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힘 NoSmoking

SF의 힘 - 8점
고장원 지음/추수밭(청림출판)


렘은 기존의 영미권 외계인 이야기들이 대부분 천편일률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앞서 예시한 3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밖에 생각하지 못한다면서 자신이 생각한 새로운 유형을 하나 추가로 제시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4. 인류와 외계 지성이 조우했을 때 서로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거나,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상호 의견교환이 불가능한 경우. (277)


<솔라리스>는 소더버그 버전과 타르코프스키 버전 영화를 다 보았으나(기억은 다른 문제) 정작 책으로는 읽지 못했다. 스타니스와프 렘 번역서 모두가 품절/절판인 형편에서 늘 이런 메타북에서만 보게 되니 안타까움과 조바심이 더하다. 어쨌거나 인류가 외계 지성을 만났을 때 유형이 1.협력+평화 2.우주전쟁+인류승 3.우주전쟁+외계인승(272)의 빤한 카테고리에 묶이지 않는 상호 무관심을 제시한 ‘쿨함’이 인상적이다. ‘(렘은) 주인공 일행이 미지의 존재를 진정으로 이해할 국면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인간이 우주 속의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해주는 무력감뿐이다.’(275) 기기묘묘한 분위기만 어렴풋 기억에 남아 있는 <솔라리스>가 활자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척 궁금하다. 몇 년째 보관함에 들어 있는 표지들, 빛 좀 쐬자.


 


아시모프가 <파운데이션> 시리즈에 외계인을 하나도 등장시키지 않은 이유와 뒷이야기 재미있었고, <슈퍼맨>을 왜 ‘SF의 힘’에서 읽고 있어야 하지? 했다가, 과학소설과 판타지소설을 구분 짓는 설명에는 밑줄 그었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스타워즈>의 단순한 선악 이분법 구조와 ‘선택받은 자’ 설정이 SF보다 판타지에 가깝다는 얘기에는 완전 끄덕끄덕. 인공지능, 유전공학, 우주개발, 세계화, 세계의 종말, 다른 존재, 금기의 위반, 유예된 죽음, 극단적 상상, 현대의 신화가 10개의 장을 이룬다. 부제는 ‘미래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대담한 통찰.’ 대담한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롭게 잘 읽히는 양서. 보관함도 살짝 불었다. 추석 연휴 중에 읽었는데 리뷰를 이제야 쓰려니 역부족이다; 급끝.


일반적으로 SF영화의 뿌리이자 곧잘 영감을 주는 원천 콘텐츠인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은 ‘변화의 문학’이라 일컬어진다. 이유는 명쾌하다. 과학소설은 과학기술이 사회와 문명 그리고 나아가서는 인간 자신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를 살피는 ‘가치전복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 반면 판타지는 과거의 질서를 다시 복원시키려는 소망이 담긴 이야기literature of longing다. (399)


 

하숙인 Smoking

하숙인 - 8점
마리 벨록 로운즈 지음, 박선경 옮김/현인


“형편없는 작품은 싫고, 재미있으면서도 괜찮은 작품을 읽고 싶다면, 마리 벨록 로운즈의 소설을 한번 읽어 봐.”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거트루드 스타인 여사가 헤밍웨이에게 했다는 말이다. 마리 벨록 로운즈는 작품을 여러 개 남긴 모양이나 우리 번역본으로는 『하숙인』이 유일하다. 잭 더 리퍼를 소재로 한 살인 미스터리. 긴장감이나 박력은 없어도 느릿느릿 예스러움이 정취 있다. 간간이 등장하는 영화 스틸컷의 도움인지, 무성영화에서 흐름직한 배경음악이 들리는 듯도 하다.


엉뚱하지만, 알아두면 쓸모 있을지도 모를 사항으로는 이런 거.

1기니=21실링
1파운드=20실링
1실링=12펜스

덧붙여서 알게 된, 더 엉뚱한 것도 있어서.

1/2파운드=10실링=120펜스
1/4파운드=5실링=60펜스
그렇다면 1/3파운드는? 6.66666...실링=80펜스


1/3파운드 때문에 생긴 숙어가 ‘at six and seven’이란다. 6실링이냐 7실링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즉 ‘혼란스럽다’는 의미.  『하숙인』은 혼란스럽지 않고 하숙비를 통 크게 내는 손님과, 생활고에 찌든 주인부부의 불안함이 이야기를 이룬다. 부인의 묘한 처신이 이상하게 이해가 된다. 히치콕이 원했다는 결말(표지문구)에도 정감이 가고. 속도감과 선정성에 있어서야 요즘 추리물에 못 미치겠지만 헤밍웨이가 남긴 독후감을 공유하는 기쁨이 있다.


이 책들은 오후에 읽기에 좋았다. 등장인물들도 그럴듯했고, 그들의 행동이나 그들이 느끼는 공포 역시 과장된 것 같지 않았다. 벨록 로운즈의 작품이 내가 하루의 작업을 끝내고 읽기에 완벽한 것 같아서, 나는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 외에도 많았으나 내가 처음에 읽었던 두 권이 가장 좋았고, 조르주 심농의 책들이 출간되기 전에는 밤이고 낮이고 한가한 시간에 읽기에 그보다 더 좋은 책을 찾을 수 없었다.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1002: 상그리아도 아니면서 술이깰때까지자시오


밤 슈퍼마켓. 맛없는 둘이 만나



덜 맛없는 뭔가가 됨.




임시 빨간 날 연휴 폐인들을 찬양함.


 


바다와 독약 Smoking

바다와 독약 - 10점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창비

 

“뭘 하든 똑같으니까. 모두가 죽어가는 시대 아이가.” (76)


일본문학에서 만나는 경상도 사투리 멋쩍기도 하지. 칸사이 사투리를 옮긴 거라는데 번역에 애로가 있기도 했겠다. 모두가 죽어가는 시대, 2차 세계대전 말 일본 한 대학에서 행한 생체 실험 및 해부 사건을 직접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개인이 자기 자리에서 ‘뭘 하든 똑같’지는 않음을 다시금 배운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 처벌만을 무서워하는 기계적인 순종이, 다름 아니라 전범국의 거대 악을 만들어왔음이다.


처벌이나 명령 또는 운명일지라도, ‘그런 무언가로부터 해방해주는’(86) 게 꼭 신일 필요는 없을 터다. 양심, 지성, 인간성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많지 않은 등장인물과 짧은 분량으로도 전쟁 말기와 종전 직후 일본 분위기를 잘 볼 수 있다. 황폐하고 피로하고, 그럼에도 아이는 태어나고 먼지 풀풀 날리며 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출세욕과 눈치 보기, 권력다툼은 항존한다. 물론, 양심의 목소리도. 전범국이 다시 서는 자리에 꼭 있어야 할 반성과 양심 말이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이런 수기를 쓰는 이유는 왠지 무섭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목이나 사회의 벌만을 두려워하고, 그것이 제거되면 두려움마저 사라지는 자신이 어쩐지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136)


 

화성 연대기 Smoking

화성 연대기 - 8점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샘터사


《화성의 타임슬립》(1964, 필립 K. 딕)에서 보았고, <화성의 왕궁에서>(1970년대, 《캔자스의 유령》, 존 발리)에서 보았고, 《마션》(2014, 앤디 위어)에서 보았고, 논픽션《화성 이주 프로젝트》(2015, 스티븐 L. 퍼트라넥)에서 보았고, 또 멀리서는 《공룡과 춤을》(1994, 로버트 J. 소여)에서도 보았다. 화성 말이다. 이중 어떤 것도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와 닮지 않았다. 어쩌면 브래드버리가 SF에서 독보적이랄 수도 있겠는 나열이다. 소박한 과학에 판타지 가득. 꿈과 위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독과 우울.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한 오마주가 등장하는 걸로 보아 ‘우울과 몽상’이라고 해도 되겠다. 오늘 포털 다음에 <머니투데이>발 기사. ‘머스크, 7년 후 화성 간다.’ 머스크의 화성은 또 어떻게 다를까. 이것이야말로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의 프리퀄이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말했듯,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편집 《멜랑콜리의 묘약》, 《온 여름을 이 하루에》가 아작 출판사 새 옷인데-미안하지만-헌옷 같은-표지를 입고 나온 상황에서야 비로소 브래드버리 대표작을 읽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맨》과 무관하지 않은 단편이 간간이 끼어 있어 반가운 마음이 더하다. 예컨대 《화성 연대기》<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는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역지사지>의 전(前) 이야기로 읽힌다. <역지사지>에서 화성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흑인들이 그려진다면, 그들이 지구를 떠나는 모습이 <하늘 한가운데 난 길로>다. 흑인들이 정착한 화성 <역지사지>에서 흑인을 여성으로만 바꾸면 《혁명하는 여자들》 표제작 조안나 러스의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와 거의 같다. 그러니까 브래드버리 역시 현실 고발이나 풍자를 SF 안에 다분히 담고 있다는 얘기이겠다. 과학소설이든 환상소설이든 좋은 문학은 현실, 지구, 인간을 반추하게 한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 작품이라면 《화성 연대기》에선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인데, 이 역시 참으로 좋다. ‘인간 이후’랄까, 사람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홀로 남은 집 한 채와 집을 이루는 기계, 로봇들의 변함없는 일상만으로도 우수가 뚝뚝 듣는다. 아 외로워. 박상준 대표의 탁월한 추천사가 책 앞을 장식하고 있어 덧붙일 말은 더 없다. 다만 7년이 흘렀고 그 사이 브래드버리 작가는 명을 달리했다. 한 우주가 소멸했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을 돌고 있다는 ‘9766 브래드버리 소행성’(5)보다, 오히려 화성에 가면 브래드버리 옹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이가 그린 화성처럼, 그이가 남긴 작품처럼. 머스크 팀이 가져올 ‘화성 연대기’ 기대해본다. 새 옷인데-미안하지만-헌옷 같은-표지를 한 두 단편집까지 갖고 싶게 됐다. 제목부터 멋져. 이미 보관함에 들었다.


“나는 항상 화성인이 보고 싶었어요. 화성인 어디 있어요, 아빠?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저기 있다.”
아빠는 마이클을 어깨에 태우고는 똑바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 화성인들이 있었다. 티머시의 몸이 살짝 떨렸다.
화성인들이 거기에, 운하에, 물에 비치고 있었다. 티머시, 마이클, 로버트, 엄마 그리고 아빠.
화성인들이 티머시네 가족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물에서 아주 오랫동안 말없이……. (398-399, <2026년 10월, 백만 년짜리 소풍>)


 

목수의 연필 Smoking

목수의 연필 
마누엘 리바스 지음, 정창 옮김/들녘


교도소 수감자들과 감시병만으로 풀어내는 스페인 내전. 전쟁 속에서도 개인이, 감정이 있었음을 환기하기에는 문학만한 것도 없지 싶다. 잘 쓰인 역사서가 문학과도 같은 감동을 주는 건 그런 의미에서이겠다. 역사를 얘기하는 문학-픽션이 큰 울림과 힘을 보여주는 사례. 개인이 있었다함은, 신념과 사상 뿐 아니라 사랑과 질투 또한 역사를 이루는 원동력이라는 점 아닐까. 먹느냐 먹히느냐, 승자냐 패자냐, 하는 나눔 이전에 정의냐 부정의냐, 양심을 따랐느냐 아니냐를 먼저 물어야하지 않을지 질문해 볼 수도 있겠고. 예컨대 파시즘을 겪은 시절 환상통, 묻고 또 물어야 할 역사라면.
 

자선병원에서 환상통을 연구한 적이 있었대. 모든 통증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통증,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 자신이 겪은 통증에 대한 아픈 기억에서 나오는 통증이라더군. 헌데 그건 왜 묻나? (133)


 

제비뽑기 Smoking

제비뽑기 - 10점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엘릭시르


참고로 『제비뽑기』는 출간될 때마다 제목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그중 하나가 『제비뽑기-제임스 해리스의 모험The Lottery: Or, the Adventures of James Harris』이다.  (425-426, 해설)


‘제임스 해리스의 모험’이 부제로 들어갔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25개 단편들을 관통하는 악이랄지, 불안, 편견, 위선, 무지, 이기심 같은 어두운 이면을 상징하는 이름이자 매우 근사한 장치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기 때문이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서처럼 단편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문신 사나이의 역할 비슷하게. 물론 브래드버리의 작품들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서로 묶어줄 필요가 있었겠고 셜리 잭슨 단편들은 그보다 은밀하나 훨씬 촘촘한 관계망을 가진 작품들이기는 하다.


제임스 해리스는 누구인가. 스코틀랜드 옛 시(詩)에 등장하는 유령 신랑, 악마 연인이란다. 조용하고 완벽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커플, 가정, 마을, 도시가 셜리 잭슨의 현미경 아래 놓이니 어김없이 제임스 혹은 짐, 지미, 즉 악이 보인다. 다 읽고 나니 남는 이미지, 가식적인 미소다. 그 왜, 백화점 점원이나 사교계 인사들이 얼굴에 걸고 있을 법한 표정 있잖은가. 벽 쪽으로 잠깐 돌리는 얼굴에선 경련이 인다는 사실.


위선 아래 숨은 악을 드러내 보여주는 셜리 잭슨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하나만 읽었을 때는 이이를 왜 ‘마녀의 빗자루로 글을 쓰는 작가’라고 불렀는지 몰랐다. 이제는 인정한다. 천재성의 다른 말로밖에 볼 수 없는 마녀다. 또한 이런 마녀라면 사랑하련다. 전작하려니 아쉽거나 손쉽게도, 세 권밖에 없다. 내게는 <힐 하우스의 유령> 하나 남은 셈이다.


“내가 보기에는…….” 하트 부인은 다시 말을 시작했으나 두려움이 순식간에 덮쳐왔다. 친절한 이웃들이 겉으로는 다정하게 굴면서 속으로는 그녀를 예의 주시하는 것일까? 커튼 뒤에서 몰래 빌을 살펴보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 대해 떠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절망적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거예요.” (351,「커다란 신발을 신은 남자들」)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NoSmoking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조승원 지음/다람


준비물은 이렇다. 술과 유튜브. 책을 읽고 나니 술 취한 정신에 음악이 맴돈다. 눈으로만 읽지 말고 귀와 입이 같이 즐겨야 좋을 책. 꽂힐 장소로 도서관보다는 술집이 어울릴 책. 거의 매일 자가 약물투여하는 나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는 책. 후두염에 걸린 주제에(도) 새벽까지 기네스를 들이켠 리암 갤러거에게 <더 선> 잡지가 비꼬며 했다는 말이 ‘자가 약물치료’(39)다. 술꾼으로서 반가운 단어인데, 존 디디온이 <푸른 밤>에서 ‘자가 약물투여’라고 한 적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단어 들이 있다. 부류를 알아보겠는 표식 들. 책 제목을 차지하는 위로, 탐닉이라는 단어 말고도 앞서 언급한 자가 약물투여, 그리고 캐롤라인 냅이 <드링킹>에서 아프고 멋지게 표현한 갑옷, 그이 친구 게일 캘드웰이 묘사한 가슴 속 빈방 같은 말. 아, 나와 같은 편이로구나 하게 된다. 캐롤라인 냅이 일찍이 쓴 바와 같이 ‘술꾼 들은 서로 알아본다.’ 하여, 동류를 확인하고 술주정을 구경하고 그 틈에서 빚어진 소중한 선물, 음악을 들으면 되겠다. 오늘 내 약물은 포도주다. 포도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빨갛거나 하얀? 아니아니.


밥 딜런이 어색해하자,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어떤 술을 마시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밥 딜런은 주저하지 않고
“싸구려 와인(cheap wine)”이라고 답했다. (64)


스팅은 드레싱 룸에 ‘풀 바디 레드 와인Full Bodied Red Wine’을 갖다 놓아 달라며 프랑스나 이탈리아, 캘리포니아 혹은 스페인 리오하Rioja에서 생산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부탁했다. 또 대기실 응접실에는 풀 바디 레드 와인과 ‘품질 좋은’ 샴페인(good quality champagne), ‘품질 좋은’ 화이트 와인(good quality white wine)을 마련해 달라고 하면서 맨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당부를 적어 놨다.
“싸구려 와인은 안 됩니다.” (149-150)


싸구려 포도주와 고급 포도주 말이다. 스팅을 좋아하지만 술친구로서는 주눅 들 위험이 있겠다. 추천사에서 김구라 씨가 ‘‘밥 딜런’과 한잔하고 싶어진다’(뒤표지)고 했을 때는 혹시 나와 같은 이유였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아무튼. 싸구려 포도주 좋아한다. (품질 좋은 고급 포도주는 더 좋아한다) 술 취향에서는 스팅이나 여러 힙합 가수 들(고급 샴페인)과 공유하지 못하겠어서 아쉽다만. 음악은 들을 수 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고. 땡크유튜브.



오아시스, 밥 딜런, 존 레논, 이글스, 미카, 스팅, 재니스 조플린, 오지 오스본, 머틀리 크루, 제이지, 레이디 가가 등 폭음하는 뮤지션 들과 그로 인해 발생한 사건 이모저모+귀가 호강하는 술 음악 들을 소개받는다. 기자답게 자료 조사에 충실했다니 고맙게 읽는다. 다만 문장에 왜 이리 작은따옴표가 많은지. 요즘 신문 잡지 인터넷 기사와 헤드라인에서 어이없이 달고 나오는 따옴표 남용습관이 단행본에서도 보이니 이건 뭔가 싶다. ‘기자다운’ 글쓰기?


뮤지션 라인업에서 누군가 빠진 듯한데, 싶었던 사람. 맨 마지막에 간결하게 등장하시더라. 안 나왔으면 대단히 섭섭했을 톰 웨이츠다. 왜인가 했더니 ‘30년 넘게 금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311) 때문인가 보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이생진)가 아니라 피아노가 취하고. 딸꾹.



https://www.youtube.com/watch?v=pJrMuhgNjOg



그해, 여름 손님 혹은 Call Me by Your Name Smoking

그해, 여름 손님 - 8점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잔(도서출판)

 

그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의 후회도 없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감히 헤아려 보지도 못했고 끝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았지만 굳이 이정표를 살펴보고 싶지 않았다. (…) 내가 나중에 이 시간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훨씬 더 잘 살 수도 있지만, 그 시절 내 방에서 보낸 오후마다 내가 순간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 (201-202)


여름이 끝나기 전에 읽으려 했고 거의 그리 되었다. 회상 형식의 문장에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계절상으로 여름이자 인생 여정에서 여름날이랄 수 있을 17세에 겪는 뜨거운 사랑. 이탈리아 해변, 휴가, 지적이고 열린 엘리트 부모, 손님들, 여름. 사랑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배경이다. 그러니 자, 사랑이 올 때다.


그가 내 반바지를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사이프러스 길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까지 누가 내 옷을 입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그 행위에 육체적이면서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가까이 있는 것도 모자라 서로가 되고 싶다고 서투르게 말하는 방법이라고. 그래서 내가 내가 되는 것. 나 때문에 그가 그가 되는 것. (…) 이식 수술 후 타인의 심장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 준다. (178)


그리고 갈 때.


“뭐 하고 있었어요?”
“생각.”
“무슨?”
“이것저것.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랑 가을 학기에 가르칠 수업. 책. 너.”
“나에 대해서요?”
“나에 대해서요?” 그가 놀리듯 따라 했다.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고요?”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고.”
(…)
“저기를 내다보면서…….” 그가 지평선을 가리켰다. “2주 후에는 컬럼비아로 돌아갔겠구나 생각했어.” (192-193)


제한된 시간이란 거. 그러니까, 끊어놓은 비행기표나 기차표가 있는 상황이 순간들을 더 극적이게 했던가? 아마, 무척, 매우. 절정에서 일시정지해주는 장치이기도 할 터이다. 끊어놓은 왕복표가 있을 때 무례해지는 경우는 본 적 없다. 내 ‘여름 손님’들을 생각해보아도. 함께 하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줄어든다는 압박감밖에는 받지 못했고 서로 질리거나 지루해하거나 무례해지지는 않았지 싶다. 무제한의 시간 안에서는 절정의 순간을 이어가기란 불가능함을 피차 알기 때문일까. 그 순간을 오염하지 않고 간직하느냐 아니냐가 관건이겠다.


가을을 맞은 엘리오인데, 절정을 하나도 잊지 않은 엘리오이더라. 순수하고 아름다운 느낌은 그 덕인가 보다. 아아 회상 형식의 소설은 조심해야 한다. 슬프거든.


“이 수영복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옷장을 닫으며 말했다.
“뭔데?”
“기차에서 말해 줄게요.” 그러나 지금 말해 버렸다. “나한테 저걸 주고 간다고 약속해요.”
“그게 다야?”
“오늘 계속 입고 있어요. 입고 수영하지는 말고.”
“역겨운 변태 같으니.”
“역겹고 슬픈 변태예요.”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펄럭이 셔츠도 가질래요. 에스파듀도요. 선글라스도. 그리고 당신도요.” (205-206)


당신도요. 내가 가진 당신은 정작 자유로운데 당신을 가진 내가 내게 스스로 하는 다짐인 듯. 그러니까, 당신을 가질래요, 했을 때 더 제약 받는 이는 발화자이겠고 엘리오는 충실했다. 총명한 17세는 37세에도 총명하다. 무엇보다, 기억한다. 사랑은 기억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자기와 함께 나누지 않은 올리버의 경험을 질투하는 엘리오는 그러므로, 옳다. 함께 보낸 시간 중 가장 좋았던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는 참 좋던데, “나도 로마. 나보나 광장에서 동이 틀 때까지 함께 노래 불렀을 때.”(291)라는 올리버의 답.


<Fenesta ca lucive(불 꺼진 창)>을 로마 골목길에서 술 취해 형편없는 이태리어로 함께 부르는 느낌. 무언지 잘 알겠는 나의 이 늙음. ‘<몰다우>에서 영감 받은 건가? 다시 생각해 보니 벨리니의 <몽유병 여인>에 나오는 아리아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255)한 나폴리 민요를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도 영화 <데카메론>에서 사용한 모양이다. 파솔리니 사진이 들어간 클립도 탐났지만 로베르토 무롤로 버전을 첨부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이 장면을 읽으며 듣고 있다’는 누군가의 댓글 때문이다.


어느 날 기적처럼 화가를 만나 서로 물어본다면, “도빌”이 내 답이다. 그러고 보니 탄신년 반세기 기념 해에는 정선생과 도빌 가기로 약속한 기억이 나는군.




https://www.youtube.com/watch?v=OvOVryWwajg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NoSmoking



주말에 정선생과 이태석 신부님 얘길 하다가 (교과서에 실리기 시작했단다.) “어쩜 사람이 그래?”하고 정선생이 울었다.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얼마 전 남수단 유소년 축구팀이 한국에 왔을 때 신부님 묘에서 참배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울긴 했다. (취해 있지 않았다.) 어쩜 사람이 그럴까. 희생이나 봉사라는, 시혜 어린 말보다 내가 감동하고 싶은 지점은 그 사람 자신이 누렸을 행복에 있다고, 감히 말하진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소록도의 큰 할매, 작은 할매도 보고 싶었다. 두 간호사 수녀님이 소록도에 희사한 젊음과 수고보다 그들 자신이 느낀 행복을 확인하고 싶었던 듯하다. 


“대답할 말이 없어.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한 게 없어. 환자들이랑 샅이 살면서 소록도 아주 좋았고, 간호사로서 병원 일 기쁘게 했고, 우리 진짜 행복했어요. 모두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걱정도 하지 않았어. 하루하루 그냥 열심히 살면 되니까. 그냥, 밝은 줄, 생각하면 돼요. 그걸 따라가면 하느님 부름이에요.” (287)


옳았고, 다행이고, 그래서 고맙다. 2005년 노쇠하여 일거에, 그러나 조심스럽게 소록도를 떠날 때 ‘이곳에서는 이제, 다 이루었다.’(254)고 말한 그들이어서, 먼 하늘 아래이긴 하지만 아직도 존재해주셔서. 완전히, 끝없이 주기만 한 게 아니라 그들 자신도 무언가 (이럴 때 ‘은혜’라고 하는가 보다.) 보람 같은 거 얻었으리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이웃이든 지구 반대편 사람이든 남을 위한 삶이 자신을 위한 삶이자 가치. 특히 그들이 난 자리를 이렇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는 더욱. 이태석 신부도,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정선생에게 말해줘야지. 울지 마, 톤즈+소록도+정선생.


슬픔 속에 그는 오르간을 치고 있었다. 성가의 화음들이 그의 귀를 울린다. 그 소리를 들으면 하늘나라가 상상된다. 그는 이제야 깨닫는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곁에 천사들이 다녀가셨구나……. (273)


마리안느 스퇴거 (1934~ ) 1962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
마가렛 피사렉 (1935~ ) 1966년부터 2005년까지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