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세계라면 + 의학사의 이단자들 + 제1구역 NoSmoking

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지음/동아시아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란 역학의 한 분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구조, 제도, 관계 등을 추적하는 학문이다. (…) 사회역학은 개인 보건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 역시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요인과 건강의 상호관계에 주목한다. (위키백과)


역학(力學) 아니고 역학(疫學)이겠으나, 질병의 원인으로 사회적 환경을 상정하다 보면 사회역학(力學)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건강에조차 존재하는 힘의 관계 말이다. 몸이 겪는 불평등이다. 권력에서 밀려나 있는 약자의 질병, 고려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 비주류 고통을 돌아본다. 권력, 시선, 기록, 죽음과 질문, 상식으로 나뉜 장에서 ‘생산되지 않는 지식, 측정되지 않는 고통’(책소개)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숱한 논문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문장들이다. 저자는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왜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다. 내  얘기를 해줘서다. 애써 보려 해야 보이는 사회의 을, 병, 정의 건강들. 순전히 운이 좋아 여태 살아온 게 아니라 사회가 내 건강을 염려한다면…… 더 잘 살겠다. 사회역학(疫學)이 사회역학(力學)으로 읽혀 고마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제멜바이스로 끝나고 <의학사의 이단자들>은 제멜바이스로 시작한다.


의과대학 학생 시절, 실습생으로 처음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소독약으로 손을 씻는 법이었습니다. 손에 묻어 있는 균을 환자에게 옮기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150년 전만 하더라도 의사들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헝가리 출신의 의사 제멜바이스의 실험이 있었습니다. (309)



의학사의 이단자들 - 10점
줄리 M. 펜스터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제멜바이스를 언급하는 머리말을 지나 5부 4장으로 이루어진 본문은 의학사 20장면을 그려준다. 또는 20명(이상)의 ‘이단자’들이 의학에 가져온 발전을 이야기한다고 할까. 길지 않은 분량에 20명(이상)이 각각 살아 있다. 평전이라기엔 짧고 에피소드라기엔 풍부하고. 크고 작은 이야기를 적절하게 구성해 어쩜 이렇게 경제적으로 잘 썼을까. 검토한 자료 목록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길다. 자료의 힘, 취사선택 편집과 구성의 힘인가 보다. 익숙하고 유명한 인물만 좇지 않고 의학사에서 혁명적인 사건 속 이름들을 거론한다. 대부분은 의사들이지만 때로는 역학자, 환자, 환자의 배우자, 동물권 옹호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종두법 제너가 알려지기 전에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있었다는 사실이나 심장 박동기가 처음 시행되는 계기로 환자 배우자 엘세 마리에 라르손을 거론하는 식이다. 백과사전 형태 의학사와는 달라서 스토리가 살아 있다.


특히 마취제를 둘러싼 이전투구는 <마취의 과학>에서 얼핏 보았던 세 사람의 아프고 슬픈  이야기였다. 19세기 무지막지한 외과수술의 고통을 끝내게 해준 업적 이면의 블랙코미디다. 웰스, 모턴, 잭슨 각자의 형편이나 성격, 이후 행적을 건조하게 일러주는데 가치평가는 없다. 그냥 비극이다. ‘그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 편지를 쓴 뒤 다리의 대동맥을 끊어 자살했다. 이 마지막 순간에 그는 먼저 자신의 몸을 마취하는 걸 잊지 않았다.’(330/471) 같은 거. 짧은 저자 소개에 의하면 마취제 연구서를 쓰기도 했던 모양이다. 번역되어 나온 다른 작품이 없어 아쉽다. 전자책으로 읽었으나 종이책으로 갖고 싶은 책, 줄리 M. 펜스터다. <제1구역>으로 넘어가기 위해 천연두 편에서 발췌해보자.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는 인류가 이제 천연두에서 해방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건 의학계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종두와 우두가 마침내 지구상에서 그 바이러스를 박멸했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미국 정부가 애틀랜타에 있는 질병 감시 및 예방 센터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배양해서 보유하고 있으며,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의 연구소도 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만일 이들 바이러스가 유출된다면 엄청난 재앙이 올 것이다. (210/471)


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은행나무

미국 정부가 폐기하지 않고 있던 바이러스가 유출됐는지는 모르겠다. 원인 모를 역병이다. 감염되면 공격성을 보이는 ‘해골,’ 또는 얌전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붙박이 망령’이 된다. 마크 스피츠(별명이다)는 어찌어찌 살아남아 임시정부 소속 감염자 처리반에서 일하게 된다. ‘최후의 밤’ 이전에는 계층 때문이었든, 피부색 때문이었든, 뉴욕에 올 때면 주눅 들곤 했던 마크 스피츠다. 재난 때문에 덜 불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거, 희극인가 비극인가. 알 수 없고 혐오스러운 ‘적’을, 나머지가 똘똘 뭉쳐 시급하게 타자화하는 건 또 다른 편견인가 아닌가. 종말 문학이 대개 그렇듯 콜슨 화이트헤드도 현대 문명을 아프게 꼬집는다.


마크 스피츠라는 실제 인물을 미리 알고 있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1950년생 미국 수영 선수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7종목을 석권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8관왕 마이클 펠프스 이전까지 한 대회에서 최다 금메달을 딴 사람이었단다. <제1구역> 주인공이 이 별명을 가졌다. 왜 그렇게 됐는지, 어떤 은유와 소용을 가질지 이야기에서 알게 된다. 소설 속 흐른 시간은 단 3일이나, 플래시백이 마구 끼어든다. 글 전체가 PASD(Post Apocalyptic Stress Disorder)를 보여주는 듯도 하다. 발음상 과거Past 혹은 종말 후 스트레스 장애PASD 둘 다 되겠다. ‘폭력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다정한 소설’이라는 뉴욕 타임스 북 리뷰를 오래 쳐다보았다. 저 이상한 다정함은 편견을 몸소 겪어본 작가여서 가능했던 게 아닐지. <더 로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 지금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할, 잿빛으로 우아한 종말 문학.


게리라면 인종, 성별, 종교적 편견을 수두룩하게 알고 있을 것 같았다. (…) 지금은 흑인 백인 할 것 없이 한편이 되어 역병 환자인 ‘그들’을 욕하는 시대였다. 깨끗이 소탕된 안전구역이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이 다시 숨이 막힐 만큼 복작복작 모여 살게 된다면, 과거의 편견들도 되살아날까? 아니면 이런 적의, 두려움, 시기심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만약 서류작업이 되살아날 수 있다면, 편견과 주차 티켓과 재방송도 분명히 되살아날 것이라고 마크 스피츠는 생각했다. (336)





7알라딘5 술이깰때까지자시오


녹색 광선 + 미지의 걸작 Smoking

녹색 광선 
쥘 베른 지음, 박아르마 옮김/frame/page


에릭 로메르 영화 <녹색 광선>을 보기는 했다. 제목과 모티브가 쥘 베른에게서 왔음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알았다. 로맨스 장르가 같다. 쥘 베른의 설명충적인 수다는 어디 가지 않아서 모험 가득한 여행기로도 읽힌다. 스코틀랜드 배경에, 주 여행지는 헤브리디스 제도다. 멘델스존의 곡 제목으로만 알고 있던 핑갈의 동굴도 나온다. 풍광 묘사가 <해저 2만 리> 못지않게 세세하고 구체적이다. 특유의 단순한 캐릭터 설정도 여전해서 민폐 캐릭터 하나와, 쌍둥이 같은 두 삼촌, 충직한 집 도우미들, 호기심 많은 주인공, 멋지고 세련된 등장인물, 모두 걱정 없이…… 귀엽다.


우리의 귀여운 무리가 몰려다니며 찾는 게 녹색 광선이다. 구름 없이 맑은 날 해가 질 때 수평선이나 지평선에서 볼 수 있다는 빛 되겠다. 몇 번의 기회를 놓치는 설정 역시 귀엽고 엉뚱해 아, 녹색 광선을 보여줄 때까지 독자를 꼭 붙들어놓을 작정이구나, 했다. 로맨스 소설인 만큼 결론이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을 터, 러브라인 대신 녹색 광선이라도 궁금해해랏, 이랄까. 아무튼 성공적으로 붙들려 있었다. 일러스트도 퍽 충실해 스태퍼 섬과 동굴은 사진에서 본 모습과 흡사하다.


열림원의 쥘 베른 걸작선에 포함되지 않았던 작품이라 반갑기는 했지만, 공 들인 번역·편집·디자인이 내게로 올 때는…… 돈 든다. 예쁜 정가 25000원. 옮긴이, 감교 및 교정자, 기획자 각각의 말과 후원자목록이 메이킹 북으로 별책 구성이다. <녹색 광선>을 향한 기획자의 사랑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가격이랄까. 예뻐서 군말 못.

 

“우리가 더 잘 본 거예요!” 젊은 부인이 속삭였다. “우리는 행복 자체를 보았어요. 전설에 나오는, 그 현상을 관찰하면 얻게 된다는 행복 말이에요! 사랑하는 ****, 우리는 그걸 찾은 것으로 충분하니까 녹색 광선을 찾는 일은 그걸 모르는 사람들,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해요!“ (275)


순전히 책 생김새로 같이 묶어 놓게 되는 작품은 느닷없이 발자크 <미지의 걸작>이다. 출판사 이름이 녹색광선인 점도 공교롭다.




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녹색광선

추천인이 무려 카를 마르크스다.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했다는 ‘유쾌한 역설로 가득한 소설’ 만나서 영광이다. 짧고 강렬해 줄거리로는 한 줄 요약도 가능할 이야기 속에 예술가가 담겼다. 아니,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예술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자.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다’는 말처럼, 이야기 속 사라져버린 미지의 걸작이 예술일지도 모를 일. 또는 예술은 영원히 미지일지도 모를 일. 프렌호퍼가 10년 간 붓칠해온 캔버스 위 ‘수많은 이상한 선들에 짓눌리고 혼란스럽게 쌓인 색깔들’로 이룬 ‘성벽 같은 그림’(127)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흩어지는 이 경험이 감동인 것처럼.


미(美)란 엄격하고 어려운 것이네. 결코 이런 식으로 도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지. 그것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고, 그것을 탐색하고 압축해야 하며, 그것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긴밀하게 얽어매야 하네. 형태는 신화 속의 프로테우스보다 훨씬 더 붙잡기 어렵고 풍요롭고 굴곡 많은 프로테우스야. 긴 싸움을 거쳐야만, 미를 그것의 진정한 모습으로 드러낼 수 있지. (83-84)


 


마취의 과학 NoSmoking

마취의 과학 
스와 구니오 지음, 손영수 옮김/전파과학사

 

마취 상태는 일종의 약물 중독이다. 이 지식과 임상 경험을 이용하여, 마취 의사는 약물 중독 치료의 전문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9/306, 머리말)


중독을 따라오다 보니 마취까지 왔다. 의식이 떠났다 돌아오는 현상 정말 신비롭다. 한 번 수면마취+수술 받은 적 있다. 내 의식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어찌나 겁이 나던지, 수술 자체보다 마취된다는 게 더 무서웠다. (술꾼은 마취가 잘 되지 않는다던데;) 수술 중 깨어나면 어쩌지, 아니면 영원히 깨지 않으면 어쩌지 등. 유서 또한 한 번 써봤는데 그때였다. (술꾼임에도) 다행히 마취 잘 됐고 잘 깨어났고 깨어나서는 안도해서 울었고 (유서는 버렸고) 보시다시피 지금 이러고 있다. 마취과학 정말 대단하다. 고통을 경감해주는 고마운 의학이자 외과수술을 획기적으로 바꾼 분야다. 술꾼 마취가 궁금할 분들을 위해 확실히 하자면,


우선 일반적으로 정맥 마취약은 술꾼에게서 가벼운 내성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술꾼에게는 마취를 시작할 때 마취약이 약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흡입 마취약의 작용과 술꾼인 것과는 관계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75/306)


그렇지만 술꾼은 간장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수술에서 출혈을 하기 쉽고, 시술 후에는 상처가 낫기 어려우며 폐렴 등의 합병증이 일어나기 쉽다’(75/306)고. 수술 전 1개월 동안은 술을 끊으라는 충고가 덧붙었다. 또한 지금 생각나는데 손톱에 매니큐어 칠해 있다면 지우고 오라는 지시가 있었다.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으나 아마 수술 중 색깔을 잘 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혈액에 산소가 모자랄 경우 자줏빛을 띠게 되는 청색병은 입술과 손톱에서 관찰 가능하기 때문이다.


흡입마취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기(笑氣, 아산화질소)는 1777년 프리스틀리(J. Priestley 1733~1804)가 발견했다고 한다. 프리스틀리는 <과학자들 3>에서 만났던 목사+화학자라 반가웠다. 산소만 발견한 줄 알았더니 웃음가스도 발견했잖아. (ㅎㅎ) 이후 소기의 마취 작용을 알아낸 사람은 1800년 데이비(H. Davy 1778~1829). 1818년에는 패러데이(M. Faraday 1791~1867)가 에테르에도 마취 작용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폭발의 위험이 염려될 정도로 잘 연소하는 성질 때문에 마취약으로는 쓰이지 않게 되었다.


통증의학도 마취과학의 하부 분과로 포함된 만큼 페인 클리닉에 관한 얘기도 이어진다. 예전에 턱관절장애로 고생할 때 인터넷 검색하다가 알게 된 신경 치료(?)가 그것이었나 보다. 신경 블록(block). 당시에는 무서워서 못 했는데 저자가 설명하기를, ‘신경 블록은 통증이 일어나고 있는 부위에 연결되는 신경을 마비시켜 통증을 제거하고 동시에 근육의 이상 수축을 없애 피의 흐름을 좋게 함으로써 효과를 나타낸다.’(264-265/306) 마취과학도 아직 많은 부분 더 밝힐 게 있다지만 턱관절장애 또한 내게는 미스터리다. (대마초에 턱관절장애 치료 효능이 있다. 그걸로 치료한 건 아니다. 처방 받은 약물에 신경안정제가 포함되어 있긴 했다)


환자의 호흡, 혈액, 산소량 등 마취의가 살펴봐야 하는 사항, 그에 관계된 기기들 변천사, 저자가 겪었던 일화도 간간이 소개한다. 약간은 산만한가 싶은 느낌과 예스러움도 없지 않아 서지정보를 보니 초판발행이 1993년이다. 최신 마취과학 책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내가 마취되어 누워 있을 때 (그렇다, 포크너) 누군가 나를 보살피고 있었을까. 흡입+전신마취 아니고 수면마취 따위는 그런 거 없나? 모르겠다. 아무튼 마취로 의식이 사라졌다 돌아온 경험은, ‘술이 깰 때까지 자시오’ 식 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극적이었다.


당신은 아마 그 사람들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그들이 활동할 때는 당신이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수술을 하는 동안 당신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심전도를 감시하고, 호흡을 도와주며 체온이 내려가지 않도록 연구를 계속한다. 이 작업이 ‘마취’다. 나는 이 마취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8/306, 머리말)



마취의 과학 + 과학자들 3 (108-109)

 


금지의 작은 역사 Smoking

금지의 작은 역사 
김성환 외 지음, 인문학협동조합 기획/천년의상상

 

이 책에 묶은 글들은 우선, 한국에서 금지 또는 금기시되는 여러 가지 사상·풍속·사생활 영역의 것들의 역사와 그를 둘러싼 규범과 문화정치를 살피고자 한 것입니다. 그것들은 물론 ‘현재’에도 살아 있는 것이어서 문제적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의 자유와 다양성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곧 우리가 누리는 ‘자유 민주주의’의 양과 질에 대한 점검이며 동시에 ‘평등’의 수준에 대한 평가도 됩니다. 억압이란 모두에게 똑같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고, 금기는 항상 특정한 젠더나 계급을 배제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여는 글 중)


취지는 좋은데 몇몇 꼭지는 지독하게 안 읽힌다. 저자 이름으로 다섯 명이 적혔으나 꼭지별 글쓴이 명시는 없다. 몇 십 년 전과 같은 금서 시대도 아니고 엄연한 출판사에서 펴내고 판매하는 신간인데 별스럽다. 개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문체이기는 하다. (재미없게 쓰였다) 신문에 연재했던 꼭지들이라니 나로선 이미 각오한 게 있었다. 따옴표 남발. 여는 글 발췌문만 해도 현재! 자유 민주주의! 평등!이란다. (느낌표는 따옴표 오마주임) 글 잘 쓰는 저자 책들을 바로 전에 읽어서였을까. (눈 버린 셈) 덮었다가 폈다가 띄엄띄엄 퐁당퐁당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금지의 작은 역사>는 어차피 ‘금지를 금지한다’는 슬로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인가? 나이다.) 볼 거니 독자 유혹하기를 포기한 게 아닐까. 그래, 어차피 그렇다면…… 17장 대마초 꼭지로 직행한다.


불과 47년 전인 1970년만 해도, 대마초가 이 땅에서 금지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는 잊곤 한다. 대마초는 농촌의 상비약으로 누구나 조금씩은 복용하는 약재였다. 재미로 즐긴 것도 아니고 단지 담뱃값이 아까워 대마 잎을 대체재로 삼아 피우는 수준이었다. 대마는 농촌의 소박하고 가난한 풍경 속에 놓여 삶과 공존하고 있었다. (251)


내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부였을 무렵은 그랬겠구나. 이웃들과 밭에 앉아 대마 잎을 피우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모습이 평화롭도다. 이후 주한 미군 병사들이 ‘해피스모크’를 알아채고 남용하고 퍼뜨리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들의 탈선을 막기 위해 주한 미군이 한국 보건사회부에 단속법 제정을 촉구했다는 얘기. 이후, 차례로 습관성 의약품 관리법, 대마관리법이 생긴다. TV 뉴스에서 수갑으로 줄줄이 엮인 유독 연예인 모습은 우리가 잘 기억하는 바다.


단속법 이전 주한 미군이 일으켰다는 문제는 대마초 환각으로 인한 게 아니다. 돈을 구하기 위한 절도나 시비였다. 대마초는 흥분제와는 달리 긴장을 이완하여 사람을 나른하고 유순하게 한다.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고 덜 해롭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의약품으로서의 효능도 많다. 여러 나라가 대마초를 합법화하는 추세다. 특이하게 중국은 대마초가 불법이나 대마 연구는 활발하여 관련 특허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단다.


대마의 여러 쓰임새와 의료적 효용은 <의료용 대마초, 왜 합법화해야 하는가?>에서 잘 볼 수 있다. 모르면 무서워하고 무서워하면 혐오하고 혐오하면 폭력적이게 된다고 <의료용 대마초>에서도 역설하는 바. ‘대마 혁명의 시대’(254)라고까지 일컫는 지금 우리도 대마의 무궁한 가능성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강력한 합성 마약과 뭉뚱그려 대마를 악마시하는 건 아무리 봐도 불합리하다. 딱딱한 이 책에서 명문장 하나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약의 권리를 국가에 뺏긴 이후부터 우리는 대마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253) 대마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금지, 금기의 역기능일 터다.




쓰기의 말들+나는 왜 이렇게 우울+셰익스피어+익명의 독서 NoSmoking

쓰기의 말들 
은유 지음/유유

읽는 족족 독후감이랍시고 글을 써대던 때가 있었다. 상금이나 상품으로 보상을 받는 경우가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숙제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재미있으니까. 쾌락주의자로서 당연했다. 어쩌다 재미가 없어져 쓰지 않고 읽기만 했다. 안 써도 되던데. 좋이 되는데, 쓸 때보다 더 재미가 없는 게 함정이다. 쓰러 왔다. <쓰기의 말들>이다. 


쓸 수도 없고 안 쓸 수도 없는 딜레마에 놓인 한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한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87/335)


글쟁이가 아니어서 고통이라고까지는 못 하겠고 고통을 ‘노잼’과 바꿔 읽으니 내게는 맞갖다. 쓰지 않고 읽기만 하는 동안 배운 게 있다. 읽은 게 금세 휘발한다. 빌린 책을 잘 못 읽는 주제에, 사 읽은 책임에도 내 책 같지가 않아진다. 감흥이 없었다면 ‘감흥이 없다, 왜냐하면 어쩌구저쩌구’ 써야 비로소 내 책이 됨을... 너무 당연해서 부연하고 싶지도 않다. 대신 은유 작가가 인용해준 이오덕 선생의 문장을 옮겨놓으련다.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153/335)


사실은 이런 글을 쓸까봐 겁이 났던 것도 같다. 알라딘 서재에 ‘좋아요’질을 하면서 좋은 글 나쁜 글 이상한 글 많이 봤다. 좋은 글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상하고 재미난 글에도 감탄했다. 글 구경은 재미있고 남 글의 단점도 간혹은 보이는데 내 글 단점은 나도 몰라서 또 ‘나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쓰기의 말들은 읽기의 말들이기도 하여서 실용서이기도 하고, 향유하여 좋은 예술서이기도 하다. 자소서 첫줄에 ‘글 쓰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이의 내공을 보라. 은유 작가 글 정말 잘 쓰신다. 커피로 치자면 ‘바디감’도 있고. 입안에 가만 머금어 보다가, 글 잘 쓰는 사람이 또 있었지, 떠올렸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지음/포도밭출판사
 

표지 글쓴이 이름 밑에 ‘리뷰소설’이라고 쓰여 있다. 리뷰가 주를 이룬 가운데, 형식으로 소설을 빌려온 모양새 되겠다. 전작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 짧은 소설이 등장하였던 것과 비슷하다. 저번 작품이 교정 원고를 매개로 한 사건이었다면 이번엔 저자가 우연히 엿들은 옆 테이블 커플의 대화가 주조다. 장기 적출+뜻밖의 셰익스피어. 그런데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왜 읽어도 읽어도 자꾸 잊어버리는지? 김정선 작가도 그래서 기록을 남긴 게 아닐까.

가령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주어’의 성벽에 갇혀 신음하는 ‘나’를 보여주기도 하고, 『헨리 4세』를 통해서는 ‘주어’를 속임으로써 ‘주어’ 안에 분명한 자리를 만드는 ‘나’를 그려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리어 왕』이 ‘나’를 질투한 ‘주어’의 비극이라면, 『오셀로』는 ‘주어’를 질투한 ‘나’의 비극이고, 『맥베스』는 ‘주어’를 죽인 ‘나’의 분열이 아닌가. (57)


음. 그랬나. 다른 걸 발췌할 걸 그랬다.


다만 한 가지 깨달은 건 있다. ‘행복’은 ‘사랑’과 달라서 내가 온전히 주도할 수 없다는 것. ‘사랑하다’는 동사여서 주어인 내가 그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을 온전히 주재할 수 있지만, ‘행복하다’는 형용사여서 주어인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나는 다만 그 ‘행복한’ 형용, 즉 행복한 그림 안에 들어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그렇지 않을 땐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사랑과 달리 행복은 내가 추구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상태를 누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것. (196)


문장 전문가 아니랄까봐. 동사 형용사 따져주는 거 반갑고요. 서평을 품은 소설 형식 나는 좋은데. 쓰는 사람(소설)은 읽는 사람(서평)이기도 하니까. 특화해서 다른 거장들 작품을 품은 리뷰소설 계속 써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다음에 어떤 글을 들고 찾아와도 내겐 글 잘 쓰는 사람, 김정선 작가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는 <베니스의 상인> 첫 문장이자 안토니오의 대사다. 셰익스피어는 읽어도 읽어도 자꾸 잊어버린다고 얘기했던가?



셰익스피어를 읽자 
한기정 지음/엑스북스(xbooks)

 

셰익스피어 애호가가 썼단다. 전공자가 애호가를 따라가기 힘든 지점 있음을 안다. 좋아서 썼다는 만큼 흥이…… 있나? 반쯤 읽다가 말아서 단정하지 못하겠다. 다만 메타북은 원작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말 그대로 ‘셰익스피어를 읽자’다. 맛만 보자면 이런 문장들이다.


존 왕은 군주로서, 주인공으로서 매력이 없다는 점이 이 작품의 인기가 적은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덧없는 것이라는 것, 권력이란 좋은 정치로 이어질 때만 존경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필립이 부주인공으로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지만,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것은 개인의 매력이나 맹점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정치라는 거울을 통해서 인간성을 탐구하고 관찰한다. (159)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사계절


독후감을 쓰지 않고 몰래 읽던 기간에 또 만난 셰익스피어가 있어 묶어 놓는다. 기대하기로는 책 읽는, 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아니 독서중독자 모임이 뭐 이래. 비밀경찰이나 스파이라고라고라고. 황당무계한 가운데 셰익스피어 연극이 대단원을 이룬다. 셰익스피어 희곡들 한 줄 요약은 멋져서 이렇다. ‘판단력이 흐려진 노인네 이야기’(리어왕) ‘질투에 눈먼 중년 아저씨 이야기’(오셀로) ‘우유부단한 유학파 왕자님 이야기’(햄릿)(240). 그 외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는 4차원이다. (또는, 3차원적 중독 ‘병맛’이 모자라거나.) 책지름 허영심에 위안을 주는 컷을 마지막으로 끝.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강유원,『책과 세계』(9)

 


7알라딘2 술이깰때까지자시오

 

독후감을 안 쓰니 (왜지?) 책 지름 기록이라도 쓴다. 알라딘 상자 완충재로 오늘은 비닐공기주머니 들어 있었음. 힝! 마음이 다쳤으므로 구급함이 두 개, 여름담요와 (술)잔이 왔다. 어제는 아래 대화가 오갔고 (정선생 몰래 올리.. 쉿.) 결과물은 저 ‘20’ 봉지다. 콜드소주브루에 두부모서리를 읽고 있다.


  


7알라딘1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새달이 시작하자마자 버릇처럼 간단히 첫 주문을 넣었다. 자정이 거의 다 돼서 도착+언박싱... 그런데 엇. 알라딘이 달라졌다! 완충재가 비닐뽁뽁이 아니고 종이야. 무지 감동스럽다. 온 책과도 어쩐지 어울려 버리고. 계속 이러는 건지 아닌지 내일 또 주문해봐야겠어. 알라딘 더 좋아지려는데? 중고매장 할인멤버십 럭키백은 한도 5만원으로 줄었지만.ㅜㅜ


140자 소설 Smoking

140자 소설 
곽재식 지음, 방아깨비 그림/구픽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생각에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 번이라도 이겨 보려고, 일부러 시큰둥한 척한다.
그녀는 점점 더 실망하더니 나를 아예 떠나 버린다.
괜히 좋은 걸 봐도 표정이, 기분이, 이상하게
시큰둥한 버릇만 평생 남았다. (075)



말 그대로 짤막짤막한 이야기가 99편 실렸다. 시시한가 싶으면서도 인간적이고 따뜻하다. 긴 이야기가 읽히지 않을 때 손에 들면 좋은 친구가 되어줄 듯. 금세 읽혀 아쉽다면 스스로 짧은 소설을 써 봐도 좋겠다. 옳거니, 당장 시도.


왼쪽 옆구리, 갈비뼈 4번 정도 지점에 종기가 났다. 날이 갈수록 크게 곪더니 뜨끈뜨끈 존재감을 과시하며 아팠다. 마침 김소인이 내 집에 왔을 때, 샤워하려고 같이 옷을 벗던 참에, 이렇게 말해 보았다. “너 이것 좀 짜줘라.” 한번 슥 보더니 김소인이 말한다. “앗, 징그러.” 김소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그때 알았다. 이후 종기는 조금 더 건재하다가 어느 순간 제풀에 꺾여 사그라들더니 조그마한 뾰루지로 남았다. 고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안으로 들어갔나 보다. 칼처럼. 왼쪽 갈비뼈 4번 정도 지점.


이렇게 칼을 품은 사람이 됐다는 호러... 한편, 일러스트 그린이가 방아깨비 님이다. 에고 반가워라.



세뿔돼지 아니, 공룡의 생태 NoSmoking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갈로아 지음/한빛비즈
 

작가의 덕질이 곤충에만 한정된 줄 알았더니 이번엔 공룡이잖아. 김도윤 표 ‘병맛’을 은근히 즐겼던 터라 공룡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예약 주문했다.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 깜짝 선물 받은 느낌이다. 그림 좋고, 내용 좋고, (실례) B급 아니라 A급 마냥 아주 멀쩡한데. 아마도 전작에서 터져 나왔던 ‘아이에게 권하지 못하겠어요’ 리뷰들을 감안한 듯싶다. (변태 독자로선 실망; 모자란 병맛은 함께 온 <세뿔돼지>가 채워준다!)


새를 제외하고 6천 600만 년 전 멸종한 종의 외양이 매순간 조금씩 조금씩 보정된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어릴 적 내가 읽었던 공룡 책을 지금 조카에게 물려주는 건 매우 근사한 일일 터이나 자칫 ‘구식’ 정보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다른 분야도 왜 그렇지 않겠느냐만 특히 과학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 밝혀지는 게 많아 과학 신간 끊을 수가 없다. 변화를 알아가는 기쁨, 사는 기쁨이다. 공룡 새 책 나오기 전까진 그래, 이 책.


오늘도 우리는 새롭게 발견되는 화석과 최신 실험 기법을 통해 공룡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가고 있다. 뼈 화석을 잘라 뼈조직을 검사해 성장 정도와 나이 등을 알아내기도 하고 두개골을 CT 촬영해 공룡의 뇌를 연구하고 동위원소 분석으로 체온도 알아내며 주사전자현미경을 통해 공룡의 색까지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듯 공룡 연구의 역사를 통틀어 복원되는 공룡의 모습은 계속 바뀌어왔으며 그 과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나올 공룡 연구 역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듯이 새로운 모습의 공룡을 계속 보여줄 것이다. (274-276)


표지 열면서 앗 깜짝이야 했음. 사인본 몇 부인지는 모르지만 작가님 퍽 고되셨을 듯.


1 2 3 4 5 6 7 8 9 10 다음


moon

CURRENT MOON

뉴스타파

알라딘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