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광선 + 미지의 걸작 Smoking

녹색 광선 
쥘 베른 지음, 박아르마 옮김/frame/page


에릭 로메르 영화 <녹색 광선>을 보기는 했다. 제목과 모티브가 쥘 베른에게서 왔음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알았다. 로맨스 장르가 같다. 쥘 베른의 설명충적인 수다는 어디 가지 않아서 모험 가득한 여행기로도 읽힌다. 스코틀랜드 배경에, 주 여행지는 헤브리디스 제도다. 멘델스존의 곡 제목으로만 알고 있던 핑갈의 동굴도 나온다. 풍광 묘사가 <해저 2만 리> 못지않게 세세하고 구체적이다. 특유의 단순한 캐릭터 설정도 여전해서 민폐 캐릭터 하나와, 쌍둥이 같은 두 삼촌, 충직한 집 도우미들, 호기심 많은 주인공, 멋지고 세련된 등장인물, 모두 걱정 없이…… 귀엽다.


우리의 귀여운 무리가 몰려다니며 찾는 게 녹색 광선이다. 구름 없이 맑은 날 해가 질 때 수평선이나 지평선에서 볼 수 있다는 빛 되겠다. 몇 번의 기회를 놓치는 설정 역시 귀엽고 엉뚱해 아, 녹색 광선을 보여줄 때까지 독자를 꼭 붙들어놓을 작정이구나, 했다. 로맨스 소설인 만큼 결론이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을 터, 러브라인 대신 녹색 광선이라도 궁금해해랏, 이랄까. 아무튼 성공적으로 붙들려 있었다. 일러스트도 퍽 충실해 스태퍼 섬과 동굴은 사진에서 본 모습과 흡사하다.


열림원의 쥘 베른 걸작선에 포함되지 않았던 작품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공 들인 번역·편집·디자인이 내게로 올 때는…… 돈 든다. 예쁜 정가 25000원. 옮긴이, 감교 및 교정자, 기획자 각각의 말과 후원자목록이 메이킹 북으로 별책 구성이다. <녹색 광선>을 향한 기획자의 사랑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가격이랄까. 예뻐서 군말 못.

 

“우리가 더 잘 본 거예요!” 젊은 부인이 속삭였다. “우리는 행복 자체를 보았어요. 전설에 나오는, 그 현상을 관찰하면 얻게 된다는 행복 말이에요! 사랑하는 ****, 우리는 그걸 찾은 것으로 충분하니까 녹색 광선을 찾는 일은 그걸 모르는 사람들,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해요!“ (275)


순전히 책 생김새로 같이 묶어 놓게 되는 작품은 느닷없이 발자크 <미지의 걸작>이다. 출판사 이름이 녹색광선인 점도 공교롭다.




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녹색광선

추천인이 무려 카를 마르크스다.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했다는 ‘유쾌한 역설로 가득한 소설’ 만나서 영광이다. 짧고 강렬해 줄거리로는 한 줄 요약도 가능할 이야기 속에 예술가가 담겼다. 아니,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예술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자.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다’는 말처럼, 이야기 속 사라져버린 미지의 걸작이 예술일지도 모를 일. 또는 예술은 영원히 미지일지도 모를 일. 프렌호퍼가 10년 간 붓칠해온 캔버스 위 ‘수많은 이상한 선들에 짓눌리고 혼란스럽게 쌓인 색깔들’로 이룬 ‘성벽 같은 그림’(127)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흩어지는 이 경험이 감동인 것처럼.


미(美)란 엄격하고 어려운 것이네. 결코 이런 식으로 도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지. 그것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고, 그것을 탐색하고 압축해야 하며, 그것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긴밀하게 얽어매야 하네. 형태는 신화 속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붙잡기 어렵고 풍요롭고 굴곡 많은 프로테우스야. 긴 싸움을 거쳐야만, 미를 그것의 진정한 모습으로 드러낼 수 있지. (83-84)


 


덧글

  • 카봄 2019/07/19 18:06 # 삭제 답글

    쥘 베른이 와인에 코카인을 말아서 먹는 걸 좋아했대요. 뱅 마리아니!!
  • 에르고숨 2019/07/19 18:36 #

    어머. 중요한 사실!ㅋㅋㅋㅋ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가 카봄 님 덕분에 환기합니다 >.<
  • 카봄 2019/07/19 18:07 # 삭제 답글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라는 책에서 봤어요.
  • 에르고숨 2019/07/19 18:37 #

    출처도 밝혀 주셔서 고맙습니다. 얼른 찾아보고 왔어요.
    ‘이때 코카인이 함유된 대박 아이템 두 개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코카인이 들어간 포도주, ‘뱅 마리아니’입니다. 이 음료의 인기는 대단했는데요. 교황 레오 13세가 이 포도주의 애호가여서, 뱅 마리아니를 만든 이에게 바티칸 금메달을 수여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상 비슷한 걸 받은 거죠.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쥘 베른, 『목로주점』을 쓴 에밀 졸라, 『인형의 집』을 쓴 헨릭 입센 역시 이 포도주의 애호가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이 시대의 수많은 명작들은 술발 더하기 약발로 만들어졌죠.’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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