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구 + 거울 + 이선 프롬 Smoking

징구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책읽는고양이


징구가 뭔가. 말할 수 없다. 「징구」 독후감에 징구가 무엇인지 밝혀놓은 게 있다면 규탄해야 하리라. 징구를 알고 보면 재미없을 「징구」다. 그렇다고 다시 읽어 재미없을 「징구」는 또 아니다. 밸린저 부인 독서모임의 고상한 멤버들이 겪을 정신적 혼란, 땀 삐질;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처다. 멤버들이 징구에 관해 나누는 ‘우아한’ 대화를 보셔라. “아마 징구에 관해 같은 생각일 거예요.”(31) “전 그것 때문에 인생이 변한 경우를 많이 봤어요.”(31) “제게도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31) “그런 데 들어가는 시간을 아까워해서는 안 되죠.”(32) “전 절대 건너뛰지 않아요.”(32) “그걸 지나간다고 하기는 어렵죠.”(32)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죠.”(32) “시도해본 적 있어요?”(33)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해요. 징구가 물론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얘기를….”(34)


‘징구’ 자리에 ‘프라이가이스트’나 ‘레종데트르’ 또 혹은 ‘커닐닝ㅇ스’를 넣어도 말이 되는 시추에이션 되겠다. 자고로 가식과 허영심이 넘치는 대화법인 거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더 크게는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봐 두루뭉수리 한 마디씩 얹는 부인들 귀엽고…… 뜨끔하다. “징구가 뭐예요?”라고 물어볼, 솔직한 무지를 드러낼 행동은 품위 없음이다. 곰곰 생각해 보건데 내가 그 짓을 한 적이 있다. 들뢰즈를 원서로 읽는 모임에 내가 가장 나중 멤버였다. 기존 멤버들은 한창 전쟁기계 꼭지에 빠져 있었으니, 초심자의 호기로 나 왈, “전쟁기계가 뭐예요?”


뜨아. 대답 대신 누군가 책 속 삽화를 내밀었던 것 같다. 내가 눈치가 없거나 분위기 깨는 사람은 아닌데, 왜 그랬지. 아마 분위기 파악하려고? 그이들 참 난처했겠다. 나를 제명하지는 않았다. 들뢰즈 모임이 밸린저 부인 독서모임 같았다는 말은 아니다. 우아하지 않았으나 허세는 쩔었다. 징구가 전쟁기계 설명만큼이나 약 빤 듯(들뢰즈 맛) 알쏭달쏭한 개념이라는 뜻도 아니다. 징구는…… 그저 이디스 워튼 재치가 반짝반짝, 귀엽고, 뭔가 뜨끔하고. 그래서 애꿎은 과거 들뢰즈 모임 얘기도 하고 말았고. 귀부인들의 예의범절이 마냥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만은 않는 게 이디스 워튼 시선인 듯하다. 초대 손님과 불편한 손님이 떠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비로소 툭 터놓는 모습도 보셔야 한다.


레버렛 부인이 안도하듯 감탄사를 뱉었다. “그거, 바로 그거예요!”
“뭔데요?” 회장이 나섰다.
“어… 생각이라는 거죠. 제 말은 철학이라고요.”
이 말에 밸린저 부인과 로라 글라이드는 약간 안도하는 듯했지만, 밴 블레이크 양은 달랐다. “죄송하지만, 다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징구는 언어일 거예요.” (44,「징구」)


거울 
이디스 워튼 지음, 김이선 옮김/생각의나무


워튼의 유령 이야기 모음집이다. 총 여덟 편에 주로 집과 관련된 게 많다. 오싹할 정도는 아니고 으스스+스산해서 조용한 밤에 읽기 좋다. 저택과 유령.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이나 대프니 듀 모리에『레베카』 냄새도 난다. 듀 모리에(1907~1989)는 워튼(1862~1937) 나중 사람이니 『레베카』에서 워튼 냄새가 난다고 해야겠구나. 헨리 제임스(1943~1916)와는 친한 사이였고, 작품이 서로 닮았다는 평에는 불만도 있었던 모양이다. 『징구』 옮긴이의 말에서 본 바, ‘존스네 따라잡기keeping up with Joneses’ 속담의 존스 씨가 워튼 부친 조지 F. 존스라는 설이 있단다. 『거울』 속 단편 하나는 제목이 심지어 「미스터 존스」다. 오래된 저택을 지키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지금 여기 누구도 본 적은 없으나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이다. 미스터 존스가 내리는(내린다고 알려진) 명령은 철저히 준수돼야 하며 일꾼들은 절대복종한다. 없으면서 있는 미스터 존스다. 워튼은 부친 이미지를 존스 씨에 넣은 것일까?


“(…) 숙모 역시도 그분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는…… 그것이 무서운 점입니다…… 그래서 숙모는 항상 그가 시키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절대로 말대답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30-331,「미스터 존스」)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문예출판사

이선 프롬의 아픈 모친을 능숙하게 간병한 지나는 이선과 결혼한다. 시간이 흘러 이제 지나가 쇠약해지고 말이 없어지고 병이 난다. 부부에게 도움을 주러 먼 친척 매티가 온다. 생기 넘치고 서툴다. 즉 젊은 여성이다. 이후는 빤하다만, 결말은 ‘워튼스럽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 진의 <기다림> 얼개와도 같아 긴장(신파, 희생?)했으나 톤과 분위기가 퍽 다르다. 욕망 미움 사랑 모험심 같은 것들이 조용히 나이 먹어 주방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느낌. 서늘하다. 과연 이디스 워튼이다. 한 번 놀랐고(결말) 한 번 웃었는데 웃은 데가 여기다.


이선은 그 말을 귀 너머로 흘려들으며 서둘러 호먼 부인의 가게로 마차를 몰았다. 부인은 뭐가 깨졌기에 그러냐, 찾는 접착제가 없으면 보통 풀로는 안 되겠냐 등등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한참 여기저기 뒤지더니 이윽고 감기약, 코르셋 끈 등이 쌓여 있는 구석에서 한 병 남은 접착제를 찾아냈다.
“설마 ㅇㅇ가 아끼는 그릇을 깬 거 아니죠?” (94/177)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징구+미니노트와, 말할 수 없는 결론 이선 프롬과,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해 안타까운 거울.



덧글

  • 다락방 2019/12/17 22:25 # 삭제 답글

    맙소사! 측근님 블로그에서 징구를 만나다니요! >.<
  • 에르고숨 2019/12/18 13:21 #

    다락방 님을 끌어당긴 이디스 워튼이구만요! 저도 좋아합니다, 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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