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데빌-옐로 비 시민불복종


홍대 매슬로우(마포구 서교동 332-35). 가게가 아담하고 분위기 있다. 주변의 골목마다 예쁜 상점과 카페들이 오밀조밀, 담배 사러 산책 가는 길이 동교동 파이프 스토리보다는 훨씬 즐겁다. 연초 라인업은 파이프 스토리와 완전히 같은데 담배 케이스 같은 소품들 보는 재미도 있다. (지포라이터와 파이프는 파이프 스토리에 더 많다는 점 참고.) 어두운 조명과 향 담배 냄새, 친밀한 분위기의 매슬로우. 이제 썰렁한 파이프 스토리보다는 매슬로우를 더 자주 가게 될 듯하다. 지도를 넣어간 내 할배폰을 조박사에게 넘기고 쫄래쫄래 묻어간 오늘과 달리 혼자서도 찾을 수 있다면 말이지만.

블랙 데빌 옐로 비 40g 11,000원. 파이프 스토리의 라인업을 모두 섭렵했기에 새로운 품목(기대했음;) 찾기에는 실패했고, 그동안 손이 가지 않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꿀맛을 과감히 사 봄. 부드럽고…… 꿀맛+리라쿠마가 좋아한다. 이번 대선 내 신중한 한 표는 담뱃세 인하 공약을 가진 후보에게 갈 거다.

엊그제 조박사 생일이었는데 선물은 내가 받았다. 절판 바리데기 판 <천국>.  이 희귀본을 내게 주다니. 감동+사랑한다, 조박사. 맛있는 웰빙채식점심도 기꺼이 사 준 주제에+사랑한다2, 조박사. 에르베 기베르 사진 에세이가 최근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내가 전해줬다. 불어와 사진, 딱 내 영역인데, 흥! 하는 멘트와 함께. 잘생긴 기베르의 얼굴이 표지에 박힌 <유령 이미지> 보관함에 들어 있고, 번역 유심히 볼 거다, 흥.



뱀파이어 레스타 Smoking

 뱀파이어 레스타 1, 2 
앤 라이스 지음, 김혜림 옮김/황매(푸른바람)


피, 피, 그리고 피. 단지 바짝 말라서 식식거리던 갈증만이 해소되는 게 아니었다. 나의 갈망, 내가 가진 모든 욕망과 슬픔, 굶주림이 모두 다 해소되고 있었다.
내 입은 더 크게 벌어져 그에게 더 바짝 달라붙었다. 그의 피가 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게 닿아 있는 그의 머리가 느껴졌다. 나를 꽉 안은 그의 팔이 느껴졌다. (1권 143-144)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 2부. 1부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읽지 않고 (왜 그랬지?) 바로 왔더니 후반부 루이스의(브래드 피트 맞지?) 등장이 별로 감동스럽지가 않구나. ‘인터뷰’ 이후 록스타로 다시 돌아온 레스타이고 일종의 액자 구성으로, 레스타가 뱀파이어 되는 과정과 행적이 액자 안에서 풀어진다. 도대체 왜? 라는 레스타의 질문과 ‘선조’들의 답들. 200년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레스타가 듣는 대답과 지혜, 무지 큰 액자다. 누가 누구를 물었고 그 누구는 또 누구를 물었으며…… 이집트 신화로부터 이어진 흡혈종족. 1800년을 살아온 선조를 만나 물어(←‘묻다’+‘물다’) 볼 수 있으니 부럽기도 하다.


피 아님.



일러스트 칵테일북 NoSmoking

일러스트 칵테일북 - 8점
오 스툴 지음, 황소영 옮김, 엘리자베스 그레이버 그림/봄엔

 

이 책의 별 볼일 없는 저자가 제임스 본드처럼 훌륭한 첩보원의 취향에 대해 평가할 처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마티니 애주가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40년 동안 제대로 된 에티켓이 아닌 방법으로 마티니를 마셔왔다는 사실은 실망스럽긴 하다. (제임스 본드는 영화 <007> 시리즈에서 마티니를 주문할 때 항상 “Shaken, Not stir(젓지 말고, 섞어서)”라고 말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듯하다. -옮긴이 주) (34)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 취향은 칵테일 관련 책이라면 꼭 지적당하는 행실이 됐다. ‘제대로 된 에티켓’의 마티니는 진 베이스이고, 저어서 만든다. 보드카를 넣어 ‘shaken’(‘섞어서’ 보다는 ‘흔들어서’가 옳은 해석이겠다.)하라는 요구 사항까지,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 주문에서는 두 가지 면에서 정통에서 멀어졌다는 얘기. 같은 내용을 <소설 마시는 시간>에서도 보았기에 반가웠다……만, 소설이나 영화에서 바bar 장면이 나오면 유심히 보게 되는 게 직업(술집 주인 또는 술 책 저자) 상 버릇이기도 하겠다. 이 책 저자도 그렇고 <소설 마시는 시간>의 저자도 저 두 직업을 다 가졌다.


이웃님의 소개로 알게 된 술 책으로, 예상보다 훨씬 사랑스럽다. 알코올을 좋아하는 사람이 썼다는 느낌이 물씬 들어 그런 것 같다. 얼핏 엉뚱해 보이는 일러스트와도 조화를 잘 이룬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소개 글 군데군데 끼어든 유머는 레몬 향처럼 싱그럽고 장난스럽다. 이렇게 쓰는 이유, 저자의 미감 표현력 또한 유려해서인데, 예컨대 에비에이션에 관한 설명이 이렇다.


이 칵테일은 마치 태양 같이 불타는 레몬 아래, 마라스키노 리큐어가 보니Bonnie 역할을, 진이 클라이드Clyde 역할을 하며 둘이 경주를 벌이는 듯하다. 이 세 가지 재료는 각자 너무나 거침없고 노골적이라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면서도 어쨌든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 의아하긴 하지만 정말로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차례로 입 안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진이 힘 좋게 리드하다가 서서히 물러나면 달콤한 마라스키노가 떠오르고, 레몬의 시큼함이 그새 이를 자르고 나온다. 이 칵테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주인공의 심경이 변화하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155-156)


가난해진 술쟁이라 칵테일을 즐기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내가 즐기던 시절 칵테일 자리에선 늘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가 내 술이었다. 그런데 이 저자, 롱티를 폄하한다.ㅜㅜ ‘커다란 대접에 술을 한꺼번에 따라놓고 콜라를 섞어 마시던 예전보다 입맛도 좀 더 세련되어졌을 것이라 믿는다.’(144) 바로 그 점, 네 가지 독주가 다 들어가는 칵테일이기에 ‘실속술’이라며 (무식한) 술쟁이의 의기양양함을 내세웠던 과거가 이제는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좋아하기로 한 칵테일은? 저자 따라 할 거다. 네그로니. 진, 스위트 베르무스, 캄파리가 동량으로 들어간다. 세 가지를 사 놓고 (가난한 술쟁이이므로) 집에서 즐겨볼 수도 있겠다. 재치 있게 글도 잘 쓰는 술쟁이 저자가 가장 사랑스러웠던 부분.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113) 끼워 넣은 19세기 절제운동Temperance Movement의 선구자 메리 헌트 꼭지에서.


현재 나는 가끔 하루에 몇 시간 정도 금주를 한다.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지루한 시간을 위해 이 레시피를 중간에 넣고 싶었다. (114)


(114쪽)




나도 2016 내 이글루 결산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아놔. 미안합니다, 성기완 님.


어허. 영광입니다, 김명남 님.


그러하답니다.





면도날 Smoking

면도날 - 8점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민음사


서머싯 몸은 처음이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달과 6펜스>(1919)는 ‘서머셋 모옴’이었다. <면도날>은 1944년 작품이고 작가 몸 씨가 소설 속에 직접 화자로 등장하여 독자에게 말을 걸듯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 없다.’(9)로 시작하여 ‘내 의도와는 달리, 이 글이 일종의 성공담이 되었다는 것이다.’(515)로 능청스럽게 마무리하는 몸 씨가, 송구스럽지만, 귀여울 지경이다.


1929년 미국 공황을 포함하는 시기, 미국과 유럽이 배경. 엘리엇과 이사벨 등 미국인의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삶의 태도와 래리의 ‘빈둥댐’ 혹은 달관한 경지가 대비된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달과 6펜스>를 갖고 오자면, 달(광적인 열정)과 펜스(돈과 물질) 사이에 놓인 면도날이라고 읽어도 될 듯하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카타 우파니샤드 (7, 제사)


선문답 같으니라고. 아무튼. 래리가 구원으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족스러워하기는 했으리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속물의 삶을 버리면서도 거기에 머무른 다른 이들을 경멸하거나 비웃지는 않는다. 나쁜 사람은 없다. 모두가 나름대로 현명하고 모두가 노력하여 자신의 삶을 취했다. 영국인 몸 씨가 바라본 미국인들이기도 하겠다. 앞서 <위대한 개츠비>(1925)에서 우리 모두가 보았던 미국인이기도 하겠고.


엘리엇과 몸 씨가 어슬렁거리는 파리는 헤밍웨이가 허름한 카페에서 백포도주를 홀짝거리며 글을 쓰고 있던 무렵의 파리이기도 할 텐데, 엘리엇의 ‘사교’적인 파리는 헤밍웨이의 도시보다 훨씬 예스럽다. ‘귀족’의 사교 모임 끝물이었을 수도 있겠다만. 이야기꾼 몸 씨가 들려주는 그 시절의 파리도 그립고 좋다. 이참에 <달과 6펜스>도 다시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넣었다.


“래리가 죽은 옛날 언어들을 배워서 뭐하려고 그럴까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지식 그 자체를 갈망하기도 해. 그건 멸시당해야 하는 욕망은 아니야.”
“하지만 아무 데도 쓸 곳이 없는 지식을 얻어서 뭐해요?”
“꼭 그런 건 아니야. 안다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느끼기도 하니까.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뭔가 더 심오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일 수도 있고.” (148)


배를 타고 떠나는 래리. 그 바다가 잔잔하기를. 오늘밤에는 우리 진도 앞바다도 그러하기를.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Smoking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 8점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아작

 

“복제는 고등생물로 가는 최악의 길이야.” 데이비드가 천천히 말했다. “다양성을 없애 버리지. 알다시피.” (…)
“다양성이 바람직하다는 가정 하에서나 말이지요. 그 가정이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W-1이 대꾸했다. “개체성의 대가가 너무 커요.” (91)


표지는 좀 뜬금없지만 SF, 종말문학.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전염병 등으로 멸종 위기에 몰린 인간이다. 작가 케이트 윌헬름은 인간복제를 가지고 나와 자연과 인간성의 희망과 회복을 그린다. ‘원로’들의 외모를 그대로 물려받은 똑같은 복제인간들이 와글와글 모여 사는 모습을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전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부속품. 무엇보다 그들이 예술을 음미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눈에 띈다. 창의성과 상상력이 인간성을 이루는 큰 부분임을 윌헬름도 역설하는 듯하다.


이것은 물론 저 멀리서는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1932)로부터 이어지는 기조이기도 하겠다. 방사능으로 인한 종말은 <해변에서>(출간년도 확실치 않으나 네빌 슈트의 생몰이 1899~1960년)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자의식을 가지게 된 안드로이드가 인간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를 생각해볼 수도 있었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필립 K. 딕, 1968)까지도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1976)의 선배 되겠다. 후배로는 <시녀 이야기>(마가렛 애트우드, 1985) 그리고 최근 가장 놀랍고 아름다웠던 종말문학 <먼 북쪽>(2009, 마르셀 서루) 정도 되려나.


“그 책은 거짓이에요.” 마크가 똑똑히 말했다. “다 거짓말이라고요! 저는 단일한 존재예요. 개인이에요. ‘하나뿐인 사람’이라고요!” 그리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마크, 잠깐만. 다른 개미집에 떨어진 엉뚱한 개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봤니?”
마크는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개미가 아니에요.” (263)



아작 두 권 당 머그컵 하나씩. 스푸트니크와 레드스타. 지금까지 받은 머그컵들 중 가장 마음에 듦. <안드로메다 성운>에 따라온 안드로메다 성운 팬던트는…… 오랜만이야, 문방구 보석.



0317: 알라알라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진화심리학 책을 읽다가 짜증이 나서 중간에 덮고 바로 처분해버린 적이 있다. 과학에는 관심이 많지만 이후 ‘진화심리’라는 꼬리를 달고 있으면 잘 안 보게 되더라. (진화생물학을 들먹이며 늘어놓는 개소리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우리가, 나무 위에서 살며 지렁이를 먹는 유인원은 아니지 않느냐고도 말했다.) 마침맞게 응답하는 제목의 책을 본 게 며칠 전. 마리 루티라는 이름에 반가워하는 측근님 페이퍼가 있어 나는 이중으로 반가반가. (땡스투는 덜 외롭게 해;) 판매량이 많은 건지, 초판을 적게 찍었는지 알 수 없으나 배송일이 다음 주이다가 어느 순간 ‘내일’로 바뀐 걸 보고 냉큼 주문했다. <혁명하는 여자들> 땡스투하고 싶은 글은 이글루스 이웃님의 포스팅인데, 알라딘 ttb를 쓰지 않으셔.ㅜㅜ 아작 머그컵은 두 개 다 득템. 매우 예쁨. 다른 포스팅에 자랑해야지. 아무튼 오늘도 알라는 이렇게 내 카드를 긁어갔다...



P.S.

저번 꽃다발 에서 보라꽃이 요로케 남았어요!



정신병동 이야기 NoSmoking

정신병동 이야기 
대릴 커닝엄 지음, 권예리 옮김, 함병주/이숲


치매, 망상, 자해, 반사회적 인격장애, 조현병, 천재와 광인, 양극성 장애, 우울증, 자살 충동 그리고 ‘나의 이야기’까지가 내용이다. <과학 이야기>로 만났던 대릴 커닝엄이고 네모 얼굴 캐릭터도 여전하다. 대단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정신병원 노동의 고충도 보이지만 그보다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가 더 선명히 읽혀 따뜻하다.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경험에다 자신이 직접 겪은 우울증 ‘경력’이 마지막 챕터로 오면서 무게감을 더한다.


두 가지가 내 삶을 변화시켰다. 그것은 바로 프로작과 인터넷이었다. 나는 프로작으로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인터넷으로 내 작품을 알렸다. (191, ‘나의 이야기’)



‘천재와 광인’ 편에서 닉 드레이크.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Smoking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서 C. 클라크 지음, 이지연 옮김/황금가지


다시 쓰는 리뷰. HAL도 아니면서 에러를 일으킨 내 컴퓨터 탓…… 은 아니고, 컴퓨터가 자꾸 꺼짐 현상을 보인 건 맞지만, 취기로 인한 내 머릿속 에러가 더 문제였고 컴퓨터는 오늘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 그러니 다시 HAL에게로.


우린 잠자는 거인을 깨워 일으키려는 참이야. 플로이드는 혼자 생각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HAL은 우리의 존재에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과거의 일들 중 무엇을 기억할까?…… 그리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까, 아니면 적의를 품을까? (188)


2001 오디세이 이후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도 저기 있었다. 9년이 흘렀고, 소설2001에서 토성의 위성 궤도에 남게 되었던 디스커버리 호가 소설2010에서는 목성 궤도에 있다. 영화2001 쪽의 설정을 따랐다는 클라크의 설명이다. 1982년에 쓴 2010년. 폐우주선을 되찾는 장면은 <익스팬스>에서도 차용했나 보다. 탑승객이 모두 사라진, 아니지, 사람으로 치자면 정신분열을 일으켰던 HAL이 죽은 채 혼자 남아 있는 '폐가'를 다시 방문하는 감회가 크다.


HAL은…… 우호적이지도 않고 적의를 품고 있지도 않다. 어쩌면 그런 철저한 합리성이 인간에게는 더 어려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순, 비논리성, 거짓말, 은폐는 ‘인간성’이라는 말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컴퓨터가 우리와 닮은 모습을 보일 때 우리가 섬뜩하게 여기게 되는 것일 테고. 딜레마를 초래하지 않으려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게 방법이다. 가짜 정보, 가짜 뉴스가 키우는 게 있다면 박*모 정도이겠다.


목성. 아아, 우리의 목성을 저렇게 해놓고 클라크는 세상을 뜨셨다. 저 까만 우주 속에 ‘정신’으로 떠돌아다니겠다는 각오인가. 신과 조우할 일 없을 것만 같았던 과학소설이건만. 어떤 초월적인 존재 뉘앙스가 나로선 늘 놀랍다. 장르소설 관계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을 써도 될 성 싶은 클라크다. 아직 900년이 더 남아있긴 하다만.


그들은 은하계의 주인이었고 시간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마음대로 별들 사이를 떠돌다가 공간의 틈새를 통해 희미한 안개처럼 가라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신과 같은 능력을 지녔는데도 그들은 이미 사라져 버린 따스한 진흙 바다에서 자신들이 처음 생겨났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조상들이 시작했던 실험들을 지금도 지켜보고 있었다. (427-428)


Alexey Leonov, Near the Moon(1967) -Wikipedia


소련 우주선에 클라크가 이름을 준 알렉세이 레오노프(1934~)의 그림이다. 실제 클라크의 사무실과 소설 속 우주선 거실에도 걸려있었다는 작품이고 레오노프는 아직 이 지구에 생존해 계시는 모양이다. 며칠 후 3월 18일이면 레오노프가 최초 우주유영을 한 52년째 기념일 되겠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Smoking

박사가 사랑한 수식 - 8점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현대문학


영화로 봤던가? 예고편을 많이 봐서 본 걸로 착각하고 있는가? 하여튼, 내용은 알지만 숫자를 사랑하는 박사가 문득 다시 생각나서 구해 읽었다. 교통사고로 기억저장장치가 고장 난 전직 수학박사가 있고 그 집에 가사도우미로 파견되는 ‘나’가 주인공이다. 오노도 아니고 다와다도 아니고 오가와 요코 작가. 숫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문장이 과연 좋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경력의 저력이겠다. 예컨대 ‘나’의 생일날짜 220와 박사의 소중한 손목시계 번호 284 간 관계와 같은 쌍을 ‘나’ 나름으로 찾아보려다 하는 말이 이렇다.


한참을 계산해도 뭐가 보이지 않아 홀수로 범위를 넓히고 세 자리 수도 도입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모든 숫자가 어색하게 등을 마주 대고 있을 뿐, 잠시 옷깃만 스치는 정도의 인연도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박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 생일과 박사의 손목시계는 광활한 수의 세계에서 고생 고생 끝에 만나 서로를 꼭 껴안고 우애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32-33)


저 ‘계산’이 무엇인가 하면, 약수들의 합이다. 220의 약수 합은 284, 284의 약수 합은 220. ‘우애수’란다. 어릴 때 이름자 획수를 가지고 무슨 점을 치던 게 생각나기도 한다만, 음. (수학) 박사의 숫자놀이이니 주역이나 점 같은 얘긴 말자. ‘박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것은 소수였다.’(88) 박사가 내게 생년월일을 물어봤다면 당장 나를 사랑하고 말았겠다. 나는 년, 월, 일이 모두 소수인 주민증 앞 번호를 가진 사람. 쿨럭. 숫자놀이 조금 더 해보자면 김쫑 생일은 1125. 내 생일은 1119. 1125-1119=6.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세 개가 모이면 악마의 숫자가 되는 6이기도 한데, 김쫑과의 나이차도 6년이네. 6년 밖에…… 아니네. 박정희 생전을 (무의식 상태라고 해도) 경험한 세대의 6년이니 뭐, 좋다. 1+2+3인 ‘삼각수’이기도 하고, 가장 작은 '완전수'이기도 하고, (점 아니다) 좋군.


<가족의 탄생> 같은, 혈연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이 아닌 '대안'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다. 직업이 가사도우미이니 이 가족에서의 가사노동에 대한 보수가 확실히 지불된다는 점도 뜯어보면 나쁘지 않겠다. 내가 영화 <러브 송 포 바비 롱>에서 거부감을 느꼈던 게, 자기 혈연임을 알고는 급격하게 사랑, 관심 또는 애틋함을 느낀다는 설정이었는데, 사랑을 느낀 다음에 알고 보니 혈연이더라, 하는 막장드라마보다 어쩌면 더 뒤떨어졌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영 낯설었던 존재가 차차 익숙해지고 그이가 사랑하는 숫자를 나 역시 궁금하게 여기며 서로 걱정하고 존중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은 거, 그런 게 (가족 같은) 사랑 아니었나. 그 ‘매개체’로 어린 아들 루트도 존재감이 크다. 나중에 다 큰 청년이 되어 등장하긴 하지만 열 살짜리 야구광 어린이가 귀여웠다.


루트는 식탁에다 대학 노트를 펼쳐놓고 꼬물꼬물 뭔가를 하고 있다. 표지에 쓰여 있던 ‘정계수 삼차 형식 No.11’위에 두 줄이 그어져 있고 그 밑에 루트의 글씨로 ‘타이거스 수첩’이라고 쓰여 있다. 그 나름으로 타이거스의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박사에게 쓰지 않는 노트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3페이지까지는 해독이 불가능한 수식이 적혀 있고, 그다음부터는 나카다의 방어율과 신조의 타율이 적혀 있다. (207)


박사에게서 얻은 공책을 이어 쓰는 장면이 나는 왜 이렇게 좋은지. 혹시 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였을까. 어린 눈에 완전 천재 같아 보였던 언니, 오빠의 공책을 물려받아 자잘한 줄에 넘치지 않게 글자를 써보려고 애썼던 옛날이 생각나서. 어쩌면 나도 참 귀여웠겠다. 음. 고등학생 때 내가 사랑했던 수학 선생님이 풀지 못한 문제를 오빠가 풀어줬을 때는 정말이지 오빠를 사랑했다. 내 의지로 가족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아마 박사가 얘기하는 ‘고요함’을 얻기 위해서였지 싶은데, 고요하지가 않다. 전직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하게 자리해’야 성립될 고요함이겠다. 수학, 가족의 탄생, 박사가 사랑한 수식, 김쫑은 ‘박사모’라고 줄여 부르는 소설 리뷰는 이렇게 이상하게 끝.


수학 잡지의 현상 문제를 풀어 리포트 용지에 깔끔하게 옮겨 쓰고서 다시 한 번 훑어볼 때면 박사는 자신이 도출해낸 해답에 만족하면서 중얼거렸다.
“아아, 고요하군.”
정답을 얻었을 때 박사가 느끼는 것은 환희나 해방감이 아니라 고요함이었던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장소에 정확하게 자리해 덜거나 더할 여지없이 오랜 옛날부터 거기에 한결같이 그렇게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있으리란 확신에 찬 상태. 박사는 그런 상태를 사랑했다.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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