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무한, 멀리, 여성 Smoking

유령해마 
문목하 지음/아작

비파는 알고 있다. 비파는 해마다. 해마는 데이터이고 기억이다. ‘너’보다 더 ‘너’를 잘 기억한다만, 그게 꼭 이해는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겠다. 쓸모가 있어 필요로 하든, 이용하든, 혹은 또 사랑하든, 그 기제는 이해가 아닌 오해임도. ‘너는’이라는 화법이 다정해 마음이 살살 녹다가 곳곳에 심긴 유머에서는 깔깔 웃게도 된다. 사랑스러운 SF다.


나는 허브의 이음매를 밟는다. 이곳만 통과하면 내 현실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안다. 나는 걸음을 떼고, 내 다리가 사라지는 걸 보고, 형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마가 된다. 내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정체가 내 앞에 펼쳐진다.
무한이다. (351)



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현대문학


2016년 트루데 하늘엔 파충류 모양을 한 신들이 잔뜩, 1958년 용인 하늘엔 스푸트니크 3호가 슝.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한 가족의 연대기이자 구원기로, 시간여행 판타지다. 환상인지 현실인지 오락가락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의 시간여행 목격자가 되어버리는 경험. 흥미진진한데 다만, 편집에 서체를 도대체 몇 가지나 삽입한 거냐. 내용으로 수습이 가능하다면 서체 남용은 좀 피해줬으면.


“기억해두게나. 미래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476)



멀리 가는 이야기 
김보영 지음/행복한책읽기

김보영 작가 중단편선집이다. ‘이 책은 전 세대의 나 자신의 유작집인 셈’(501)이라는 작가의 말이다. 그러니까 문 닫고 가버린 작가 전시실에 내가 쑥 들어와 뒷북치고 있는 격이다. 늦은 감상, 늦은 감동. 멋진 초기 작품들 고맙게 읽었다. 특히 「종의 기원」에는 꽃다발 하나 걸어두고 나온다.


“사실 멸종이라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야. 모든 종에는 수명이 있는 법이니까. 칼스트롭 교수님은 ‘그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신기한 것인 아니라, 존재했다는 사실이 신기한 일이다’라고 하시지……. 아, 거기!” (240,「종의 기원」)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파출리 외 지음/온우주

작가 열 명을 만난다. 200년 동안 책을 읽어온 사람 「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전혜진),  생존세를 내지 못해 들어가는 장소 「국립존엄보장센터」(남유하), 멸종위기종 마냥 가임소녀만 격리해 교육하는 「로드킬」(아밀), 우주선에서 데모하는 「바리케이드와 개구멍」(이서영) 등 개성들이 톡톡. 뜨끔하고 쓸쓸하고 화나고 웃기고, 요는 각양각색 재미있다는 거다.


속이는 사람이 있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지.
사실 둘은 똑같은 집단이야.
단지 우리에게는 비밀을 누설할 만큼 다정한 상대가 없었지.
지키려는 사람들에게는 뭐가 있을까?
알잖아.
ㅇㅇ가 살아있을 때, 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너는 어떻게 했을 것 같아? (301, 전삼혜,「궤도의 끝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덧글

  • 최세희 2019/12/24 23:41 # 삭제 답글

    메리 크리스마스! 에르고숨 님.
  • 에르고숨 2019/12/24 23:45 #

    ㅎ넹+땡스. 최세희 님도 즐크하세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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