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알라딘1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사은품 더치커피 짱이다. 알라딘 콜드브루 사용 설명서에는 나오지 않는 음료 제조법. (‘물’ 자리에 ‘술’을 넣...) 목 넘김 후 풍부한 향이 온다. 고소하고 맛있어, 하고 있다가 취해버리기 십상+좋아. 하늘색 와인 텀블러라는 물건은 생각보다 크고(400cc!) 별로 예쁘지도 않다. 따뜻한 커피 마실 때 머그잔 대신 쓰고 있음.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NoSmoking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10점
M. 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돌베개

부제가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다. 작곡가와 그이가 살았던 도시, 시대, 사람, 사건, 작품을 다룬다. 이런 걸 보통 역사라고 하지 싶은데,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지적인 접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쇼스타코비치라는 ‘아이러니’를 다루기 때문이겠다. 감상부터 말하자면, 방대한 자료를 조각조각 이어 짜놓은 퀼트가 말할 수 없이 멋지다. 쇼스타코비치의 아이러니는 시대 상황에서 온다. 스탈린 폭정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회고록’이라고 주장하는 볼코프의 저작 <증언>과, 쇼스타코비치 주변인들의 진술 기록 등에 대한 신빙성까지 따져 적었다. ‘윤색’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데, (윤색이라면, <증언>이 아마도 그것을 담당하지 싶다) 혹시 그래서인가. 쇼스타코비치의 아이러니를 이제 잘 알겠다. 그저 살아남으려는 한 예술가의 생활이었고, 거기에 더해 연민이 넘치는 친절한 삶이었음을.


앞서 도시, 시대, 사람, 사건, 작품이라고 썼다. 도시와 시대. 쇼스타코비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열한 살에 혁명을 본 후 페트로그라드에서 자랐고 레닌의 죽음 이후 레닌그라드에서 살았다. 이름이 변해온 도시, 러시아의 수도였다가 소비에트 시대부터 수도가 아니게 된 도시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오직 ‘악마만이’(127) 그 뜻을 안다는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화정책으로 숱한 예술가들이 사라지던 시대다. 쇼스타코비치 또한 ‘옷가지와 따뜻한 속옷을 가방에 챙겨 문 옆에다 두었다. 결국에는 아파트 밖의 층계참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불가피하게 NKVD가 찾아왔을 때 니나와 아기가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162-163) 줄리언 반스 소설 <시대의 소음> 초반 장면이기도 하다. 반스와 앤더슨은 아마도 같은 자료들을 뒤적였을 터다. 그게 참 재밌고 좋다. 결과물은 서지분류 각각 소설과 역사다. 감동으로 말하자면, 희한하게 앤더슨 쪽이 더 크다. 반스 표 쇼스타코비치가 앤더슨 안에 다 들어 있다. 물론 순서를 바꿔서, 앤더슨 장착 후 반스를 읽으면 다를 수도 있겠다.


사람, 사건, 작품. 쇼스타코비치 주변 친구와 동시대 작가, 일기 작가들 목소리가 시대를 ‘증언’한다. 지나가는 이들만 해도 마야콥스키, 안나 아흐마토바, 만델시탐(만델슈탐) 부부, 예브게니 페트로프 등이다. 스탈린의 폭정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볼 수 있다. 이 지도자가 납치, 고문, 살인만 자행했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은 게, 1941년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략했을 때 얼마나 무능했는지까지 잘 그려졌다. 곰곰 생각해보면, 무능했기 때문에 공포정치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무능한 스탈린과 미치광이 히틀러에 대비되어 돋보이는 건 레닌그라드 시민들이다. 도시가 포위된 상황,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을 때의 비인간적 실상 뿐 아니라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을 때조차도 보여준 도움과 친절과 연민 또한 놓치지 않고 풀어놓는다. 쇼스타코비치 작품은 어디에 있는가. 이 과정에 온다. ‘인민을 위한 음악’은 공적을 향한 분노나 사기 진작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인간으로 남으려는 의지’(450)가 음악 속에 있었다. 아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시민들이 그렇게 들었다.


1년 4개월 전 <시대의 소음>을 읽을 때는 당시 막 끝낸 우리 ‘쁘띠’ 스탈린 시대 블랙리스트 사건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읽은 오늘은 쁘띠 스탈린을 지향하는 이들이 보인다. 가짜 조작 뉴스, 혐오를 퍼뜨리는 목소리들. ‘적’이어야 할 대상이 더 이상 적이 아닐 수도 있음에 당황해하는 사람들. 미워하고 비판할 적이 있어야 입지가 선명해진다고 생각하는 자들 말이다. 선전 선동에 향수를 느끼는 당신들의 선배 독재자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역사’ 좀 봤으면 좋겠다. 이 책 포함해서. 험한 시대가 위인을 만든다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험한 시대가 아니었다면 위인은 더욱 뛰어났을 것이며, 더 많은 수의 위인이 살아남았으리라.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스카렙스코예 묘지 화강암 벽에는 올가 베르골츠의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아무도 잊지 못하게 하라./ 아무것도 잊히지 않게 하라.’(490-491) 5별로 모자라 10별 주고 싶은,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이다.


우렁찬 함성으로 《레닌그라드》교향곡이 끝났다.
침묵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당연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승리처럼 느껴졌습니다.” 트롬본 주자 빅토르 오를롭스키의 말이다. “마지막에 지휘자 엘리아스베르크가 십대 소녀로부터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주목할 일이었다. 채소를 키워야 하는 이 도시에서 꽃을 심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녀가 오케스트라를 향해 돌아서서 설명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한 것은 삶이 평소처럼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451-452)



죽은 자들의 메아리 Smoking

죽은 자들의 메아리 
요한 테오린 지음, 권도희 옮김/엘릭시르


스웨덴 욀란드 섬 가을이다. ‘비수기’ 섬의 쓸쓸한 정경. 으슬으슬 춥고 안개가 짙다. 온통 잿빛일 듯한 배경과 어울리는 어두운 사건을 그린다. 꼬마 옌스의 실종이다. 20년이 흘렀다. 아이를 잃은 엄마 율리아와 외할아버지 옐로프에게는 고통에 짓눌린 세월이다. 옌스의 조그만 샌들 한 짝이 우편으로 옐로프에게 도착하면서 사건을 다시 파헤치게 된다.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 있다’는 식의 과묵한 주인공의 현재가 한 편에 있고 범인(들)의 과거 실상이 전개되는 진행이 다른 편에 있다. 단서를 가진 채 죽거나,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현재 진행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후자가 벌충하는 셈이다. 당연히, 따로 가던 이야기는 끝에 만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아이를 잃고 무기력해진 여인 캐릭터는 전형적이고, 몸이 성치 못한 노인은 너무 혼자서만 과묵하게 ‘탐정놀이’한다만. 퍼즐을 완성하고 나서는 두 사람도 변하리라는 조짐이 보인다. 그러니까,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말이다. 한강 문장을 빌려오면,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한강, <소년이 온다>). 과거에 꽁꽁 묶어 있던 삶이 비로소 미래로 풀려나가리라는 예감의 대단원. 스텐비크 별장과 보트창고에 온기가 돌아오리라는 생각에 조금은 덜 추워진다.


“난 과거에 묻혀 있지 않고…… 앞을 보며 살아가려고 노력했어요. 이제까지는 잘되지 않았는데, 이번 가을에는 나아진 것 같아요. 조금이긴 하지만요. 이제 마음껏 슬퍼할 수 있게 됐거든요……. 예전에는 그러지 못했죠.”(465)

 

사탄탱고 Smoking

사탄탱고 - 10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알마


‘루머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악마가 숭배하는 단 하나의 말’이라는 헝가리어 소설이다. 따옴표 문장은 <부다페스트>에서 획득한 정보로, 헝가리 작품을 만날 때마다 내가 계속 퍼뜨리는 루머이기도 하다. 악마언어로 쓰인 사탄탱고. 마침맞다. 옮긴이가 독일어 전공자인 점으로 보아 중역인 모양인데, 번역 문장 좋다.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하는 장문들이 삐걱대지 않는다. 이야기가 동적이고 진행이 느리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알마 인코그니타 시리즈의 아름다운 양장본으로, 오래오래 천천히 읽을 작품이 아닐까 했으나 웬걸, 페이지터너다.


오늘 낮볕이 이랬다. 같은 시월인데, <사탄탱고>에서는 추적추적 비 내린다. 퇴락한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이다. 이미 몇 차례 이주가 있었던 듯, 남은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모종의 기다림이 있다. 예수를 기다리는 신봉자의 모습과도 닮았다. 구원의 색채를 띤다. 이쯤 되면 이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고도인 건가. 아니다. 도착한다는 소문이 퍼진 후에, 한 바탕 술판과 ‘탱고’의 기다림 끝에, 구원자로 여겨진 이가 온다. 멋들어진 연설로 기대에 부응한다. 주민들이 흔쾌히 투척한 돈을 갖고 사라진다. 이쯤 되면 이이는 그냥 사기꾼인 건가. 아니다…… 


기다림의 객체가 고도도 아니고 사기꾼도 아닌 데에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부조리극 아니고 범죄물 아닌 어떤 아름다운 데에. ‘구원자’가 관계 당국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장면은 거의 카프카 오마주가 아닐까 했고, 하늘에서 내려온 베일 같은 환상 요소가 엄연함에도 꿈이나 뜬 구름 같지 않다. 오히려 땅에 두 발 딱 붙인 환멸이라고 할까. 얼버무리지 않고, 사람들이 살아 있고, 목표물을 가리키지 않으며 완벽하게 닫히는 원. 무엇보다, 저 원에서 이탈하지 않고 남는 건 기록하는 이(의사)와, 술집이다, 여러분.


다시 피곤이 몰려왔고 어딘가에 앉지 않으면 고꾸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술집으로 가는 다진 길이 나타나자 그는 쉬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100걸음 정도만 가면 되겠지.” 그는 스스로를 격려하듯 말했다. 술집의 창문과 문에서 희망처럼 불빛이 내비쳤다. 캄캄한 밤중에 유일하게 밝은 점인 그것을 향해 그는 방향을 잡을 수가 있었다. (110)



P.S. 비와 술, 거미, 종소리는 작품 전반 기조를 형성하는데, 이중 환상요소로 남겨놓아도 무리 없을 종소리조차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현실로 까발린다. 의사가 종소리 발원지를 찾아간 장면에서,


종을 찾으러 간 의사가 갑자기 뭔가 기록하고 싶어서 종이를 찾은 게 아니라면, ‘여기에 종이 있습니까?’를 잘못 쓴 거라고 해줘요, 알마. (1판 1쇄입니다.)


몰아 쓰는 300자평과 발췌문 NoSmoking


내면기행 -심경호 지음 /
 민음사


부제 그대로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다. 묘도(墓道)에 세우는 묘비(墓碑)·묘표(墓表)·묘갈(墓碣), 광중(壙中)에 묻는 묘지(墓誌)·광지(壙誌) 등 통틀어 자찬묘비(自撰墓碑)라고 부른다는 기록들이다. 깔끔한 번역문으로 실렸고 해당 인물 개인사와 행적 등은 저자의 설명이 보충한다. 자찬묘비는 짧은 자서전이나 자기 평가과도 비슷하여 ‘내면 기록’이라 한다면, 저자의 설명은 ‘외면 기록’을 담당한 셈이라고 해도 될는지. 빼곡하고 여문 기록이다. 13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자찬묘지, 스스로 자기 삶을 돌아보고 바로 그 존재의 무화(無化)를 상상하며 적었을 문장들에 무척 숙연해지는데…… 바람은 또 왜 이리 찬 거냐. 가을 맛 책.


재주 없는 데다
덕 또한 없으니
사람일 뿐.
살아서는 벼슬 없고
죽어서는 이름 없으니
혼일 뿐.
근심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72, 이홍준(李弘準, ?~?),「자명(自銘)」)


 내 곁의 세계사 -조한욱 지음 / 휴머니스트 
 
 
표제어가 무려 139개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간략한 사전적 설명에 더해 우리나라 시사를 가미했다. 두 페이지를 넘지 않는 짧은 호흡. 어떤 매체에 연재했던 글인지, 시의성이 확연했던 당시에는 더 재미있었겠다. 날짜와 원어 병기가 없는 점이 조금 아쉽다만 ‘현재와의 관련성’을 빼놓지 않고 제시하는 점은 흥미롭다. ‘역사학이 내향적으로 화석화되는 것을 막는’(51) 본보기 또한 되겠다. 짧은 호흡의 장점, 띄엄띄엄 쉬엄쉬엄 읽어도 좋을 종횡무진 역사 단편들과 오늘 여기 우리.


그(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역사가의 과업이란, “단순히 과거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현재와 관련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다양한 관점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어떤 정치적 명분에 개입하게 된다. 그것은 연구에 창의력을 불러 넣어 역사학이 내향적으로 화석화되는 것을 막는다. (51, ‘에릭 홉스봄’ 중)


 마인드헌터 -존 더글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비채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FBI 수사지원부에서 일했던 저자의 회고록이다. 프로파일링이라는 수사 방법을 개발해낸 장본인이라고 한다. 저자가 담당했던 연쇄 살인·강간 범죄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도왔던 사건, 그리고 교도소에서 면담했던 흉악범들 이야기까지 빼곡하게 담겼다. 물론 교도소 면담 및 사례 연구가 프로파일링 수사법의 바탕이 된 것이겠다. 범죄스릴러소설을 적어도 열 편은 연달아 읽은 느낌이다. <양들의 침묵> 속 잭 크로포드 모델이기도 했으며, 회고록이 서지 ‘추리/미스터리’로 분류되는 이분, 존 더글러스다.


연쇄 살인범이나 연쇄 강간범을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환상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환상은 좀 더 폭넓은 뜻으로 쓰인다. 보통 사람도 물론 환상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순간순간 일어날 뿐 곧 사라져버리고 만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새와 같다. 그러나 소시오패스는 그 새가 자기 머리 위에 둥지를 짓고 살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환상과 행동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206-207/716)



몰아 쓰는 500자평과 발췌문 Smoking

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아카이브


오타 아이의 <범죄자>가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먼저 손에 들어 본 작가의 이전 작품. 원제는 ‘幻夏’(변할 환, 여름 하)로, 소년이 극적인 변화를 겪는 여름을 말하는 모양이다. 상징성이 강한 원제에 비해 번역제목이 좀 덜 멋지다. 잊힌 소년도 아니고 ‘잊혀진 소년’이라니. 그렇다고는 해도 묵직한 사회파 추리물이다.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몇몇 범죄들이, 알고 보니 23년 전 ‘원죄’에 뿌리를 두고 있더라는 설정. 원통할 원寃을 쓰는 원죄(寃罪)다. 23년 동안의 범죄는, 국가 폭력에 대한 비틀린 복수이자 소년의 어두운 변태(變態)인 셈이다. 등장인물들 중 우리 현실에서도 본 듯한 이들은 아니나 다를까 경찰과 법원의 높으신 분들이더라. 조현오 김기춘 양승태 같은 이름들, ‘법 기술자’들의 사법 농단. 사죄하는 가해자가 하나도 없는 것까지도 어쩜 이리 닮았는지. <범죄자>는 보관함에 안전히 간직하기로 했다.

나오가 시바타니 데쓰오를 기억하느냐고 묻자 오카무라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하더니, 주저 없이 기억에 없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인생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사건은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많은 것을 빼앗긴 쪽이 평생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425)


 

검은 마법과 쿠페 빵 
모리 에토 지음, 박미옥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어둡고 찜찜한 추리물일 거라고 예상했다. 왜지. 스포 당할까봐 책을 읽기 전에는 설명과 리뷰를 자세히 보지 않는 내 탓이겠다. 표지도 제목도 그리 착 달라붙지는 않은 듯하나, 그건 내 탓 아니다. 아이의 성장기다. 십대 노리코가 비행하고 사랑하고 성숙하여 제 갈 길 잘 찾아간 이야기. 지랄총량법칙 성장소설. 다른 무엇보다 자기중심성에서 불현듯 벗어나는 순간이 그려진 게 좋다. 성장은 눈이 높아질 뿐 아니라 넓어지게도 하는 거니까. 키만 크는 이야기를 ‘성장소설’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술 구덩이에 빠지고 물건을 훔치면서 허무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언니도 허무한 사랑의 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바람을 피워 엄마를 울리고,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울고, 모두 그렇게 허무한 나날을 보냈으면서도 결국 그 허무를 딛고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207/318)


 

개를 키우는 이야기 / 여치 / 급히 고소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 옮김/책읽는고양이


다자이 오사무 단편 세 개가 묶였다. 첫눈엔 다자이 오사무 같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대표작 <인간 실격>만 읽은 내가 다자이 오사무를 잘못 알고 있거나 덜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더 알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개를 키우는 이야기>는 제목이 스포일러이면서 귀엽다. 개를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어쩌다보니 키우게 되는 화자, 투덜이 예술가가 혹시 내가 잘 모르는 다자이 모습과 닮았는지? 이렇게 귀여우시다면 더 알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여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의 편지>와 같은 형식으로 여인의 편지다. 속물이 되어가는 예술가 남편 관찰+고발기. (응, 버리고 떠나세요.) 이 속물 예술가 남편이 혹시 내가 잘 모르는 다자이 모습과 닮았는지? 그렇다면 그만 알고 싶다만. <급히 고소합니다>는 다른 번역본에서 <**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다는데 나는 <급히 고소> 제목이 더 좋다. 화자가 누구인지 차차 알게 되는 게 이 작품의 묘미인 듯해서다. 개, 여치, 급고소 세 작품. 순서대로 염세적이다가 섬세하다가 어둡다…… 어라, 다자이 오사무 맞잖아, 다자이 님 살짝 더 알게 되고 말았군.

그 사람은 식탁 위에 있는 물병을 들어 물병 안의 물을 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작은 대야에 따르더니 새하얀 수건을 자신의 허리에 걸치고 대야에 담긴 그 물로 제자들의 발을 차례차례 씻겨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유를 몰라 당황스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저는 왠지 그 사람의 숨겨진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저 사람은 외로운 것이다. (69/97, 「급히 고소합니다」)


지구인 Smoking

지구인 -최인호 / 문학동네
 

김기춘이 <자칼의 날>을 읽었다는 휴가 며칠 전이었겠다. 1974년 7월 26일 이종대는 부인과 어린 딸 아들을 죽이고 자살했다. 이종대가 문도석과 함께 벌인 일명 카빈강도사건의 끝이 그러했단다. 그 무렵 나도 지구상에 있긴 했으나 하도 미미하게 존재하여서 기억에는 입력하지 못한 사건이다. 최인호 소설로 기억 혹은 역사를 채워 넣는 셈이다. 70년대 마초스럽고 폭력적인 공기가 매우 불편하다.

전쟁과 독재, 가난이 키운 범죄자들을 본다. 그들이 다시 ‘희생양’(김형중 해설)이 되는 모습까지도. 희생양이 있었다면 어떤 기도나 염원은 이루어진 것인지. 내 생각에, 아주 약간은 그러한 듯도 하다. 소위 진보라는 것이 조금은 있어서 이 소설 자체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내가 있는 걸 보면 그렇다. 그들 덕분인지 그들 때문인지 알 수 없어서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원망스럽다는 말은 못하겠다. 단지 아주 후지다. 스타일이 아니라 마인드가. 팩션 또는 르포르타주라고 강변해온다면, 무척 세련된 스타일 소설이 담고 있는 후진 시대라고 할밖에. 이런,  재채기.


내가 도전했던 것은 법과 질서, 그러한 사회의 쇠사슬, 구속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라고 부를까. 우선 편리한 대로 하느님이라고 부르겠다. 신에게 도전한 것이며, 신에게서 시간을 훔쳐 나온 것이다.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것이다. 영원히 신의 곁을 도망칠 수는 없다.
잠시 맛본 이상한 세계의 기괴한 광경을 반추하며 체포되어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종대는 텅 빈 상점거리에 서서 홀로 중얼거렸다.
하느님. 이 빌어먹을 새끼야. (2권, 239)



김기춘 + 자칼의 날 NoSmoking

김기춘과 그의 시대 - 8점
김덕련 지음/오월의봄


2013년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나타났을 때 그저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더라. ‘르브낭(revenant, 유령, 망령).’ 역사책 어두운 페이지에나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했던 유신 망령이 되살아오다니 무서워서 혼났다. 우리 동시대인들은 어째서 유령을 다시 봐야 했단 말인가. 하기야 유신공주가 등장한, 판타지스러운 정권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사람, 우리 눈에 안 보일 때조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는 게 더 무섭다. 국회의원 3선에다, ‘우지 파동’으로 농심 법률 고문이었음은 알려졌다고 해도 KBO 총재까지 역임했다는 사실은 이 책으로 알았다. 입법, 사법, 행정 뿐 아니라 기업과 스포츠 권력의 자장 안에서 핵심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만 했지 늘 안락하게 거기 있었다. 성실하고도 꼼꼼하게. 적폐유령답게.


유신헌법을 손보고, 숱한 간첩을 만들어냈으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고 강기훈 씨를 유죄로 만들 때 법무부 장관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남이가’ 선거법 위반조차 법을 이용해 빠져나가 프레임 설정의 진수를 보여줬던 인물. 판타지는 소설로 봐야 하는 법이다. 현실이 판타지이면 억울한 사람과 희생자가 너무 많아지거든. 이 사람으로 인해 죽은 이가 몇이며 삶을 망친 이가 몇인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기억이 안 납니다’였다가 ‘그렇다면 내가 몰랐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까지 낱낱이 보았다. 유령의 끝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끝났느냐고? 아니다. 아직 진행 중이다. ‘노구’를 이끌고 부축 받으며 오늘도 법정에 나왔다. 선민의식에 가득 차 권력의 주변과 핵심에 머무르며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판타지민주주의를 살았던 유령. 이제 무섭지는 않은데, 우습지도 않다는 게 참, 뭐랄까. ‘미안합니다’를 듣기에는 너무 ‘노구’인 게 아쉽다고 할까.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과 상충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검찰·사법부·언론 개혁의 진전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43)


자칼의 날 - 10점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김기춘이 문세광을 신문할 때 언급했다는 ‘전설’로 알려진 작품. 김기춘이 아니어도 명불허전이다. 킬러와 형사 양측에서 각각 펼쳐가는 진행이 숨 막힌다. 범죄와 추적 모두 치밀하다. 정신없이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데도 무리가 없다. 질질 끄는 곁다리 없이, 겉멋도 없이 직진한다. 드골이 장수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모든 독자가 읽기도 전에 스포일러 당한 이야기임에도 박진감이 넘친다. 슬프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어째서이지? 어째서이긴. 잘 썼기 때문……. 동서문화사 초판이 1977년이다. 김기춘이 1974년 8월 4일 대천 해수욕장 휴가 중에 읽었다는 판본은 아니겠다. 왠지 다행스럽다. 르브낭과 같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기침을 하더니 침을 뱉었다.
“치사스런 개새끼들!”
그는 램프의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가 똥똥한 부인의 곁에 누웠다.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붙잡히면 안 된다, 이 젊은 녀석아.” (388)




단어탐정(OED) + 매일단어(MWU) NoSmoking

단어 탐정10점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10점



어쩌다 보니 ‘사전 책’ 두 권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과 미국 메리엄 웹스터 사전(MWU) 이야기다. 각각 옥스퍼드대학교 출판사 사전부에서 37년 재직하고 은퇴한 존 심프슨과, 메리엄 웹스터 사전 제작사에서 20년째 재직 중인 코리 스탬퍼가 썼다. 원서 출간년도가 나란히 2016년과 2017년. 번역본이 꽤 빨리 나온 셈이다. 두 권 다 기막히게 멋지다. 이야기보따리가 어찌나 충실한지 배가 다 부르다. 지적이고 인간적이고 감동스러운데 유머까지 가졌다. 이런 글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사이먼 윈체스터의 <교수와 광인>에서도 본 바, 사전의 역할은 ‘깨끗한’ 언어를 수호하거나 지시하는(‘규범주의’) 게 아니라는 점. 단지 사용자들의 말을 관찰하여 정리하고 기록한(‘기술주의’) 자료라는 점. 게다가 요즘 들어서는 온라인으로 더욱 민주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는 점 등을 공히 볼 수 있다. 내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시대 변화가 단어 정의에 반영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알려지게 된 것의 이익과 불이익을 인지하게 되었다. 성중립적 접미사로서의 -person 표제어를 작업하고 racism과 sexism 항목도 다시 검토했으며 머지않아 사전에 등재된 ablism, lookism 같은 새로운 -isms 단어들도 계속 지켜보았다.’(<단어 탐정>, 97) 또 다른 예로, MWU의 경우는 눈물겹기까지 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저자 모두 언급하는 ‘marriage’다.


사전에 동성 결혼의 의미를 실은 건 메리엄 웹스터가 대형 사전 제작사 가운데 꼴찌였다. (...)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기존 정의(“the condition of being a husband or wife; the relation between persons married to each other; matrimony(남편이나 아내인 상태; 서로 결혼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혼인)”에 해설을 덧붙이는 쪽을 택했다. “이 용어는 현재 동성 파트너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일컬을 때에도 쓰인다.” 여기에 ‘gay’가 상호참조로 올랐다. (<매일 단어>, 312-313/353)


왜 눈물겨웠느냐고? 우리나라 게이 퍼레이드 행사 때 꼭 맞불 집회하는 보수단체들 있잖은가. 그이들의 항의가 MWU에 쏟아진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누군가의 성 지향이나 결혼에  있어서 (나는 결혼제도에 반대하는 편이나 결혼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그것도 (성경이 아니고) 사전 표제어 정의에 대해서이니 대표적이고도 비뚤어진 ‘규범주의’가 아닐까 싶다. 사전이 동성 결혼을 만드는 게 아니고 당신들(우리)이 언어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음이다. 예상 가능하지만 내처 한글사전 ‘결혼’을 본다.


결혼[結婚]: 1.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 2.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다 (다음어학사전)


2번은 동성도 포함한다는 얘긴가. 네이버 사전과 내가 가진 ‘민중 엣센스 국어사전’ 그리고 크레마 프라임 사전에는 모두 2번이 아예 없다만. 당연하겠다. 아직은. 기술주의라니까. 예전에는 한글사전에 ‘사랑’인지 ‘연애’인지에도 이성상대의 의미가 들어가 있어 놀랐던 적 있었는데 지금 보니 모두 ‘상대방’이나 ‘두 사람’ ‘다른 사람’ ‘어떤 대상’으로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규범주의자를 놀라게 할 단어 얘기를 또 해보자. 소위 ‘나쁜 단어’ 말이다. OED 존 심프슨은 ‘fuck’을 공들여 설명한다. 이보다 진지할 수 없게. 읽는 나도 덩달아 사뭇 진지하게 ‘fuck’ 공부하게 된다.


이어서 MWU 코리 스탬퍼는 ‘bitch’를 들고 나온다. 역사적이고 역동적이다. 조 프리먼의 <빗치 선언문>으로부터 시작된 ‘언어 되찾기’ 과정까지 담겼다. ‘언어 되찾기란 비방 받는 집단이-여성, 게이 남성, 유색인종, 장애인-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노여운 비방 표현을 스스로 당당한 정체성 표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억압자의 권력을 없애는 수단이자, 자신에게 날아오는 언어적 화살을 붙잡는 것과 같다.’(<매일 단어>, 214/353)  요즘 우리말 ‘메갈’의 경우와 상당히 비슷한 듯도 하다. ‘메갈’에 비하의 의미가 다분히 스며  있음을 사용자와 대상자들은 알 것이다. ‘언어적 화살’을 어떻게 되돌려 무기로 쓰게 될지는 차차 지켜볼 일이겠다.


사전 편찬업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유복하고, 교양 있고, 나이 든 백인 남자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여성 사전 편찬자가 남성보다 더 많지만, 사전 편찬업의 지형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고루하다. (…) 1956년 대니얼 쿡은 ‘bitch’의 두 번째 의미가 사실은 폄하 의미라는 걸 보지 못했다. 1992년 프레드 미시도 마찬가지였다. ‘bitch’가 여성에게 쓰일 때 폄하 표현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두 사람은 직접 ‘bitch’라고 불려본 경험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매일 단어>, 225/353)


‘현대 사전 편찬자들은 객관적이 되도록, 개인적으로 지닌 언어적 짐은 문간에 내려놓도록 훈련 받는다’고 이어진다. 그러나 사실은, 사전을 펴 보는 많은 사람이 잊고 있겠지만, 언어 사용 용례를 낱낱이 점검하고 정리하고 정의를 내리는 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언어는 깊숙이 개인적이며 사전 편찬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코리 스탬퍼에게는 ‘bitch’가 그랬고 존 심프슨에게는 ‘Angelman syndrome’과 ‘레트 증후군’이 그랬다. 심프슨의 딸 엘리가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병명들로, 심프슨이 사전에 넣었다. 보통은 넓은 범위의 증후군이나 질병을 사전에 수록하지 않는다는 전통 또는 중립성을 해칠 위험이 있었음을 본인도 인정한다. 심프슨은 이렇게 덧붙인다. ‘내 개인적인 삶의 불확실한 부분이 괴물처럼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OED의 중립적인 절차를 집어삼켰다.’(<단어 탐정>, 245)


모두에 ‘인간적’이라고 썼던 이유가 이것이다. ‘이 안에 사람 있어요’는 사전에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제 사전을 펴 볼 때 더 따뜻한 눈으로 보게 될 성 싶다. 단어 하나하나에,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러나 틀림없이 나보다 훨씬 분석적이고 냉철하고 똑똑할) 어떤 사람의 손길이 스쳤음을 배웠다. <단어 탐정>을 열면 20대 초반 나이의 사전 편집 어시스트 존 심프슨을 만났다가 책을 덮을 때 60대 편집장 존 심프슨에게 인사하게 된다.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OED의 역사와 심프슨 개인사가 다 흘렀다. 마법의 글쓰기다. 사족 하나 붙이자면 <단어 탐정> 331쪽 번역문에 ‘여류 소설가 에드나 페버’라고 되어 있다. 1980년대에 이미 성중립적 직업 명칭을 작업한 저자의 문장을 이렇게 옮긴 건 좀 무심한 번역이었지 싶다. 몇몇 작가들 이상한 이름표기도 눈에 띄었고. ‘존 드리덴’(78, 존 드라이든) ‘에블린 와프’(80, 이블린 워)


공교롭게 공히 사전 출판부에 면접 보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공히 몇몇 단어들의 역사적 의미 변화를 짚어주며 공히 사전은 언제나 삶에 뒤처지므로 출판되자마자 낡기 시작함을 알려주고 공히 100여 년 전부터 이어져온 ‘크라우드소싱’ 독자들과의 소통에서 느낀 뿌듯함을 전해주며 공히 사전 편집은 ‘읽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함을 얘기하고 공히 동료들을 따뜻하게 이름으로 호명하여 거론하고 공히 사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며 공히 유머가 넘치면서 지적인, 각각 ‘무해한 노역자’ 두 사람의 책이다.


Lexicographer: A writer of dictionaries; a harmless drudge, that busies himself in tracing the original, and detailing the signification of words. (Samuel Johnson)




<교수와 광인>은 개정판이 나왔다.



9월 상반기 알라딘 술이깰때까지자시오

 

두 권은 다 읽었고 두 권은 읽는 중이며 세 권은 한참 후에나 열어볼 듯하고 세 권은 천천히 오래오래 읽을 셈이고 네 권은 어서 읽고 싶어 몸이 단, 9월 상반기 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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