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평과 틀린 맞춤법 대잔치 -무너진다리, 지옥여왕, 농담과학 NoSmoking

무너진 다리
천선란 지음/그래비티북스

20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인류는 지구와 닮은 행성 가이아로의 이주를 앞두고 있었다. 첫 임무는 실패하고 비행사 아인은 지구로 돌아온다…… 거의. 자기 의식이 이식된 안드로이드의 몸으로 아인은 몇 년 후 다시 눈을 뜨게 된다. 그 사이 로켓 핵 엔진이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져 지구 절반을 파괴한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그곳에 인류는 안드로이드들을 보내 청소와 재건을 도모하나 어찌된 일인지 통신 두절 상태다. 안드로이드로 새로 태어난 아인이 파견된다. 기존의 안드로이드들의 동정을 살펴보는 것과 핵 엔진 회수가 임무다. 두둥. 비장함과 감동을 욱여넣기 마침맞은 스토리다. 그러나 그래비티 왜 이러셔요. 하얗고, 반질반질하고, 얇으나 무거운 내지는 빛을 반사해 눈을 공격하는데다, 오탈자와 이상한 문장 범벅이다. 몰입과 감동은 물 건너갔다. 포스트잇 플래그 인증.


이상한 문장과 자잘한 오탈자는 너무 많아 생략하고(썼다가 지웠고), 습관적으로 틀리는 것만 옮겨놓는다. 1. 잘못된 높임의 경우.


(72쪽) “아니다, 들을 수 있는 수업은 다 찾아들었어요. 제가 존경하시던 분이었거든요.” (->제가 존경하던)


2. 이어서는 표준국어대사전 납신다. ‘-던’과 ‘-든’의 차이를 보라.


-던: 과거의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어미.

-든: ‘-든지’의 준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일어나도 뒤 절의 내용이 성립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


(321쪽) 어찌 됐던 해인은 사람들이 듣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됐든)


3. 맞히다/맞추다


맞히다: 문제에 대한 답을 틀리지 않게 하다. 눈, 비 따위를 닿게 하다. 침, 주사 따위로 치료를 받게 하다. (‘맞다’의 사동사)

맞추다: 서로 떨어져 있는 부분을 제자리에 맞게 대어 붙이다.


(151쪽) 다리를 맞춰. (->맞혀.)

(162쪽) 급소는 절대 맞추지 못한다는 걸 이단도 몇 번의 대적 끝에 알았을 것이다. (->맞히지)

(163쪽) 더불어 메칼라가 옆에서 다리를 맞추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테드는 급소를 맞췄을지도 모른다. 만일 테드가 실수로라도 인간의 급소를 맞췄면 어떠한 구차한 변명도 통하지 않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었다. (->맞히라고, 맞혔을지도, 맞혔다면)

(344쪽) 심장을 맞추지 않았을 거야. (->맞히지)

(400쪽. ‘맞추다’ 제대로 쓴 경우:) 카인의 무리는 가던 걸음을 멈춰, 분해된 휴론들의 원래 몸을 맞췄다.


4. 묵다/묶다


묵다: 일정한 때를 지나서 오래된 상태가 되다. 일정한 곳에서 나그네로 머무르다.

묶다: 끈, 줄 따위를 매듭으로 만들다.


(312쪽) 인터뷰는 묶고 있는 워싱턴 호텔 로비에서 짧게 진행됐다. (->묵고 있는)

(495쪽) 제가 수영장 청소를 아직 하고 있었던 때, 어느 손님이 우리 숙소에 묶고 갔죠. (->묵고)


핵으로 파괴된 아메리카 대륙 모습은 기괴하고 황량해 멋지다. 안드로이드의 에너지원은 뭔지 (설마 무한동력 영구기관은 아닐 거면서) 알 수 없지만, 끝없이 쓰레기를 줍는 안드로이드들과, 자생적으로 적응하여 변모한 자연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짠하다. 시몬 스톨렌하그의 <일렉트릭 스테이트> 장면이나 레이 브래드버리의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무너진 다리>다. 그래비티 책을 여러 권 사놨는데 들춰보니 각각 내지가 다르다. 교정교열 상태도 다르기를 기대하면서, 끝.



지옥에서 온 여왕 
해럴드 셱터 지음, 김부민 옮김/알마

희대의 살인마, ‘살인 농장’ 주인 벨 거너스를 되짚어준다. 벨 거너스는 1859년 노르웨이 셀부에서 태어나 1908년 미국 시카고 근교 라포르테에서 사망(혹은 행방불명)했다. ‘벨이 저질렀음이 “확인된 살인” 건수는 스물다섯 건이며,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살인 건수는 최대 쉰 건에 이른다고’(252-253) 한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시카고가 반가웠던 건 <화이트 시티>(에릭 라슨)와 <정글>(업튼 싱클레어) 덕분이다. 노르웨이인들의 유입이 활발했던 시기와 장소 되겠다. ‘1881년, 2만 5000명이 넘는 노르웨이인이 미시간호수 기슭으로 몰려왔다. 1980년대가 끝날 무렵까지 그 열기가 식지 않았던 대규모 집단 이주의 시작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노르웨이의 트론헤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부 해안 도시 셀부에서 온 22세 여성이 있었다.’(30) 바로 브륀힐드 파울스다테르 스퇴르세트다. 이후 벨 거너스가 되는 인물이다.


논픽션은 자료와 배치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은데, 폄하가 아니라 경의다. 배치, 즉 취사선택과 구성은 픽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은 창의력을 요한다. 저자의 책상 위에 놓였을 방대한 자료들이 상상된다. 당시 언론들이 보도했던 기사와 태도, 사건을 선정적으로 소설화한 출판물, 재판 과정, 그 동안 벌어진 공방과 뜬소문 등 총 망라, 자신의 의견을 슬며시 끼워넣는 법 없이, 중립적으로 잘 전달한다. 어떻게? (요즘 우리 기자님들이 남용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따옴표로 이뤄진 문장들로. ‘연쇄살인범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의 범죄 논픽션 작가’(앞날개)답게 논픽션 특유의 건조함과 긴장감이 백미다. 시원한 결말, 즉 저자가 명명한 ‘인지적 종결cognitive closure’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 않겠다. 스포방지이유로 끝.


참, 틀린 맞춤법 잔치해야지. 알마 책 좋아한다. 다만 때때로 황당한 오타가 당혹스럽다. 마치 급하게 인쇄를 넘긴 듯한 느낌이랄까. 특히 년도 표기는 알쏭달쏭해서 위 첫 문단에서 발췌한 문장의 ‘1980년대’는 1890년대가 옳지 않을까 싶다. 아닌가. 또 있다.


(45쪽) 계약서에 따르면, 매즈는 “1986년 4월 1일부로, 회사의 피고용인으로서 알래스카에 가서 금을 시굴하고, 금맥을 탐사하고, 원정대를 통솔하는 관리자가 요구하는 그 밖의 모든 일을 하는데” 동의했다. (1896년일 듯.)

(48쪽) 1990년 4월 10일 화요일 저녁, 알마스트리트에 있는 소렌슨 일가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900년일 듯.)


다시 표준국어대사전 납신다.


1. 좇다/쫓다


좇다: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

쫓다: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하여 뒤를 급히 따르다. 어떤 자리에서 떠나도록 몰다.


(28쪽) 새로운 삶을 쫓아 미국으로 (좇아)


2. 들르다/들리다


들르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

들리다: 병에 걸리다. ‘듣다’의 피/사동사. ‘들다’의 사동사.


(86쪽) ‘정말요? 그것 참 이상하네요. 제니가 자기가 떠나기 전에 한번 들리라고 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들르라고)

(122쪽) 벨이 처음 들린 곳은 자신의 변호사 멜빈 E. 릴리터의 사무실이었다. (들른)

(154쪽) 이들이 다음에 들린 곳은 벨의 변호사였던 멜빈 릴리터의 사무실이었다. (들른)


3. 붙이다/부치다


붙이다: 맞닿아 떨어지지 않게 하다. ‘붙다’의 사동사.

부치다(2): 편지나 물건 따위를 일정한 수단이나 방법을 서서 상대에게 보내다.


(87쪽) 다음 반년에 걸쳐 와이드너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제니에게 편지를 여러 통 붙였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 (부쳤으나)


그 밖의 자잘한 오타는 아래에 기록해둔다. 알마 책 좋아하므로.


‘오스커’(182)로 등장했다가 어느새 ‘오스카’(185)가 되어 한 마디 함.

‘칼슨’(419) 부인이 ‘콜슨’(431)과 결혼함.

‘피터스’ 경무사(218)가 두 줄 아래에서 ‘피터’(218)가 되어 말함.

끈임없이(213, 끊임없이) 마성을(244, 마성이) 은수저(252, 은 숟가락) 다르면(330, 따르면) 칼슨의 제보(247, 윌스의 제보?)



농담이 이 정도라니 정색하시면 큰일 날 듯하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로 내공이 확인된 오후 저자가 썼다. 호기심을 스스로 채우고 보니 어라, 독자에게도 즐거운 양서가 돼버린 바람직한 경우다. ‘문과생’으로서 이야기하는 과학으로, 넓으면서 얕지 않다. 대뜸 질소, 즉 비료로부터 시작하더니 단위, 플라스틱, 성(전환), (소련)우주과학, 빅데이터를 거쳐 날씨에까지 이른다. 읽은 지가 오래되어 긴 독후감은 언감생심이다. 다만 오탈자를 보면 메일을 보내달라던 저자의 언급이 생각나 (무독후감+너무 늦은 메일이 민망한 김에) 틀린 맞춤법 잔치에 초대했다. 표준국어대사전 따위 필요 없는, 귀엽고 깔끔한 디저트 쯤 되기를 바라면서, 진짜 끝.


오타: 90쪽. ‘자신의 임기를 늘리고 싶은 관리들이 대제관에게 뇌물을 받쳤고,’ (바쳤고)

반복 실수(?) : 229쪽. ‘바로 우주 로켓을 바로 쏘아 올릴 수는 없다.’

탈자: 366쪽. ‘2010년 한국이 천리을 발사할 때,’ (천리안을)




덧글

  • 최세희 2020/03/28 17:05 # 삭제 답글

    이렇게 발췌하니까 눈에 들어오는데,
    글자속에 배열되어 있으면 눈에 잘 안들어 오던데...
    에르고숨 님 대단쓰~
    책을 많이 보시니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칭찬)
  • 에르고숨 2020/03/28 17:24 #

    꼰대같죠?ㅎ 그래서 보통은 그냥 슥 넘어가고 마는데 <무너진 다리>는 너무 심해서 좀 짜증스럽더라고요. 사전 보는 것도 좋아하니까 겸사겸사.. 아무튼 고맙습니다 :)
  • 달을향한사다리 2020/03/31 14:35 # 답글

    사이다 포스팅!! 저도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 귀찮아서 - 이렇게 정리해 주셔서 속이 시원하네요^^
  • 에르고숨 2020/03/31 21:43 #

    한두 군데라면 매력으로(?) 여기고 넘길 법도 하지만, 무신경함이 줄줄 흐르는 편집은 책을 싸구려로 만들어 버려요, 그죠. 사이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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