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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Awakening’이다. 뱀이 깨어나기도 하거니와 주인공이 겪는 자각, 성장도 함축한 듯하다. (케이트 쇼팽의 멋진 소설 <각성>도 원제가 ‘The Awakenig’이었지 싶은데) 마침맞은 제목이고 번역 제목도 귀엽지 않은지. 한적하고 작은 마을에서 뱀이 우수수 깨어나며 50년 전 사건 진상이 드러난다. 뱀과 사이비 종교 패악질과 ‘나’의 성장. 위기의 순간에 짠, 하고 누군가 나타나 도움을 주는 클리셰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게 싫었지만 그러지 않는 클라이맥스는 멋지다. 무엇보다 장비를 잘 갖춘 직업 정신이 훌륭하다.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 트렁크에는 늘 구명조끼와 손전등, 칼이 있지, 암. 무엇보다, 구명조끼 입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평생 찾아다녔던 신념을 결국 찾아낸 걸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날 밤 죽음에 직면했을 때 내게 길을 일러주고 마음을 진정시켜준 목소리의 주인이 엄마였을까? 아니면 나보다 훌륭하고 강인한 나의 일부였을까? 나는 아직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밤중에 뱀들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나를 해치지 않으니까.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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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한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밤늦게 이야기하며 놀다가 자리를 뜨면서 다양한 인사말을 한다. 어쩔 때는 그냥 ‘간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밤 인사는 따로 있다. 이 인사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나 황당했지만, 지금은 내가 가장 즐겨하는 밤 인사가 되었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18)
뱀 따라 왔더니 아마존이다. 밀림에 어울리는 밤 인사 되겠다. 어둠 속에서 언제라도 닥칠지 모를 위험에 무방비하지 말라는 염려가 느껴진다. 언젠가 자기 전에 이런 인사 해볼 날 있을까. “잘 자.” “거기 뱀.” 다니엘 에버렛은 언어학자이자 (처음엔) 선교사로서 피다한 마을을 드나들었다. 말을 배우고 문화를 익히고 논문을 쓰고 결국 사랑에 빠지는 30여 년이다. ‘선교’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독선 때문에 한참 미루어두었다가 뱀 핑계로 들추어보았다만. 가만 생각할수록 멋지다. 언어학자로서는 드물다는 귀납적 방법으로 연구를 해가는 과정도 그렇고 종교인으로서 회의하는 모습도 그렇다.
언어학자 에버렛은 문화와 언어 간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인간은 원래 문법을 가지고 태어난다느니, 언어의 핵심이 순환이라느니, 현장연구보다는 이론연구에 더 치중하며 연역적인 접근법을 택하는 언어학계 주류와는 다른 관점이다. 거의 인류학이라고 해도 될 성싶은 현장연구 내공이다. 선교사 에버렛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련다. 소설은 아니지만 스포방지. 다만 언어학에서 문화를 강조한 만큼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깊은 이해를 장착하게 된 이라면 취할 법한, 독선적이지 않은 태도와 고백이라고, 그래서 내가 사랑하게 된 책이라고 까지만.
이들은 실제로 이러한 욕구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하루하루 그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따라서 어떠한 욕구도 쌓일 틈이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거의 모두 앓고 있는 걱정, 두려움, 좌절의 근원이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478)
에버렛이 그려놓은 피다한 사람들은 내가 아는 쾌락주의와 가장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쾌락’이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하면 안 된다. 동물적인 욕구 충족만을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 고대로부터 내려온 에피쿠로스학파,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로 이어져 유물론, 무신론과도 맥이 닿는 정신적 상태를 말함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인식’(464)이 없으므로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의례 또한 거의 없는데, 에버렛은 ‘경험의 직접성’ 원칙으로 설명한다.
장례식 같은 걸 치르지 않는다는 대목을 읽고 최근 내가 겪은 절교 사건이 또 떠오르고 말았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장례식 올리지 말라고, 더구나 내가 이룬 가족이 없으니 애먼 어떤 피붙이가 상주로 생고생할 게 틀림없는데다, 친하지도 않았던 먼 친척에, 친구에, (결단코 없지만 스스로 주장하고 나설) 빚쟁이에, 내 어찌 알랴 싶은 이들까지 삥뜯기(기)에 다름 아닌 그것 절대 하지 말았으면 싶다 했더니, 성초딩 왈 “그게 되겠어?” 한다. “말 안 해두면 그리 될 거니까 지금 말해놓는다.” 하자, (친구라면 할법한 대답, “그리 원하니 그러도록 하지.”는 문준으로부터 받아놓았다) 성초딩 왈 “그렇게 안 될 거다. 당신 말처럼 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이런다. 내가 죽은 다음에 장례식 와서 “그건 당신 생각이고.” 할 태세...
제도가 개인을 억압하면 그 제도를 거부하거나 뒤엎는 것 또한 개인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관성적으로, 폭력적이라 해도 의례를 고수하는 게 바로 꼴통 아닌가. 꼴통가족은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꼴통친구까지는 이만 노땡큐다. 피다한 사람들에게서 에버렛이 배웠고 나도 배운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 없음은 감동스러울 정도이고 친족용어의 희박함은 부럽기까지 했다. 친족용어가 많다는 것은 친족 관계를 복잡하게 따진다는 의미이고 그에 관련한 제약이나 규범이 세세하게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나에게 놓칠 수 없는 것은 자유였고, 지킬 수 없는 것은 믿음이었다. (…) 그들은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장 풍요로운 내면을 지니고 있으며,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며 산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진리를 설파하고 삶을 바꾸도록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474-475)
한편 문준 얘기 나온 김에 덧붙이자. 피다한 사람이랑 문준이 꼭 닮은 점이 있다. 문준과 여러 번 함께 걸어보면서 안 사실, 그이는 동반자랑 횡렬 나란히 못 걷는다. 꼭 종렬 한 줄로, 주로 앞서서 걷는데 (등짝미인이라는 소문이 있다) 아마 정글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한 줄로 걷는 것은 좁은 정글 길에서는 타당한 행동 양식이다. 정글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넓게 만드는 일은 매우 힘이 든다. 또한 이렇게 나란히 걷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나란히 걸으면 포식자에게 더 쉽게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뱀이나 다른 위험 동물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들을 도시로 데리고 오기 전에는 어떤 문제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왜 그런 걱정을 했을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그들이 정글에서 행동하듯이 도시에서도 한 줄로 서서 걸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울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 하지만 도시에서는 전혀 다르다. 물론 나란히 걸으면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지만 사람들끼리 좀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되고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뽀르뚜밸류에서 가장 번잡한 거리를 한 줄로 걷는 우리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웃었고 나도 웃음을 지어보였다. (44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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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 좀 더 머물러 본다. <잠들면 안 돼>와 결이 한참 다른 책이긴 하다만. 탐험가 포셋의 행방을 좇아 쓴 기록이다. 퍼시 해리슨 포셋 대령은 1920년대 브라질 마투그로수 지역에서 엘도라도를 찾다가 실종된 사람이다. 모험심과 경쟁심이 강한데다 생존력이 탁월했기에, 포셋의 실종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숱한 추종자들을 낳았다. 르포작가 데이비드 그랜이 2000년대에 다시 찾는 엘도라도, 고대 유적지 탐험이다. 포셋에 대한 충실한 기록과 몸소 떠난 아마추어 여행기가 흥미진진하다. 초보여행가 데이비드 그랜, 밀림에서 한 줄로 걸을 줄 알아야 할 텐데...
1925년 1월, 다시 리우데자네이루행 정기 원양선 S. S. 보번호에 오르는 포셋의 모습은 코난 도일이 쓴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의 주인공 존 록스턴 경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존 록스턴 경에게는 나폴레옹 3세와 같은 용맹함이 있었고, 돈키호테와 같은 호탕함이 있었으며, 영국 신사 같은 부드러움도 엿볼 수 있었다. 그에게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단정한 매너, 반짝이는 파란 눈망울 속에 불타는 용기와 타협하지 않는 의지가 숨어 있었다. 그가 더 담대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용기와 의지가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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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록스턴 경 확인해야지. 성초딩이 매번 혀를 끌끌 차도록 쌓아둔 책이 이럴 때 긴요하다. 표지 그림이 이미 스포인데다, 이후 마이클 크라이튼 등 작가들이 마구 되살려놓은 공룡이기도 하기에 그냥 내용 유출한다. 존 록스턴 경 비롯,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 그리고 젊은 기자 멀론은 아마존 유역 대지(臺地)에서 중생대 동물들을 만난다. 그뿐 아니라 ‘잃어버린 고리’ 유인원도 등장해 전쟁까지 치르는 대모험활극 되겠다. 피부 허연 남자들이 벌이는 예스럽고 제국주의적이고 피부색차별적인 이야기다. 고대 유적을 찾겠다는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 대담한 판타지로, 읽다 까무룩 잠든 밤 꿈에 괴생물체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눈크 디미티스!”* 이윽고 서멀리가 외쳤다. “고향에서 이걸 알면 뭐라고 할까?”
“친애하는 서멀리 교수, 나는 사람들이 고향에서 뭐라고 할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네.” 챌린저가 말했다. “그들은 자네가 지독한 거짓말쟁이에 돌팔이 과학자라고 할 거야. 자네나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바로 나를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말이야.” (171-172, *Nunc dimittis. “이제 여한이 없다”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주)







덧글
책이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우선 뱀에게 감사 ^^
아니, 에르고숨 님 생각의 흐름에 감사해야 할까요?
추운데, 따뜻하게 지내세요~^^
최세희 님도 뱀 안 무서우신가 봐요.ㅎㅎ 아마존이 어찌나 방대한지 간신히 간만 봤네요.
넹. 최세희 님도 미세먼지+감기 조심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