다.


암거래, 강대국 간 신경전, 대리전, 독재자가 퍼뜨리는 AK 등 크고 복잡한 분쟁 이야기만 다루는 건 아니다. 총탄, 총알, 탄피, 약실, (들어는 봤나) 강선, 노리쇠, 총열, 개머리판, 반동…… AK47의 설계 세부부터 테스트와 경쟁 과정, 그리고 설계자 칼라시니코프(1919~2013)의 행적까지도 담았다. 칼라시니코프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짠하다. 소련 공산주의 특유의 근성이랄지 뚝심이랄지 순진함이랄지 (조국을 위해!) 평생 (명예부자) 가난뱅이로 살았다. 1990년 소련 개방 이후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칼라시니코프가 미국을 방문하여 M16 발명가 유진 스토너를 만나는 순간은 아주 인상적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공식 무기는 자루 당 1달러의 저작권료로 스토너를 (명예가난뱅이) 갑부로 만들어주었다. 당시 AK47은 M16의 10배 넘게 팔린 상태였다. 아 짠한 칼라시 할배... 두 거물의 현피 장면 중.


둘 다 유머 감각도 있었다. 스키트 사격을 하는 사이에 칼라시니코프는 스토너에게 AK47의 내구성 현장 테스트를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진흙에 넣었다 빼고, 모래와 덤불 위로 질질 끌고 다니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M16은 어떻게 테스트를 했느냐고 묻자 스토너는 애버딘 시험장에 있는 깃대 꼭대기에서 떨어뜨리는 시험을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칼라시니코프가 대꾸했다. “소련에서는 전투 중에 총이 막혀서 발사되지 않으면 총기 발명가들을 그렇게 하는데요.” (219)


칼라시니코프는 특허를 출원하지 않았고 수없이 많은 변형물이 유통되기 때문에 AK47은 거의 공유재가 돼버렸다. 후반부에는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향유되는 AK47을 소개한다. 영화 속에서는 ‘셰익스피어가 관객에게 악역을 알려주기 위해 배우로 하여금 무대에서 걷다가 개를 걷어차게 한 것처럼, 할리우드는 반영웅이나 테러리스트, 악당을 보여주기 위해 AK를 활용했다.’(333) 패션이나 예술작품에서는 주로 반전 평화의 메시지로 쓰여 ‘AK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여러 나라의 시민들에게 이 총이 무해하고 때로는 놀랍고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는 것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335) 바나나 모양 탄창으로 만들어져 실제 AK47에 꽂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AK-MP3도 있단다. 음악을 들으며, 칼라시니코프 보드카 한 잔... 부제가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잔혹한 도구의 세계사>다. 1947년 생 AK47의 70년을 잘 보았다. 간추릴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근경 원경을 넘나들며 탁월하다. 완소5별 《AK47》이다.




<모시Mosh>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에서 에미넘은 권리를 빼앗긴 후드티 차림의 시민 무리를 이끌고 미국의 어두운 ‘경찰국가’ 거리를 행진한다. 용기를 얻은 군중은 정부 청사에 들어가지만 폭동을 일으키는 대신 조용히 줄을 서서 유권자 등록을 한다. 에미넘은 부시 대통령이 국가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거짓말쟁이에 도둑이라고 비난한다. AK를 들고 있는 부시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면서 에미넘이 노래한다. “대통령에게 무정부 상태를 초래한 책임을 묻자./AK47을 쥐여 주고/그자가 직접 전쟁에서 싸우게 하자./그렇게 자기 아버지를 감동시키게 하자.” (351)



“나는 내가 만든 발명품이 자랑스럽지만 테러리스트들이 그 총을 사용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 농부의 작업을 돕는 기계, 예컨대 잔디 깎는 기계를 발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363-364)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20/06/03 17:52 # 답글

    아, 이웃님. 진짜 멋져요, 보부아르 원서... 저거 막 읽으실 수 있는 거잖아요? 진짜 멋지세요ㅠㅠ
  • 에르고숨 2020/06/04 12:07 #

    이크. 넹. 읽을 수는 있는데... 안 읽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별로 막 안 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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