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씽 NoSmoking

낫씽 - 8점
제러미 웹 엮음, 정명진 옮김/부글플러스


<뉴 사이언티스트> 게재 기사들 중 몇을 ‘낫씽’ 아래 모은 단행본인 모양이다. 수학, 화학, 물리, 생물, 의학 등을 아우른다. 그러니까 빅뱅, 진공, 절대영도 같은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당신 건강은 당신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식의 기사가 등장하더라도 놀라지 말 것. 골라 읽는 재미란 것도 있으니까. 운동하라거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식의 몇 꼭지 빼고는 흥미롭게 읽었다. 물론 운동하라거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식의 몇 꼭지까지도 흥미롭게 읽을 이 있을 터. 낫씽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글들이지만 ‘에브리씽’을 거론하는 책이다. 10억℃에서 절대영도까지, 138억 년 전부터 100조 년+ 후까지 종횡무진 과학이 펼쳐 보이는 지평. 특히 제목에 맞춤한 듯한 마지막 꼭지 ‘우주 종말의 시나리오들’은 한 편의 SF마냥 멋지다.

 
(…) 우주 팽창의 가속은 곧 우주의 대부분을 앗아갈 것이다. 점점 커지는 우주의 팽창이 다른 은하들을 우리의 시야 너머로 옮겨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은하들의 빛은 더 이상 우리에게 닿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빛이 러닝머신 위의 거북이처럼 우리의 우주 지평선 너머로 끌려 갈 것이기 때문이다. 앤아버에 있는 미시간 대학의 프레드 애덤스에 따르면, 2,000억 년 안에 다른 은하들은 모두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330-331/341, 우주 종말의 시나리오들, 스티븐 배터스바이)


 

붉은 별+우리들+10억 년 Smoking

붉은 별 - 8점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지음, 김수연 옮김/아고라


제목 ‘붉은 별’은 화성이기도 하면서, 붉은 색으로 상징되는 인민혁명을 완수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의미하기도 함이렷다. 작품집 속에「붉은 별」(1908년), 「엔지니어 메니」(1913년), 그리고 보그다노프가 급사하면서 『붉은 별』연작의 세 번째 소설이 되지 못한 채 짧은 시로 남은「지구에 좌초된 화성인」(1924년)이 실렸다. 「붉은 별」 내용이 이렇다. 지구를 탐사하러 온 화성인 무리는 화성 지구 간 중재인으로 쓸 만한 지구인을 간택한다. 러시아 수학자 레오니드다. 왜 러시아이고 왜 레오니드인가.


그곳에서는 생명의 박동이 더 거세게 뛰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미래를 보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 우리가 찾는 사람은 건강한 육체와 유연성 그리고 지적 노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지구에서 맺고 있는 관계가 적거나 없고, 가능한 한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적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5)

 

레오니드는, 지구와 비슷한 발전 과정을 거쳤지만 그보다 훨씬 일찍, 덜 과격하게 사회주의를 이룩한 화성을 견학하게 된다. 100여 년 잠들었다가 깨어나 미래 유토피아를 구경하는 『뒤돌아보며』 주인공이 전해주는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완전히 새롭다거나 상상 이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소박한 유토피아 정도라고, 내가 쓸 수 있는 건 순전히 내가 미래의 독자이기 때문일 거다. 1908년에 2018년 독자를 염두에 두기란, 음. 척력을 가진 ‘마이너스 물질’이 과학적 장치로 오면서 내용은 정치 프로파간다. 순수하고 갸륵하다.  지구(러시아) 정신병원장의 편지가 프롤로그인 점이 의미심장하다. 레오니드가 어떻게 지구로 돌아오게 되는지가 관건일 텐데, 읍읍읍읍. 


「엔지니어 메니」는 「붉은 별」 프리퀄 격이다. 「붉은 별」의 우주선 선장 화성인 메니 책상 위에 걸려있던 초상화 당사자가 엔지니어 메니다. 이름이 같다. 메니의 조상 메니. 앞선 작품에 나왔던 액자 속 인물이 빠져 나와 이번 작품에서 설치는 연작 되겠다. 보그다노프가 프리퀄 형식을 미리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타워즈 같고 좋다. 화성 혁명기, 이름하여 대운하시대다. 요즘 지구에서도 몇몇 관측자들이 화성 표면에서 ‘보곤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종종 본다) 운하들을 설계하고 지휘한 위대한 기술자가 메니다. 노동자, 행정가, 자본가, 기술자 들의 토론만으로는 재미없으리라는 걸 보그다노프도 알았을 것이다. 아주 살짝 드라마가 온다. 아엠 유어 파더가 웃기면 안 되는데 빵, 웃어버린 건 조지 루카스 탓이다.

 

혁명가 특유의 입씨름이 지루한 면은 있지만 세 번째 작품까지 소설화하여 『붉은 별』 삼부작으로 왔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감동이 좀 더 컸을지도. 과학소설이 아니라 프로파간다문학으로 말이다. 다시 말해 과학소설이라기엔 꽤 센 체제 선전, 아니 어쩌면 과학소설이어서 가능했던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개인과 자유에 대한 응답 내지는 딴지가 보란 듯 『우리들』로 온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과 이후라는 차이가 있다.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다양성과 현대성을 낳아온 역사다.



우리들 - 8점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열린책들


『붉은 별』에서와 마찬가지로 수학자가 주인공이다. 번호가 D-503이다. 화들짝. 716은 등장하지 않는다. 1920년에 쓰였으나 출판되지 못하다가 1924년에야 영역본으로 나올 수 있었단다. 지구를 떠나지는 않았고, 먼 미래다. ‘마지막’ 혁명이 이루어진 유토피아 전체주의. 제목이 ‘우리들’인 이유다. ‘나’는 없다. 아인 랜드 『우리는 너무 평등하다』가 취한 바로 그 설정 되겠다. 모두가 각기 번호이고, 회색 옷을 입고, 같은 시간표를 살며 전체를 이루는 세포 하나씩의 역할이다.


나는 (…) 마치 친족이라도 만난 듯, 불면증, 꿈, 그림자, 황색 세계 등에 관해 지껄였다. 가위 입이 번득였다.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중증입니다! 당신 내부에 영혼이 형성된 게 틀림없어요.」
영혼dusha? 그것은 오래전에 잊혀진 고대의 해괴한 단어 아닌가. 우리는 가끔 <사이좋게dusha v dushu>, <무관심하게ravnodushno>, <살인귀dushegub>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영혼이라니…….
「그건…… 많이 위험한가요?」 (91-92)


‘영혼’이라 옮겨진 ‘dusha’는 아마 정신, 마음, 감정 등을 얘기할 거다. 치유되어야 할 질병이다. 행복이라는 분수의 분모를 이루는 그것. 감정이나 질투, 개성, 자유가 0으로 수렴해야 행복이 무한대에 이르니까. 예상 가능하듯, 균열이 나타난다. 감정이, 색깔이, 사랑이 슬금슬금 503에게 싹 트는 듯하다. ‘고대관’이라 불리는 ‘먼 과거의 미개한 선조들’(29), 즉 우리 독자들의 유적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미개한 영혼’을 가진 이의 희생은 영화 <색, 계>가 떠오를 만큼 강렬하다. SF 형식이 이처럼 마침맞을 수도 없을 풍자다. ‘소련’이 불편함을 느낄 법도 했겠는, 전체주의 비판 소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 - 8점
A.스뜨루가쯔키 외 지음/열린책들


작품 출간년도로 보면 『우리들』(1920년)과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 년』(1976~77년) 사이에 『안드로메다 성운』(1956년)이 위치하는데 전자 둘의 현대성에 비하면 『안드로메다 성운』은 오히려 『붉은 별』 느낌에 가깝다. 작용 반작용이나 혁명 반혁명 같은 밀고 당기기랄까. 『세상~ 10억 년』은 훌쩍 밀어버린다. 말하자면 체제 선전 선동으로써의 문학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현대성, 세련미 같은 거…… 내 생각이다. 산만한 듯 자유롭고 아기자기하면서 잘 읽히고 유머가 없지 않으나 심오하다. 왜 아니겠나, 『노변의 피크닉』 작가 스트루가츠키(스뜨루가츠끼, 스뜨루가쯔키) 형제들이다.


「적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마침내 나는 물어 보았다. 「아무튼 누군가 우리를 노리고 있잖아.」
「대기권 내에서 돌멩이가 9.81의 중력 가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원하는 자가 누구지?」
「무슨 소리야?」
「하지만 중력 가속도는 어쨌거나 9.81이지? 그리고 너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4차원 문명의 개념을 도입하지는 않지?」
(…)
「네 얘기는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이 어떤 본질적인 자연 현상이라는 거야?」
「그런 셈이야.」 (148)


과학 연구를 하는 데 온 우주가 방해한다. 연구 성과가 먼 미래에 우주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이유로 우주가 자기 방어를 하는 셈이다. 10억 년 버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인가. 감시사회 풍자로도 읽히고 연극 같은 분위기가 얼핏 부조리극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실제로 과학이 당면하곤 하는 순간순간의 선택에 신중을 기하라는 경고로도 볼 수 있지 싶다. 인간과 자연에 이롭거나, 적어도 무해한 쪽으로 나아가라는 기원 같은 거. 먼 미래를 잊지 않고 염두에 두라는 거. 형제가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만들어갔을 상황을 상상하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파이프 담배 연기 속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 차, 커피가 끊이지 않고 돌았으리라. 작품 속 과학자 친구들이 그러듯이.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Smoking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 8점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소담출판사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맥베스 부인이라면 세르게이가 맥베스라는 얘기인가. 참 못났고 못되고 모자란 맥베스다. 셰익스피어 희곡에서처럼 예언해주는 마녀가 없어도 마음속에 들어앉는 권태와 욕망. 바로 사랑이 병이다. 살인하고 집착하고, 집착한다. 상대가 못났고 못되고 모자란 이라는 사실은 본인만 모른다. 자기 자신을 좀 사랑하지, 바보. 카테리나 뿐 아니라 이어지는 「쌈닭」의 돔나 플라토노브나도 결국 병을 앓는다. ‘페테르스부르크의 물정’(203)에 그렇게도 밝았던 이마저! 미워할 수 없는 두 여인을 생생하게 만나게 해 준 레스코프다. 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듣는 느낌이 드는 이유, 살아 있는 구어체를 재현한다는 ‘스카즈’(276) 기법(과 번역) 덕인가 보다.


5월 알라딘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에셔의 손 Smoking

에셔의 손 - 10점
김백상 지음/허블


아웅. 멋지다. 손 패티시 때문은 아니다. ‘한국과학문학상’ 이름에 걸맞은 장편 대상 수상작이다. 작가 수상 소감에 의하면 3년 전 완성했다는 <에셔의 손>, 몇몇 군데 응모했다가 응답을 받지 못했단다. 어떤 문학상 공모에 응모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은 임자 제대로 찾은 셈이겠다.


전자두뇌와 의체가 일상화된 근미래가 배경이다. 내용은 역시 읍읍읍읍. ‘사이버펑크’라고 주제넘게 범주화하지는 못하겠다. 특정 시기 특정 분위기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이름이 이미 후졌다. 이야기가 놓이기에 딱 적절한 만큼의 과학 장치가 온다. 모르는 말 하지 않겠고 쓸데없는 설명 덧붙이지 않겠다는 듯,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다. 남아도는 상상력과 할 말은 다음에, 라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장편의 강점 또한 유감없다. 여러 등장인물이 모두 살아있고 각자 떠났다. 여러 방향으로 향하는 끝이 몹시 우아하다.


발췌문을 찾다가 덧. 뇌를 만나는 장면은 두고두고 기억하게 되지 싶다. 잘못 읽은 거 아니다, 낱말 그대로 뇌 말이다. 당신이라는 존재의 주인, 기억을 저장하는 말랑말랑한 회색 세포.


실상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보았던 말랑말랑한 회색빛 뇌만으로는 그의 나이도, 생김새도, 심지어 성별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남자로 대했지만 그건 그가 남성형 의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의 회색빛 뇌는 XY염색체가 아니라 XX염색체를 품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 인간의 본질을 담은 본체와 대면하고도 그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는 역설이 나로 하여금 그의 과거를 추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199)



이 기회에 내 에셔 화집도 자랑



‘손’이라고 핸드크림이 같이 왔음; 귀엽.

 


여름으로 가는 문 Smoking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오공훈 옮김/시공사


제목으로만 보면 레이 브래드버리가 아닐까 싶은 낭만성. 그러나 로버트 하인라인이어서, 로맨스+시간 여행+애묘물이다. 1957년에 하인라인이 내다본 1970년과 2000년을 구경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오래된 미래’이겠는데, 1970년에는 냉동 수면이, 2000년에는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했다). 립 반 윙클마냥 혼자 잠들었다가 먼 미래에 깨어나는 상황으로 보자면 1970년 냉동 수면도 일종의 시간 여행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2000년의 시간 여행은 과거로 이동함을 예상할 수 있겠고. 어떤 이는 두 가지를 다 하기도 한다. 우리의 주인공 댄 데이비스 말이다. 작품에서 권총이 등장하면 발사되어야 하듯, 타임머신 밑밥이 나타나면 그리 되어야 하는 거다.


1970년에 배반당하고 잠들었다가 2000년에 깨어나 30년을 읍읍읍읍. 그리하여, 데이비스의 복수는 짜릿하고 고양이는 부드럽고 로맨스는…… 싫다. 공학 엔지니어가 주인공인 SF이면서 로맨스 요소에는 늙은 남자 판타지를 넣어놓은 격. 형사물이나 SF에서 로맨스가 끼어들면 나는 참 싫은데, 가만 생각해보면 로맨스야말로 정말 쓰기 힘든 ‘장르’인 듯도 하다. 타인을 섬세하게 이해하려 하고 배려하려 해야 잘 쓸 수 있는 요소, 아마도. 매일 문을 열며 오늘은 여름인가, 지켜보는 5월에 읽었다. 하인라인(1907. 7. 7~1988. 5. 8)이 긴 ‘수면’에 든 5월 8일이 꼭 30년 전이다. 수면을 끝내고 어디선가 조용히 깨어났다면, 하인라인이 보게 되는 현재는 어떤 느낌일지? 타송(타임머신 없어 죄송).


나는 나만의 여름으로 가는 문을 찾았으며, 잘못된 역에서 내리게 될까 두려워 더는 시간 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만약 시간 여행을 하게 되면 과거보다는 미래로 가라고 충고하리라. ‘과거’는 긴급한 경우에만 돌아가라고 말할 테다. 미래가 과거보다 더 나으니까. 비관론자, 낭만주의자, 반지성주의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환경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마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니까. 손으로…… 도구로…… 상식과 과학과 공학으로 말이다. (319)


여름으로 가는 비

 


몰아 쓰는 100자평과 발췌문 Smoking

프랑스식 전쟁술 - 8점
알렉시 제니 지음, 유치정 옮김/문학과지성사

장황하다. ‘프랑스식 수다’ 제대로다. 전쟁에서 프랑스가 벌인 패악질 고발과 반성. 무엇보다 반성. ‘우리’를 알아가는 건 좋은데 그 우리에 공쿠르상 남자심사위원만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은 든다. 번역문에서 ‘~했는데,’하는 어투 반복은 지겹고.


나는 내가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 나와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같은 장소를 쓰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우리는 같은 거리를 걸었고, 함께 학교를 다녔고, 같은 이야기를 들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먹지 않는 어떤 음식을 함께 먹었고, 그런 것들을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 함께 관련된 하나의 언어를 말했는데, 생각하기도 전에 이해하는 그런 언어이다. (…) 타인을 향해 팔을 뻗은 채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우연히 눈을 떴을 때,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을 너무나 모른다. 끔찍한 일이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44-45)


 

포르투갈의 높은 산 - 8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작가정신

포르투갈이고 이베리아 코뿔소다. 그것만으로도 좋은데, 유인원 오도까지. 얀 마텔은 사랑의 범주를 온 자연으로 넓혀주는 것 같다. 연작 형식에 고명같이 끼어든 환상 요소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 균형 잘 잡힌 한 접시.


하지만 오도와 투이젤루로 이주한 후 캐나다에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이제 그와 같은 종인 인간은 피로를 안겨준다. 그들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성미가 까다롭고, 너무 오만하고, 너무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피터는 오도의 곁에서 느끼는 강렬한 고요가, 무슨 일을 하든 생각에 잠긴 더딘 움직임이, 대단히 간결한 수단과 목적이 더 좋다. 그게 오도와 있을 때마다 그의 인간다움이, 경솔하게 서두르는 행동이, 복잡다단한 수단과 목적이 수치스럽다는 뜻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또 사실 오도가 거의 매일 그의 인간 동료들과 만나도록 끌고 나가는데도 그렇다. 오도의 사교성은 끝을 모른다. (395/451, 3부. 집)



사장을 죽이고 싶나 - 6점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아작

섹시한 제목을 죽이고 싶나 아니고, 작품에 기대가 컸나, 다. 밀실 추리물에 현대식 변주를 가하고 싶었던 야심은 알겠는데, 진부함에 그친다. 밀실 추리는 작위적이고 주인공의 비상함은 얄궂다. 죽이고 싶은 사장이 없어 별점이 박한 건 아니다.


아직 당신이 로봇에게 일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이는 극히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당신이 로봇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양안옌, 《나는 금융 엘리트가 될 것이다》 (349/403)


 

사흘 그리고 한 인생 - 8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북 트레일러 괜히 봤다. 2부 줄거리까지 다 알려주는 건 좀 아니잖나. 사전 정보 없이 읽어야 좋을 소설. 그러므로 함구하는, 4별 100자평.


앙투안은 거실 입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시선은 레미의 얼굴을 보여 주는 텔레비전 화면에 못 박혀 있었다. 머리를 단정히 빗은 레미가 미소 짓고 있는 이 사진은 지난해 학교에서 찍은 것이었다. 앙투안은 조그만 파란 코끼리 한 마리가 인쇄된 노란 티셔츠를 알아보았다.
사건을 해설하는 기자는 아이에 대해 묘사하는 중이었다. 그가 실종되었을 때 입고 있던 옷, 그가 갔을 길에 대한 가설, 등등……, 키는 1미터 15센티미터였단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디테일은 앙투안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75-76)


주말 인천 낮술 술이깰때까지자시오


기우뚱, 화단이 내 얼굴로 달려들었다. 슬로모션이었고 풀들 속으로 곤두박질 칠 때 메모장이 하나 펼쳐졌다. ‘나 취했구나.’ 화단 경계석에 담뱃불을 끄려던 것뿐이었고, 얼른 끄고 들어가 정선생과 마지막 잔을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왜 식물들과 뽀뽀를 하며 화단 속에 상반신을 넣고 있는지? 풀은 뒤집어썼고 경계석에 버려져 있던 플라스틱 물병 속 물인지 커피인지로는 바지를 다 적시고 일어나 술집으로, 아늑한 술집으로. 정선생은 나의 추락을 보지 못했단다. 다행인지 슬픈지 모를 깔깔 웃음을 나누고 귀가 고투. (디지털미디어시티에서 전철이 끊겼더라. 내가 좋아하는 ‘길 잃기’ 후 어찌어찌 집에는 왔는데 다리와 어깨가 왜 이리 아픈지는 음, 나 혼자 안다.) 세수를 하고 자겠다는 패기에 이어지는 따가움. 왜 아니겠나, 얼굴에 온통 긁힌 자국이 ‘부끄럽지?’하듯 벌겋다. 마데카솔 발랐다. 술만 취하면 이상하게 얼굴로 넘어진다. 머리가 무겁다는 소리는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만. 흐음, 아프다. 눌려 찌그러진 안경은 오늘 발견했다.


밤에 들린 목소리들 Smoking

밤에 들린 목소리들 - 10점
스티븐 밀하우저 지음, 서창렬 옮김/현대문학

 

첫 단편 「기적의 광택제」하나만 읽고 덮어 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완독했다. 첫 단편만 읽고 말았다면 오해했겠는 스티븐 (킹 아니고) 밀하우저다. 이어지는 작품들에 비하면 「기적의 광택제」는 오점으로까지 여겨질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넓은 품과 깊이가 차차 드러나는 작품집. 우리, 마을, 여름 등의 키워드가 겹친다. ‘우리 마을 여름’이 제목이어도 좋았겠다. 밤이라는 시간성보다는 마을이라는 공간성으로 더 기억될 듯하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아들과 어머니의 해후를 그린 「아들과 어머니」, 매일 건물이 올라가고 모습이 달라지는 마을, 즉 자기 동네에서 길을 잃는 「근일 개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길 잃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나는 좋다. 또한 내가 징그러워하는 동화 라푼젤을 변주한 「라푼젤」도 있다. 머리카락만 긴 바보가 아닌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 그러다가 역시 절정은 마지막 작품 「밤에 들린 목소리」. 아름답다. 하늘에 계신 영감님이 자기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서 고맙다는, 무신론자 작가여서만은 아니다.


어떤 정치가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은 책을 보지 않아!”(480) 한 마디면 되는 책쟁이 아빠여서 좋고 “모든 문학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첫 문장이 세 개 있지. 첫 번째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두 번째는 ‘나를 이슈마엘이라 불러라.’ 세 번째는 ‘모든 곳의 먼먼 서쪽에 로어트레인스위치 마을이 있다.’”(480)고 말해주는 아빠여서 좋다. ‘고래, 하나님. 더 나이 들면 읽어 볼 것들.’(480) 이렇게 자란 작가여서 좋다. 띠지 문구 ‘신도 부러워할 필력,’ 그렇다. 밤에 스티븐, 하고 불러주지 않아 나도 고맙다, 하늘에 계신 영감님.


소멸세계 Smoking

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살림

 

“보통 그런 건 밖에서 하는 일이잖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인과 성행위를 하려 들다니.” (40/215)


가족끼리는 섹스하는 거 아니야, 되겠다. 일견 ‘보스턴 결혼’이랄 수도 있겠는데, 이와는 또 달라서 배우자 이외 사람을 애인으로 둔다는 설정이다. 상식과 정상이라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 이번에는 가족과 섹스와 출산을 묻는다. <편의점 인간>에서도 느꼈던 바, 독특한 취향의 무라타 사야카다. 무성적 존재를 추구하는 <편의점 인간>이었다면 유성적 존재를 추구하는 <소멸세계>다. 유성적 존재가 비상식이 된 무성적 사회. 발정 본능과 성행위가 사라져가고 있는 소멸세계에서 무라타 표 ‘비정상’ 주인공은 미개하게도(!) 성행위를 끈질기게 고집한다.


에덴이라는 이름을 한 멋진 신세계다. 애완동물과도 같은 ‘아가’들 외, 어른 전부가 ‘엄마’들인 세상. ‘교미’는 없고 인공수정만 있다. 출산과 육아도 완전한 공유 개념으로 온다. 남녀노소 구분 없다. 구성원 전체가 행복한 듯 보인다. 과격한 설정 속에 자리를 잃은 사랑행위로써의 섹스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후손을 남기겠다는 본능 외에 섹스가 가지는 의미,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 사랑이나 친밀함, 쾌락 같은 거. 생식만큼이나 사랑과 쾌락추구도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 말이다. ‘모두가 낙원으로 돌아가더라도 마지막 인간으로서 섹스를 하는 존재’(3/215) 이야기. 어떤 부분은 유치해서 간지럽고 또 어떤 부분은 깜짝 놀랄 정도로 서늘하다. 야릇한 무라타 월드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난 마음 놓고 발정하고 싶어. 인간과 사랑에 빠질 때마다 엄마의 저주가 아닐까 오싹해지거든. 그런 건 이제 지긋지긋해.” (7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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