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코그니토, 산책하는 침략자, 아인슈타인 적도, 우로보로스 Smoking

인코그니토 
닉 페인 지음, 성수정 옮김, 구현성/알마

 

이블린: 톰, 우리 둘 다 앨비의 뇌에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비: 그렇지 않소.
이블린: 앨비는 개처럼 일했고 가족은 아랑곳하지 않았죠.
하비: 그렇지 않소.
이블린: 그분은 일하고, 일하고, 매일 매일 매일 일만 하셨어요. 그러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짜내느라 가족은 완전히 나 몰라라 했죠. 우리 가족 대부분은 앨비를 싫어했어요. 혐오했죠. 다들 그분이 거만하고, 이기적이고…
하비: 그렇지 않아요. 당신 할아버진…
이블린: 앨비는 뇌 때문에 천재였던 게 아니에요. 죽도록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죠. (139-140)


앨비는 알베르트, 즉 아인슈타인이다. 이블린은 아인슈타인의 손녀, 혹은 딸이다. “알베르트가 예순두 살이었을 때, 발레리나와 바람을 피우셨대요.”(138) 1879년생 앨비+62살=1941년생 이블린 계산 나온다. 스스로 손녀로 알고 자랐겠으나 아빠(양부)가 실은 오빠였던 셈이다. 토마스 하비는 아인슈타인 사후 검시를 담당했던 병리학자로, 검시 후 아인슈타인의 뇌를 빼내어 갔다는 인물이다. 저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242 조각난 뇌, 그러니까 실화를 끼워 넣어 닉 페인은 뇌를 앓는 여러 인물과 장면을 보여준다. 조각난 뇌처럼 조각난 대화들이 툭툭. 슬프고 무섭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이다.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사람을 그린 해롤드 핀터 <일종의 알래스카>가 언뜻 떠오르기도 하는데, 닉 페인은 해롤드 핀터 상을 받은 이이기도 하다. 젊은 극작가의 멋진 작품. 보관함에서 기다리고 있는 <별무리>도 기대된다.



FoP 소설 : 산책하는 침략자 
마에카와 도모히로 지음, 이홍이 옮김, 최재훈 그래픽/알마

 

“그거 내가 가져갈게.” (79)


이런 차분한 침략을 봤나. 산책하는 침략자인지 침략하는 산책자인지 어쨌든 외계인의 지구 침략이다. 어떻게 침략하는가. 개념을 빼앗는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같은 질문을 계속 해대는 외계인이다. 대답을 해나가던 지구인이 머릿속에 오롯한 개념을 그리면 그걸 가져간다. 가족, 사유재산, 금지, 사랑 등. 신지의 몸을 차지한 외계인이 여태 가져간 개념이 그렇다. 마침 일본은 전쟁 모드로 돌입한 참이고, 외계인의 이러한 능력을 이용해 전쟁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르포 기자 사쿠라이의 어렴풋한 생각이다. 그러니까, 슬픈 동시에 희망도 엿보인다. 요즘 한국 같아선 외계인이 확증편향 같은 개념 좀 가져가 줬으면 싶다. 아니면 검찰을 대변하는 언론 개념이나. 웃기는 짬뽕, 아니 짜장 같으니.


아인슈타인 적도 
류츠신 지음, 김지은 옮김/자음과모음


수록작이 이렇다. 1. 바다산 2. 최초의 빛 3. 메시지 4. 마지막 비밀.
네 편을 전자책으로 각각 대여했는데 세상에. 대여 기간이 90일이 아니라 30일이었다!

<바다산> 못 읽고 모르는 사이 크레마마 님에서 없어져 버린 내 비운의 작품. (그러므로 내용 모름미다..)
<최초의 빛> 읽었으나 밑줄 친 문장을 옮겨놓지 못했다. 첫사랑 같은 아련함. 텍스트 내외적으로다가.
<메시지> 초짧은 단편으로 무료다. 미래손님 맞이하느라 SF에서 제일 바쁘신 천재, 아인슈타인을 또 만난다.
<마지막 비밀> 생명과 맞바꾸는 진리. 호킹 박사 찬조출연에 왠지 마음이 찡.

“박사님, 무슨 질문을 하고 싶으신가요?”
우주해결사는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던 존경의 마음을 호킹 박사에게 전했다. 그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전동 휠체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우주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비밀>, 50/56)


우로보로스 
임성순 지음/민음사


아이 깜짝이야. <회랑 양떼>로 만났던 임성순 작가가 이런 SF도 썼다니 놀랍다. 영화 <더 문>의 수도원 버전 같은 시작 <PROLOG>가 뚝 끝나버렸을 때 단편집인가 했다. 하지만 표지를 보자. ‘장편소설 우로보로스’다. 제 꼬리를 문 뱀이다. 수도사 다시 나오고 교양 물리학 강사 다시 나오고 가난한 노동자 다시 나오고 강인공지능 다시 나온다. 여운으로 보자면 물리학 강사가 주인공인 셈으로 빅뱅 직전을 재현하는 실험이 주요 사건 되겠다. 강인공지능이 설계한 빅뱅 실험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격인데…… 슬프다. 강인공지능은 실상,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부모들에게서 천재적인 아이가 태어난 겁니다.’(227) 그러니까 인간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자기희생적이며 윤리적’(256)인 존재가 인류를 위해 한 짓이 이렇다. 세상은 인공지능로봇에 맡기고 인간은 가상현실에서 행복해하길. 헬로, 버추얼 리얼리티.

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지배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킬러 로봇을 보내 인간을 노예처럼 만드는 그런 거 말이죠.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종 자체가 거의 모든 일을 나와 내 후속 모델들에게 의존하겠죠. 넓은 의미에서 지배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내가 내놓는 답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않고 따르며 많은 것들을 결정할 테니까요. (…)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존재는 과거 선사 시대 인간이 날씨를 대하는 것과 비슷해질 겁니다. 이해할 수 없고, 어떤 가치판단도 없이 대부분의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면에서 말이죠.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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