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마지막 알라딘 술이깰때까지자시오

 

뚤뚤 말아 놓으니 걸레 같쥬. 주기율표 플란넬 담요입니다. 보들보들한 감촉이 보기와 달리  무지 귀엽습니다. 세탁 후에도 여전해야 할 텐데요. <관계의 과학>에 따라온 린네 꽃시계는 꽤 예쁜 주제에 유리가 깨져 도착+교환 신청했습니다. 구랍(舊臘) 마지막 주문+새해 첫 배달 상자였습니다. 새해에도 달려 보아요. (지름 말고 독서:)



2019년의 책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에르고숨 배(杯) 올해의 책 시상식입니다. 2018년 말부터 2019년 말까지 나온 책 대상입니다. 10권을 추렸습니다. 상금은 없습니다. 명예는 미미합니다. 재미는 에르고숨 몫입니다.


1. 올해의 SF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입니다. 비주류 장르 덕후로 머물고 싶었던 에르고숨입니다만, 글쎄 김초엽 작가 덕분에 SF가 주류가 되려하네요? 손석희 사장이 앵커브리핑에서 언급하였을 때에는 엇, 놀랐습니다. 혼자 조용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좋은 건 나눠야지요. 반갑고 기쁜 일을 한국과학문학상과 김초엽 작가가 이룬 것 같습니다. 면면히 이어온 한국 SF에서 아름답고 성숙한 꽃을 피운 듯한 느낌입니다. SF는 이래야 해, 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는데 SF야, 입니다. 부디 이야기 계속해주시기를. 축하합니다.


2. 올해의 교양과학은 매러디스 브루서드의 <페미니즘 인공지능>입니다. 코딩 예시를 보고 주눅들 필요 없습니다. 두어 군데 분홍색 코딩 빼고 나머지는 쉽게 읽힙니다. 과학기술은 SF와 다릅니다. SF를 좋아하는 만큼 꿈 깨셔라, 하는 논픽션도 함께 장착해야지요. 인공지능은 사람이 만듭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환경에서 갈아 넣은 노동력이 좋은 출력물을 내놓을 리 없습니다. 저자 경험이 녹아든 글발이 뜬구름 잡지 않고 인공지능 기술의 현재를 잘 들려줍니다. STS책들이 요즘 많이 보여 기쁜 와중에도 인공지능 부문의 발군입니다. 축하합니다.


3. 올해의 생명과학은 단연 <종의 기원>입니다. 초판 새 번역으로 다시 왔습니다. 꼼꼼하고 철저한 우리 다윈 선생, 판을 갈수록 덧붙인 설명이 많다고 하지요. 6판으로 가면서, 심하게 말하면, 지저분해진다고. 쨍한 초판을 권하는 전문가들이 많은 이유랍니다. 축하합...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 사 놓고 흐뭇해서 그만. 흡.


4. 올해의 사회과학은 위근우 선생의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입니다. 단숨에 읽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만 읽을 때마다 놀랍니다. 인물 실명을 거론하며 비평하는데 제 간이 다 쪼그라듭니다. 구구절절 어찌나 옳은 말인지 감탄+감동+올해의 책에 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글 정말 잘 쓰십니다. 이전 책도 찾아보렵니다. 축하합니다.


5. 올해의 소설은 <창백한 불꽃>입니다. 사랑하는 시인을 만들고 아름다운 시를 만들고 저물어가는 왕정국가와 혁명을 만들고 마지막 왕을 만들어 독자를 꼼짝없이 놀려먹는 나보코프의 현란한 글 솜씨를 보십시오. 진짜인 척 쌓아올린 시종 허구, 그야말로 성공한 소설, 그것도 끝내주게 재미있는 추리물이 되어 버린 주석서입니다. 독자를 희롱하거나, 평론가를 풍자하거나 하여튼 성공한 어리둥절함입니다. 2019년 <창백한 불꽃>을 읽고 뿌듯했습니다. 지적, 혹은 문학적 허영심을 채운 느낌이랄까요. 축하합니다.


6. 올해의 시나리오는 김보라 감독의 <벌새>입니다. 영화제 숱한 상을 탔다는데, 정작 영화를 보지 않은 에르고숨은 시나리오 상을 드립니다. 빈틈이 슝슝슝 엄연한데도 이상하게 꽉 찬 느낌입니다. 에르고숨 백자평을 옮겨놓습니다. ‘싱거운 듯 밀도 높고 무해한 듯 정치적이다.’ 축하합니다.


7. 올해의 스릴러는 <아일린>입니다. 알라딘 서지분류로는 소위 ‘순수’문학입니다만 저는 추리/미스터리로 읽었습니다. 답답하고 꽉 막힌 초반부는 배경과 캐릭터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보답하듯 터뜨리는 후반부의 한 방. 에르고숨은 이런 걸 정말 좋아합니다. 루스 렌들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도 조금 연상했는데, 무엇보다 오테사 모시페그 자신의 삐딱한 호기로움이 굉장히 멋졌습니다. 작가 첫 장편이랍니다. 이 호기로움이 첫 장편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축하합니다.


8. 올해의 콩고민주공화국은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의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입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름, 36년도 못 살고 간 루뭄바 초대 총리를 다시 각인하게 한 저작입니다. 벨기에를 비롯한 강대국들의 패악질을 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을 읽는데 대한민국이 보입니다. 올해의 콩고민주공화국은 다른 말로 올해의 역사서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축하합니다.


9. 올해의 일러스트는 시몬 스톨렌하그의 <일렉트릭 스테이트>입니다. 저자는 ‘시각 스토리텔러’라고 불리는 모양입니다. 전자책으로 보았는데 화면을 넘길 때마다 눈이 호강했습니다. 그림들이 환상적입니다. ‘황량함 속 갑툭 초현대문명이 마치, 허무와 생경함이 명징하게 직조해낸(ⓒ이동진) 현대문명비판우화 같다’는 에르고숨의 백자평입니다. 축하합니다.


10. 올해의 뭥미상은 <워터십 다운>입니다. 초베스트셀러를 넘어 영상물로도 제작된 작품이라기에 동화 접종하려고 읽었습니다만, 벡델테스트 ‘ㅂ’도 통과하지 못할 문제작입니다. 신나는 탐험과 모험, 위기와 우정의 순간에는 수컷만 존재하다가 생식에 필요한 존재로서 암컷을 상정합니다. 낙제점 우화이지요. 우화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중년 시간 아까웠습니다, 워터십 다운 토끼들이여. (올해 나온 책은 아니지만 에르고숨이 올해 읽은 책 중 <다윈 영의 악의 기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들은 존재감이 거의 없고 오직 아빠, 할배로만 전해지는 유전자라니요? 생식 대상으로 여주를 겨우 등장시킨 것도 <워터십 다운>과 판박이. 토할 뻔했습니다.) 온갖 칭찬 허명에 뭥미상 드립니다. 축하(안)합니다.


         

2019년에 고작 180권 읽었네요. 구매한 책은 420권이라는데요. 흙. 2020년에는 200권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해피 뉴 이어! (올해 마지막 지름 하러 갑니다, 총총:)

  
 


12알라딘4 술이깰때까지자시오


유령, 무한, 멀리, 여성 Smoking

유령해마 
문목하 지음/아작

비파는 알고 있다. 비파는 해마다. 해마는 데이터이고 기억이다. ‘너’보다 더 ‘너’를 잘 기억한다만, 그게 꼭 이해는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겠다. 쓸모가 있어 필요로 하든, 이용하든, 혹은 또 사랑하든, 그 기제는 이해가 아닌 오해임도. ‘너는’이라는 화법이 다정해 마음이 살살 녹다가 곳곳에 심긴 유머에서는 깔깔 웃게도 된다. 사랑스러운 SF다.


나는 허브의 이음매를 밟는다. 이곳만 통과하면 내 현실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안다. 나는 걸음을 떼고, 내 다리가 사라지는 걸 보고, 형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마가 된다. 내 세상의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정체가 내 앞에 펼쳐진다.
무한이다. (351)



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현대문학


2016년 트루데 하늘엔 파충류 모양을 한 신들이 잔뜩, 1958년 용인 하늘엔 스푸트니크 3호가 슝.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한 가족의 연대기이자 구원기로, 시간여행 판타지다. 환상인지 현실인지 오락가락 믿을 수 없는 주인공의 시간여행 목격자가 되어버리는 경험. 흥미진진한데 다만, 편집에 서체를 도대체 몇 가지나 삽입한 거냐. 내용으로 수습이 가능하다면 서체 남용은 좀 피해줬으면.


“기억해두게나. 미래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476)



멀리 가는 이야기 
김보영 지음/행복한책읽기

김보영 작가 중단편선집이다. ‘이 책은 전 세대의 나 자신의 유작집인 셈’(501)이라는 작가의 말이다. 그러니까 문 닫고 가버린 작가 전시실에 내가 쑥 들어와 뒷북치고 있는 격이다. 늦은 감상, 늦은 감동. 멋진 초기 작품들 고맙게 읽었다. 특히 「종의 기원」에는 꽃다발 하나 걸어두고 나온다.


“사실 멸종이라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야. 모든 종에는 수명이 있는 법이니까. 칼스트롭 교수님은 ‘그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신기한 것인 아니라, 존재했다는 사실이 신기한 일이다’라고 하시지……. 아, 거기!” (240,「종의 기원」)


 
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파출리 외 지음/온우주

작가 열 명을 만난다. 200년 동안 책을 읽어온 사람 「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전혜진),  생존세를 내지 못해 들어가는 장소 「국립존엄보장센터」(남유하), 멸종위기종 마냥 가임소녀만 격리해 교육하는 「로드킬」(아밀), 우주선에서 데모하는 「바리케이드와 개구멍」(이서영) 등 개성들이 톡톡. 뜨끔하고 쓸쓸하고 화나고 웃기고, 요는 각양각색 재미있다는 거다.


속이는 사람이 있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지.
사실 둘은 똑같은 집단이야.
단지 우리에게는 비밀을 누설할 만큼 다정한 상대가 없었지.
지키려는 사람들에게는 뭐가 있을까?
알잖아.
ㅇㅇ가 살아있을 때, 네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너는 어떻게 했을 것 같아? (301, 전삼혜,「궤도의 끝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징구 + 거울 + 이선 프롬 Smoking

징구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책읽는고양이


징구가 뭔가. 말할 수 없다. 「징구」 독후감에 징구가 무엇인지 밝혀놓은 게 있다면 규탄해야 하리라. 징구를 알고 보면 재미없을 「징구」다. 그렇다고 다시 읽어 재미없을 「징구」는 또 아니다. 밸린저 부인 독서모임의 고상한 멤버들이 겪을 정신적 혼란, 땀 삐질;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처다. 멤버들이 징구에 관해 나누는 ‘우아한’ 대화를 보셔라. “아마 징구에 관해 같은 생각일 거예요.”(31) “전 그것 때문에 인생이 변한 경우를 많이 봤어요.”(31) “제게도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31) “그런 데 들어가는 시간을 아까워해서는 안 되죠.”(32) “전 절대 건너뛰지 않아요.”(32) “그걸 지나간다고 하기는 어렵죠.”(32) “물론 어려운 부분도 있죠.”(32) “시도해본 적 있어요?”(33)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해요. 징구가 물론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얘기를….”(34)


‘징구’ 자리에 ‘프라이가이스트’나 ‘레종데트르’ 또 혹은 ‘커닐닝ㅇ스’를 넣어도 말이 되는 시추에이션 되겠다. 자고로 가식과 허영심이 넘치는 대화법인 거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더 크게는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봐 두루뭉수리 한 마디씩 얹는 부인들 귀엽고…… 뜨끔하다. “징구가 뭐예요?”라고 물어볼, 솔직한 무지를 드러낼 행동은 품위 없음이다. 곰곰 생각해 보건데 내가 그 짓을 한 적이 있다. 들뢰즈를 원서로 읽는 모임에 내가 가장 나중 멤버였다. 기존 멤버들은 한창 전쟁기계 꼭지에 빠져 있었으니, 초심자의 호기로 나 왈, “전쟁기계가 뭐예요?”


뜨아. 대답 대신 누군가 책 속 삽화를 내밀었던 것 같다. 내가 눈치가 없거나 분위기 깨는 사람은 아닌데, 왜 그랬지. 아마 분위기 파악하려고? 그이들 참 난처했겠다. 나를 제명하지는 않았다. 들뢰즈 모임이 밸린저 부인 독서모임 같았다는 말은 아니다. 우아하지 않았으나 허세는 쩔었다. 징구가 전쟁기계 설명만큼이나 약 빤 듯(들뢰즈 맛) 알쏭달쏭한 개념이라는 뜻도 아니다. 징구는…… 그저 이디스 워튼 재치가 반짝반짝, 귀엽고, 뭔가 뜨끔하고. 그래서 애꿎은 과거 들뢰즈 모임 얘기도 하고 말았고. 귀부인들의 예의범절이 마냥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만은 않는 게 이디스 워튼 시선인 듯하다. 초대 손님과 불편한 손님이 떠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비로소 툭 터놓는 모습도 보셔야 한다.


레버렛 부인이 안도하듯 감탄사를 뱉었다. “그거, 바로 그거예요!”
“뭔데요?” 회장이 나섰다.
“어… 생각이라는 거죠. 제 말은 철학이라고요.”
이 말에 밸린저 부인과 로라 글라이드는 약간 안도하는 듯했지만, 밴 블레이크 양은 달랐다. “죄송하지만, 다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징구는 언어일 거예요.” (44,「징구」)


거울 
이디스 워튼 지음, 김이선 옮김/생각의나무


워튼의 유령 이야기 모음집이다. 총 여덟 편에 주로 집과 관련된 게 많다. 오싹할 정도는 아니고 으스스+스산해서 조용한 밤에 읽기 좋다. 저택과 유령.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이나 대프니 듀 모리에『레베카』 냄새도 난다. 듀 모리에(1907~1989)는 워튼(1862~1937) 나중 사람이니 『레베카』에서 워튼 냄새가 난다고 해야겠구나. 헨리 제임스(1943~1916)와는 친한 사이였고, 작품이 서로 닮았다는 평에는 불만도 있었던 모양이다. 『징구』 옮긴이의 말에서 본 바, ‘존스네 따라잡기keeping up with Joneses’ 속담의 존스 씨가 워튼 부친 조지 F. 존스라는 설이 있단다. 『거울』 속 단편 하나는 제목이 심지어 「미스터 존스」다. 오래된 저택을 지키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지금 여기 누구도 본 적은 없으나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이다. 미스터 존스가 내리는(내린다고 알려진) 명령은 철저히 준수돼야 하며 일꾼들은 절대복종한다. 없으면서 있는 미스터 존스다. 워튼은 부친 이미지를 존스 씨에 넣은 것일까?


“(…) 숙모 역시도 그분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는…… 그것이 무서운 점입니다…… 그래서 숙모는 항상 그가 시키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에게는 절대로 말대답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330-331,「미스터 존스」)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문예출판사

이선 프롬의 아픈 모친을 능숙하게 간병한 지나는 이선과 결혼한다. 시간이 흘러 이제 지나가 쇠약해지고 말이 없어지고 병이 난다. 부부에게 도움을 주러 먼 친척 매티가 온다. 생기 넘치고 서툴다. 즉 젊은 여성이다. 이후는 빤하다만, 결말은 ‘워튼스럽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 진의 <기다림> 얼개와도 같아 긴장(신파, 희생?)했으나 톤과 분위기가 퍽 다르다. 욕망 미움 사랑 모험심 같은 것들이 조용히 나이 먹어 주방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느낌. 서늘하다. 과연 이디스 워튼이다. 한 번 놀랐고(결말) 한 번 웃었는데 웃은 데가 여기다.


이선은 그 말을 귀 너머로 흘려들으며 서둘러 호먼 부인의 가게로 마차를 몰았다. 부인은 뭐가 깨졌기에 그러냐, 찾는 접착제가 없으면 보통 풀로는 안 되겠냐 등등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서 한참 여기저기 뒤지더니 이윽고 감기약, 코르셋 끈 등이 쌓여 있는 구석에서 한 병 남은 접착제를 찾아냈다.
“설마 ㅇㅇ가 아끼는 그릇을 깬 거 아니죠?” (94/177)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징구+미니노트와, 말할 수 없는 결론 이선 프롬과,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해 안타까운 거울.



12알라딘2 술이깰때까지자시오


만화 전두환 + 타서전 NoSmoking


  만화 전두환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 창


달력을 보니 12·12다. 40년 됐다. 1979년 쿠데타부터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될 때까지를 다시 본다. 참 무서운 시대였다. 아니다, 참 악한 인간이었다. 서울의 봄, 광주 민중항쟁, 청와대 입성,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삼청교육대, 언론통폐합, 땡전뉴스, 김근태 전기고문 사건, 평화의 댐 사기극,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이한열, 6월 항쟁, 직선제. 주요 등장인물의 과반수가, 또한 그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린 이까지 죽어간 세월인데 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 잔당들이 여태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는 뉴스타파 ‘전두환 프로젝트’에서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장수를 기원한다. 진심이다. ‘민주주의의 아버지’ 생전에 죗값 치르는 모습 봐야겠다.

                                                            <만화 전두환 2> 159쪽 + 뒤표지



 전두환 타서전 -정일영 황동하 엮음 / 그림씨

 

『전두환 타서전』은 기사본말체에 따라 편찬하였다. 또한 기사본말체의 정신에 맞게 전두환과 관련된 신문 기사 이외에 어떠한 주관적 평도 수록하지 않았다.
전두환에 대한 모든 평가는 이 책에 수록된 기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서 판단할 일이다. 엮은이들은 오직 그와 관련한 사실fact만을 수집, 편집하였다. -2017년 봄 (기획자의 말)


그러니까 머리말과 기획자의 말 외에는 모두 신문 기사들이다. 언론통폐합을 단행했고 보도지침까지 시달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가감하여야 할 부분이 많으리라. 신문지면 스캔을 그대로 싣고 한글로, (그리고 가로쓰기로) 다시 써 수록하였다. 백무현 작가도 이 시절 기사를 두루 참고했을 터다. 이렇게.

                     <전두환 타서전>005. 한국일보 1979. 12. 14. 1면 + <만화 전두환 1> 060쪽


 『전두환 회고록』근황은 어떤가. 2017년 4월 무려 3권으로 출간됐다가 그 중 1권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 서술로 인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검색해보니 수정본으로 다시 나왔던 모양인데 그것도 지금은 절판이다. 해당 책에서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전두환은 재판을 받고 있다. (불출석+골프도 치고 있다.) “이거 왜 이래?!” 12·12다. 40년 됐다. 전씨는 건강하시길. 그리고 독자들은 더욱 건강하시길.


나는 사실 하나하나를 암기하고 기억하는 게 역사는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왔다. 지금 와서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을 마음은 없지만, 사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게 역사의 최소한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다. 『전두환 회고록』을 보며 처참함을 느낄 이들에게 우리가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잊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 -2017년 봄, 엮은이 (머리말)




뱀, 잠들면 안 돼, 잃어버린 (도시Z+세계) Smoking

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엘릭시르


원제가 ‘Awakening’이다. 뱀이 깨어나기도 하거니와 주인공이 겪는 자각, 성장도 함축한 듯하다. (케이트 쇼팽의 멋진 소설 <각성>도 원제가 ‘The Awakenig’이었지 싶은데) 마침맞은 제목이고 번역 제목도 귀엽지 않은지. 한적하고 작은 마을에서 뱀이 우수수 깨어나며 50년 전 사건 진상이 드러난다. 뱀과 사이비 종교 패악질과 ‘나’의 성장. 위기의 순간에 짠, 하고 누군가 나타나 도움을 주는 클리셰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게 싫었지만 그러지 않는 클라이맥스는 멋지다. 무엇보다 장비를 잘 갖춘 직업 정신이 훌륭하다.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 트렁크에는 늘 구명조끼와 손전등, 칼이 있지, 암. 무엇보다, 구명조끼 입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평생 찾아다녔던 신념을 결국 찾아낸 걸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날 밤 죽음에 직면했을 때 내게 길을 일러주고 마음을 진정시켜준 목소리의 주인이 엄마였을까? 아니면 나보다 훌륭하고 강인한 나의 일부였을까? 나는 아직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밤중에 뱀들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나를 해치지 않으니까. (621)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꾸리에

 

피다한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밤늦게 이야기하며 놀다가 자리를 뜨면서 다양한 인사말을 한다. 어쩔 때는 그냥 ‘간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밤 인사는 따로 있다. 이 인사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나 황당했지만, 지금은 내가 가장 즐겨하는 밤 인사가 되었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18)


뱀 따라 왔더니 아마존이다. 밀림에 어울리는 밤 인사 되겠다. 어둠 속에서 언제라도 닥칠지 모를 위험에 무방비하지 말라는 염려가 느껴진다. 언젠가 자기 전에 이런 인사 해볼 날 있을까. “잘 자.” “거기 뱀.” 다니엘 에버렛은 언어학자이자 (처음엔) 선교사로서 피다한 마을을 드나들었다. 말을 배우고 문화를 익히고 논문을 쓰고 결국 사랑에 빠지는 30여 년이다. ‘선교’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독선 때문에 한참 미루어두었다가 뱀 핑계로 들추어보았다만. 가만 생각할수록 멋지다. 언어학자로서는 드물다는 귀납적 방법으로 연구를 해가는 과정도 그렇고 종교인으로서 회의하는 모습도 그렇다.


언어학자 에버렛은 문화와 언어 간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인간은 원래 문법을 가지고 태어난다느니, 언어의 핵심이 순환이라느니, 현장연구보다는 이론연구에 더 치중하며 연역적인 접근법을 택하는 언어학계 주류와는 다른 관점이다. 거의 인류학이라고 해도 될 성싶은 현장연구 내공이다. 선교사 에버렛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련다. 소설은 아니지만 스포방지. 다만 언어학에서 문화를 강조한 만큼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깊은 이해를 장착하게 된 이라면 취할 법한, 독선적이지 않은 태도와 고백이라고, 그래서 내가 사랑하게 된 책이라고 까지만.


이들은 실제로 이러한 욕구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하루하루 그저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피다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따라서 어떠한 욕구도 쌓일 틈이 없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거의 모두 앓고 있는 걱정, 두려움, 좌절의 근원이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478)


에버렛이 그려놓은 피다한 사람들은 내가 아는 쾌락주의와 가장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쾌락’이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하면 안 된다. 동물적인 욕구 충족만을 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 고대로부터 내려온 에피쿠로스학파,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로 이어져 유물론, 무신론과도 맥이 닿는 정신적 상태를 말함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인식’(464)이 없으므로 초월적인 존재가 필요하지 않다. 피다한 사람들에게는 의례 또한 거의 없는데, 에버렛은 ‘경험의 직접성’ 원칙으로 설명한다.


장례식 같은 걸 치르지 않는다는 대목을 읽고 최근 내가 겪은 절교 사건이 또 떠오르고 말았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장례식 올리지 말라고, 더구나 내가 이룬 가족이 없으니 애먼 어떤 피붙이가 상주로 생고생할 게 틀림없는데다, 친하지도 않았던 먼 친척에, 친구에, (결단코 없지만 스스로 주장하고 나설) 빚쟁이에, 내 어찌 알랴 싶은 이들까지 삥뜯기(기)에 다름 아닌 그것 절대 하지 말았으면 싶다 했더니, 성초딩 왈 “그게 되겠어?” 한다. “말 안 해두면 그리 될 거니까 지금 말해놓는다.” 하자, (친구라면 할법한 대답, “그리 원하니 그러도록 하지.”는 문준으로부터 받아놓았다) 성초딩 왈 “그렇게 안 될 거다. 당신 말처럼 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이런다. 내가 죽은 다음에 장례식 와서 “그건 당신 생각이고.” 할 태세...


제도가 개인을 억압하면 그 제도를 거부하거나 뒤엎는 것 또한 개인이다. 아무런 반성 없이 관성적으로, 폭력적이라 해도 의례를 고수하는 게 바로 꼴통 아닌가. 꼴통가족은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꼴통친구까지는 이만 노땡큐다. 피다한 사람들에게서 에버렛이 배웠고 나도 배운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 없음은 감동스러울 정도이고 친족용어의 희박함은 부럽기까지 했다. 친족용어가 많다는 것은 친족 관계를 복잡하게 따진다는 의미이고 그에 관련한 제약이나 규범이 세세하게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해서다. ‘나에게 놓칠 수 없는 것은 자유였고, 지킬 수 없는 것은 믿음이었다. (…) 그들은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장 풍요로운 내면을 지니고 있으며,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며 산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진리를 설파하고 삶을 바꾸도록 강제할 수 있단 말인가.’(474-475)


한편 문준 얘기 나온 김에 덧붙이자. 피다한 사람이랑 문준이 꼭 닮은 점이 있다. 문준과 여러 번 함께 걸어보면서 안 사실, 그이는 동반자랑 횡렬 나란히 못 걷는다. 꼭 종렬 한 줄로, 주로 앞서서 걷는데 (등짝미인이라는 소문이 있다) 아마 정글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한 줄로 걷는 것은 좁은 정글 길에서는 타당한 행동 양식이다. 정글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넓게 만드는 일은 매우 힘이 든다. 또한 이렇게 나란히 걷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나란히 걸으면 포식자에게 더 쉽게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뱀이나 다른 위험 동물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들을 도시로 데리고 오기 전에는 어떤 문제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왜 그런 걱정을 했을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그들이 정글에서 행동하듯이 도시에서도 한 줄로 서서 걸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울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 하지만 도시에서는 전혀 다르다. 물론 나란히 걸으면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지만 사람들끼리 좀 더 쉽게 대화할 수 있게 되고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뽀르뚜밸류에서 가장 번잡한 거리를 한 줄로 걷는 우리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웃었고 나도 웃음을 지어보였다. (440-441)




잃어버린 도시 Z 
데이비드 그랜 지음, 박지영 옮김/홍익출판사

아마존에 좀 더 머물러 본다. <잠들면 안 돼>와 결이 한참 다른 책이긴 하다만. 탐험가 포셋의 행방을 좇아 쓴 기록이다. 퍼시 해리슨 포셋 대령은 1920년대 브라질 마투그로수 지역에서 엘도라도를 찾다가 실종된 사람이다. 모험심과 경쟁심이 강한데다 생존력이 탁월했기에, 포셋의 실종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숱한 추종자들을 낳았다. 르포작가 데이비드 그랜이 2000년대에 다시 찾는 엘도라도, 고대 유적지 탐험이다. 포셋에 대한 충실한 기록과 몸소 떠난 아마추어 여행기가 흥미진진하다. 초보여행가 데이비드 그랜, 밀림에서 한 줄로 걸을 줄 알아야 할 텐데... 


1925년 1월, 다시 리우데자네이루행 정기 원양선 S. S. 보번호에 오르는 포셋의 모습은 코난 도일이 쓴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의 주인공 존 록스턴 경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존 록스턴 경에게는 나폴레옹 3세와 같은 용맹함이 있었고, 돈키호테와 같은 호탕함이 있었으며, 영국 신사 같은 부드러움도 엿볼 수 있었다. 그에게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단정한 매너, 반짝이는 파란 눈망울 속에 불타는 용기와 타협하지 않는 의지가 숨어 있었다. 그가 더 담대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용기와 의지가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15-16)


 
잃어버린 세계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존 록스턴 경 확인해야지. 성초딩이 매번 혀를 끌끌 차도록 쌓아둔 책이 이럴 때 긴요하다. 표지 그림이 이미 스포인데다, 이후 마이클 크라이튼 등 작가들이 마구 되살려놓은 공룡이기도 하기에 그냥 내용 유출한다. 존 록스턴 경 비롯,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 그리고 젊은 기자 멀론은 아마존 유역 대지(臺地)에서 중생대 동물들을 만난다. 그뿐 아니라 ‘잃어버린 고리’ 유인원도 등장해 전쟁까지 치르는 대모험활극 되겠다. 피부 허연 남자들이 벌이는 예스럽고 제국주의적이고 피부색차별적인 이야기다. 고대 유적을 찾겠다는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 대담한 판타지로, 읽다 까무룩 잠든 밤 꿈에 괴생물체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눈크 디미티스!”* 이윽고 서멀리가 외쳤다. “고향에서 이걸 알면 뭐라고 할까?”
“친애하는 서멀리 교수, 나는 사람들이 고향에서 뭐라고 할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네.” 챌린저가 말했다. “그들은 자네가 지독한 거짓말쟁이에 돌팔이 과학자라고 할 거야. 자네나 다른 사람들이 과거에 바로 나를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말이야.” (171-172, *Nunc dimittis. “이제 여한이 없다”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주)




기파 + 우리가 빛의 속도 Smoking

기파 
박해울 지음/허블


소행성에 부딪쳐 파손되고 궤도를 이탈한 호화 우주 크루즈선 오르카호. 재난 와중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도운(도왔다고 알려진) 의사(義士), 선상 의사(醫師) 기파를 구해 오라. 충담이 운 좋게 오르카호를 발견한다. 상금은 딸의 심장이식 수술이다. 흔한 설정이긴 하다만 그래서인가, 스토리 진행이 탄탄하다. 2071년 배경에 그림자 노동이나 대기업의 권력 같은 현재 사회 계층 문제가 고스란하다. 거기에 더해 인공지능 윤리 문제까지 아우른다. 오랫동안 다듬어 왔다는 작품답게 서툰 구석 하나 없이 능수능란, 기성 작가 작품 같다. 믿고 보는 한국과학문학상 제3회 장편 대상이다. 한국과학문학상은 수상작도 좋지만 심사평들이 주옥이다.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이라면 피와 살이 될 충고까지 덤으로 얻는다.


예를 들어 ‘나름’은 부사가 아니라 의존명사이므로 ‘나름 유명하다’ ‘나름 잘 했다’ 등의 표현은 한국어의 문법에 어긋난다. ‘그 나름대로’ 혹은 ‘자기 나름대로’ 등 앞에 누구의 나름인지를 밝혀주어야 한다. (…) 전반적으로 과학소설을 쓸 때 인권 감수성과 젠더 감수성을 키우고 음모와 반전에 대한 집착을 버렸으면 한다. 문학 작품이 아닌 ‘SF를 쓴다’ 또는 ‘SF는 이래야 한다’라는 편견을 버리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216-217, 심사평, 정보라)



한 해 전 단편 대상 수상자 김초엽 작가 작품 일곱 편이 묶였다. 차분하고 담담하고 성숙하고 우아하다. 어떤 주제라도, 누구라도, 말을 걸면 당황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조곤조곤 다 답해줄 듯한 사람 느낌이랄까. 정세랑 작가가 ‘마음을 다 맡기며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작가’라고 한 게 완전히 이해된다. ‘내 나름대로’ 감히 말하건대, 거장의 출발을 목격하여 행복하다. 아무 요구 없이 팬이 될 준비 완료했다. 일곱 편이 모두 각양각색으로 좋지만 <공생 가설>을 적어두자.

인중 말이다. 꼬물이 아기들은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가, 말을 시작할 무렵 ‘쉿!’ 신(?)이 비밀누출금지령을 내리며 입술 위에 손가락으로 찍어 자국을 남긴다는 설을 어디선가 본 적 있다. <메리 포핀스>에서도 전지(全知)했던 아기들이 자라면서 능력을 다 잊어버리는 어린이가 되는 거 나오지 않던가? 소위 유년기 기억 상실증. <공생 가설>에서 상정하는 발화 전 전지 존재는 외계에서 왔다. 우리가 모두 커서 바보 지구인이 되기 전에는 뇌 속에 류드밀라 행성 기억이 있었다는 사실... 왠지, 뭔지 모르게 그립더라니.


류드밀라의 행성을 보며 사람들이 그리워한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유년기에 우리를 떠난 그들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141,「공생 가설」)





매너의 문화사 NoSmoking

매너의 문화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지식너머
 

옛날 예법서들을 근거로 유럽 풍속 문화를 들려준다. 몸가짐, 인사법, 식사예절, 생리현상과 분비물, 눈물과 웃음, 공격성, 성생활 등을 거쳐 현재의 인터넷과 나르시시스트적인 SNS 문화를 끝으로 지적한다. 알라딘 책 소개만큼 유쾌하지는 않다. 고전문학을 얼마간 읽어온 독자라면 굳이 따로 장착하지 않아도 될 ‘문화사’ 아닐까 싶다. 재미도 의미도 감흥도 없는 와중에 프랑스어의 한글 표기는 또 엉망이라 실망스럽다만. ‘풍속 문화에 관한 역사는 항상 훌륭한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것에서 위로를 얻을 수는 있다’(252)고. 위로, 음. 얼마나 더럽고 후진 시대였는지 잠깐 구경하고 나서 세상 참 좋아졌군, 이라고 말하는 게 글쎄, 위로라면.


중세의 웃음은 투박하고 잔인했다. 사람들은 지능이 좀 떨어지거나 정상 기준에 못 미치거나 하위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고 웃었다. 예를 들어, 연대기 작가인 피에르 드 페닌Pierre de Fenin은 어떤 강도의 살인에 대한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그 일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그 일에 거론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난뱅이들이었기 때문이다.” (139-140)


잘은 몰라도 Fenin은 ‘페닌’보다 ‘프냉’으로 써야 할 것 같고. 시대마다 달라진 웃음 포인트를 읽으면서 예전 개그 프로그램과 후배 하나가 떠올랐다. 어쩌다가 같이 티비를 보게 됐는데 출연자가 상대 외모를 품평하고 비하하면서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는 개그 코너였다. 헉 저게 뭐야, 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킬킬 웃던 후배가 나를 보며 왈, “왜요? 이해가 안 돼요?” 저런 게 ‘이해’가 돼서 네 뇌를 문제없이 통과해 입 꼬리를 올리고 웃음소리까지 낼 수 있는 네게 실망했다, 라고까지 말은 못했다. 그냥 연 끊었다. 후배와도 티비와도. 긴 시간차를 두고 생기는 변화가 아니어도 동시대 유머 포인트와 정치색은 내게 그런 효과를 내곤 한다. 그래서 내게 친구가 (티비도) 없는 모양이다. 티비 얘기한 김에 최근 불거졌던 오디션 프로그램 짬짜미 순위 사건도 생각해본다. 출연자뿐 아니라 시청자들 신의도 쌈 싸먹고 뒤통수 친, 매너 없는 사기꾼들. 끝.


소설가 살만 루슈디Salman Rushdie는 21세기 초부터 시작된 몇몇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도덕적으로 문제 삼을 것이 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좋다. 사기꾼이 되는 데 ‘좋고’, 사악해지는 데 ‘좋다’.” (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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